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계 역사의 산증인이자, 큰 어른이었던 이병태 前 대한치과의사학회장이 지난 9일 영면에 들었다. 향년 74세. 심근경색으로 유명을 달리한 고인의 갑작스러운 부고에 치과계도 애도를 표했다.
고인이 된 이병태 前 대한치과의사학회장은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문인이었으며, 치과대학에서 치의학 역사를 강의키도 했다. 특히 서울시치과의사회사 및 대한치과의사협회사 편찬사업을 진두지휘했으며, 각종 저술활동에 전념해 왔다. 특히 지난 2014년에는 고인의 40여년 집필활동의 결정체인 ‘이치의학사전’이 발간돼 치과계 역사에 한 획을 긋기도 했다. ‘이치의학사전’은 16만여 단어가 영문, 한문, 국문으로 병기됐으며 총 2,180페이지 분량이다.
또한 최근에는 수필집 ‘나는 사람이 좋다’를 출간하는 등 활발한 저술활동으로 치과계 문인의 대표를 자처했다.
이외에도 고인은 지난 2003년 남북치의학교류협회를 발족하고, 2005년 금강산 온정인민병원에 치과를 개소, 남북관계가 악화되기 이전까지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무료진료봉사활동을 이어왔다.
故 이병태 前 치과의사학회장의 발인은 지난 12일 가족과 지인들의 애도 속에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최학주 기자 news@sda.or.kr
- 추도사
빛이 되어 가셨나요
-이병태 선배님을 떠나 보내면서
대한치과의사학회 고문 변영남
폭염이 쏟아진 지난 9일 토요일, 무엇이 그리 바빠 책상 정리도 하지 못하시고 그리 홀연히 떠나셨나요. 비보를 접한 저희는 어안이 벙벙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허탈감에 빠져 넋을 잃었습니다. 정말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사실이 아니길 바랐습니다. 치과 인문계의 큰 기둥이 무너진 슬픈 날이었습니다.
선배님이 치과계에 남긴 업적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남북교류협력, 이치의학사전 등 수많은 치과계 관련 서적, 그리고 역사를 기록하는 회사편찬 등 많은 공을 남기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까지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협회사편찬위원회에 참석지 못하겠다고 하시면서 병석에 누워계신 어느 선배님을 걱정하시지 않았습니까! 열정과 정이 많으신 선배님을 다시 뵐 수 없다니 이 어인 일입니까!
이병태 선배님!
그 아끼던 몽블랑 만년필로 집필하던 모습도, 빨간 넥타이에 중절모를 쓴 모습도 이제 뵐 수 없게 되었으니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프랑스 여행 중 헌책방에서 구입해 애지중지 아끼시던 피에르포샤르 영인본을 어찌 잊고 가십니까!
선배님!
못 이룬 치과박물관의 꿈이 뒤돌아 보이셨겠지요. 이제 모든 것 다 산자의 몫으로 남기고 홀연히 떠나십시오.
죽음이 끝이 아니고 시작이라니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누리십시오. 이 순간 저희가 해드릴 것은 기도뿐입니다.
산 이와 죽은 이의 통공을 받으며 선배님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평화의 안식을 누리십시오.
선배님과 함께했던 시간 정말 행복했습니다. 선배님 사랑합니다. 편히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