올해도 어김없이 수능이 치러졌다. 대다수의 부모는 수능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마음 졸이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모의 관심 중에 하나가 대부분 자녀의 공부에 있다. 공부를 잘해야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녀가 공부를 잘할 수 있도록 다방면의 노력을 강구한다.
그러나 부모들이 생각하는 공부와 본질적인 공부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 우선 공부와 성적은 다르다. 일반적으로 부모들이 생각하는 공부는 바로 성적을 의미한다. 주위에서 보면 성적을 높이는 방법이 많이 있고 그래서 그러한 방법을 익히면 성적은 높아질 수 있겠지만 문제는 정답이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대처하기 힘들어 한다는 것이다. 즉, 정답 이외에는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본질적으로 공부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롭고 어려운 과제들을 직면하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회를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다. 열심히 노력하여 사법고시에 합격만 하면 인생이 보장되고, 서울이든 지방이든 학교위치에 관계없이 의과대학을 졸업하면 개원하는 것이 쉬웠었고, 좋은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걱정이 없었던 시절은 이미 오래 전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요즘은 좋은 대학을 나오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던 젊은이들이 막상 사회에 나와서 부딪히는 새로운 일들에 좌절하고 상처를 받는다.
이들에게는 성적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일을 직면하고 해결해 나가는 학습능력을 키우는 공부가 필요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많은 일들을 직면하고 그러한 것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어찌 보면 공부다. 결국 인생은 공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과정이 학습과정이고 학습과정의 결과가 우리의 삶을 만들어간다. 이러한 공부원리를 잘 적용해야 인생을 지혜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공부의 원리를 잘 적용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조건이 존재한다. 우선 주변 사람들의 사랑과 믿음이다. 어린 시절 걸음을 배우기 위해서는 걷다 넘어졌을 때 혹은 자전거를 배우다 넘어졌을 때 마음은 아프지만 그러한 과정을 인정하고 일어서서 걸어갈 수 있도록 지켜주고 바라봐주는 부모의 믿음과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만약 넘어진 순간의 상처에 비난을 하거나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비록 신체적으로는 걸을 수 있을지 몰라도 정서적으로는 마음의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부모의 사랑과 믿음 속에서 자아존중감이 생기고 스스로 새로운 일들을 해결해 나가는 학습능력이 커지게 된다. 그래서 살아가면서 직면하게 되는 크고 작은 수많은 현상 앞에서도 자아존중감을 바탕으로 형성되어진 학습능력이 있을 때 새롭고 어려운 인생의 과제들을 슬기롭고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서비스도 비슷한 것 같다.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고 비슷한 증상을 가진 환자들을 만나는 것 같지만 실상은 환자들에 따라서 너무도 다양하고 복잡한 일들을 하게 된다. 진료가 힘들기 보다는 환자에 따른 진료가 힘들다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른다. 환자에 따라서 늘 다르게 대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환자를 대하는 사람에 대한 공부를 하여야 한다. 진료를 하는 것이 성적을 높이는 것이라면 환자를 대하는 것은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거의 대부분의 병원은 진료라는 성적을 높이는 것은 잘할지 모르지만 환자라는 사람을 대하는 공부는 병원마다 천차만별인 것 같다. 사람을 대하는 것을 천부적으로 잘 대응하는 의료인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어떻게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병원이라는 공간이 환자의 증상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그것을 진료하고 치료해주는 명백한 공식과도 같은 과정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과정 속에서 너무도 많은 일들이 파생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어떤 일들은 비수처럼 가슴을 찌르기도 한다. 그래서 비수처럼 꽂힌 상처가 너무 아파서 이를 악물고 빼고 나면 그 상처에서는 빨간 피가 아닌 열정과 꿈이 빠져 나오고 시간이 지나면 허탈과 허무감이라는 흔적이 남게 된다.
진료만의 성적으로는 이제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진료 외에 다른 것을 공부하여야 한다. 대한민국 의료는 세계최고 수준이다. 성적으로 치자면 최상위이다. 그러나 이제는 진료라는 성적에만 몰입할 것이 아니라 실제 환자들에게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공부를 하여야 한다. 그래서 그 속에서 의료인의 기쁨을 찾아가야 할 때인 것 같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글 / 손정필 jpshon@gmail.com
평택대학교 교수
한국서비스문화학 회장
관계심리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