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처럼 인생에서 나이를 생각해 보는 때도 없었던 것 같다. 개업당시 엄마 손에 이끌려 치과 문을 들어서던 아이들이 40이 넘은 중년이 됐으니 말이다. 40년이 된 단골환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건강하게 오래 치과를 운영해, 자신의 치과질환도 계속 봐달라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내가 그들의 눈에 늙은 치과의사로 보이는 것이 서운하기도 하고, 또, 지나온 세월이 참 길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젊었을 때는 나이 높으신 대선배들에 대해 깊게 이해하지 못했다. 요즈음 들어 선배들이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보면 그때 그분들에 대해 깊은 배려를 하지 못했나 하는 반성이 앞선다.
이제 나이 70이 코앞에 있고 잠깐이나마 은퇴를 생각하고, 노후를 생각하는 때가 많아진 것을 보면 환자들이 필자를 늙은 치과의사라 여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60세가 넘어서 두 시간 이상 환자를 치료하면 허리가 뻐근하고, 하루가 다르게 어두워지는 시력, 이른 새벽에 잠이 깨는 습관 등이 분명 노인의 길로 접어드는 게 분명하다. 수년전 지하철 무료승차카드를 받아든 순간, 허물어지는 젊음을 느꼈고 40~50대들이 어르신이라고 자리를 양보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나의 육체가 언제까지 내 마음 같이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곤 한다.
10여 년 전인가! 바이센테니얼맨이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다. 부부는 편하게 일을 하기 위해 200년을 사는 로봇을 가사도우미로 들였다. 그러나 둘째딸은 그 로봇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자유를 얻기 위해 집을 떠난 로봇 앤드류는 수십 년 후 다시 돌아온다. 부부가 세상을 떠나자 성인이 된 둘째 딸과 결혼을 하지만 로봇인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같은 로봇을 찾아 세상여행을 떠난다. 여성 로봇을 만나지만 감정이 있는 것이 낫다는 여성 로봇을 이해 못하고 수십 년이 지난 후 집에 돌아오자 둘째딸은 할머니가 되어있었다. 로봇은 할머니를 빼닮은 손녀에게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는 사람이 되고자한다. 그러나 인간이 되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게 된다. 사람은 인간으로부터 얻지 못하는 사랑을 동물이나, 기계 등을 통해 사랑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금붕어에게 또는 애완동물에게 자신의 사후를 맡기고 유산을 물려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랑이란 감정은 우리가 느끼는 좋아함, 즐거움, 기쁨의 감정을 야기 시키는데 사람이 나이가 들어 늙게되면 가장 필요하게 느끼는 것이 사랑이다. 친구들이 세상을 뜨고, 몸은 늙어 활동에 제한을 느끼면 예전에 젊었을 때 밤을 새워 술잔을 나누는 그런 정열적인 삶은 생각할 수 없다. 술 한 잔을 들어야 할 때도, 건강과 내일을 생각해야하기에 일찍 자리를 뜨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친구가 멀어지고 교류가 없기에 외로움이 찾아온다. 그래서 노인들은 이야기를 받아주면 끝없이 얘기를 하자고 붙들고 늘어지는 것이다. 사람과의 교류도 없고, 무슨 일이든 몰두할 수 있는 정신과 체력도 부족하다. 일에 대한 성취, 자랑할 수 있는 것도 없어 항상 외로움과 우울함이 깃들게 되어있다.
어느 대중가요에 ‘너 늙어봤냐’ 라는 노래가 있다. 노인들에게 할 것이란 결혼식, 장례식, 당구, 등산 밖에 없다는 것이다. 돋보기도 안 쓰고, 생고기도 먹는다고 자신의 건강을 처절하게 외치며 늙은 이 사람을 인정해달라고 악을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인들은 황혼의 즐거움을 찾으려고 창조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관절염, 지방간 등 열개가 넘는 질병으로 인해 10년 전부터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 매주 주말, 일요일이면 자전거로 전국을 누비는 일이 습관화됐다. 하지만 지금은 자전거로부터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고 있다. 몸에 좋은 감정은 좋아함에서 시작하고 즐거움의 과정을 거쳐 기쁨이란 결과를 얻는다. 처음에 그저 건강에 좋아서 타다 좋아하게 되었고, 전국을 속속들이 돌아다니다보면 볼거리, 맛 거리, 배울 거리, 사람과의 만남 등 즐거운 일이 계속 일어나고, 힘들고 괴로운 길을 가게 되어 목적지에 도달할 때 느끼는 성취 기쁨은 무엇에 비할 수 없다. 비록 생명은 없지만, 지속적인 애착을 쏟아 부으면 자전거도 나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선사한다. 지금은 친구에 못지 않는 사랑으로 자전거를 대하고 있다. 기쁨이란 감정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이다.
성경에서 예수탄생을 기쁨으로 얘기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즐거움은 필자를 따르는 두 마리의 애완견이다. 하나는 13살이고 하나는 3살이다. 요크셔테리아 종인 두 녀석은 암컷으로 나를 잘 따르고, 출근 시 데리고 가지 않는다고 토라지고, 저녁에 퇴근하면 반가워 어쩔 줄 모르고 뽀뽀 세레머니를 요구한다. 두 녀석과 같이 산다는 것은 즐거움이고 기쁨이다. 또 하나의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친구는 기타다. 3년 전부터 개인지도를 받아 이제는 행사에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기타는 악기에 불과하지만 곡을 연습할 때 나의 손가락에서 나오는 감정을 진솔 되게 표현해주는 충실한 친구이다. 곡을 연습할 때는 괴롭고 고통스러우나 곡을 반복 연습하는 동안 필자의 마음을 알았는지 손놀림에 순응한다.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말한 대로 그가 결선에서 피아노를 칠 때 손가락이 저절로 음악을 연주 하였고 자신은 손가락이 연주하는 음악을 즐겼다고 하였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본인 자신도 알지 못했다고 했다. 그도 수천 번을 반복하는 피나는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사실, 마포구치과의사회송년회 연주요청이 있었을 때 1년 전부터 곡을 선정해서 연습에 들어갔었다.
처음엔 악보를 눈으로 보며 음을 익혔고 다음은 그 음을 기타를 치며 귀로 익히고 계속되는 연습 속에 손이 저절로 움직이며 음을 내게 되는 것을 알았다. 필자도 저절로 손이 움직이며 내는 음악을 듣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이런 과정으로 수십 쪽이나 되는 악보를 외우게 되는 것이다. 송년회에서 곡이 끝났을 때 치는 박수는 그동안의 고통을 잊고 기쁨이란 결과로 다가왔던 것이다. 이 세 종류의 사랑하는 것들은 필자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작은 친구들이다. 즐거움은 나로부터 나오나 기쁨은 남을 즐겁게 해주므로 얻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곡을 잘 치고자 하는 것은 희망이지만 그 곡으로 남을 즐겁게 하는 것은 필자의 소망이다. 즐거움은 희망을 만족시키지만 소망은 남의 기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평균 기대수명으로 봤을 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10년 남짓이다. 이 기간 동안, 이작은 친구들과 즐거움과 기쁨을 얻는 것이 나의 희망이며 소망이다. 이 친구들의 순수한 사랑은 황혼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퇴근한 필자는 방을 열어 보았다. 반가워하는 애니와 진주를 안고 침대 곁에 가지런히 반기는 친구들… 자전거와 기타! 그들로부터 사랑과 기쁨을 얻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