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대학 원내생으로 병원과 학교를 오가는 본과 3학년 시기는 환자를 처음으로 진료하며 치과의사로서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 때이다. 그동안 배워온 많은 술기를 익혀가며 교수님의 지도를 받아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을 진행하기에 그 어떤 시기보다도 진료현장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만, 바쁜 일정을 보내다 보면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마음가짐을 항상 지니고 있기 어려울 때가 많다. 본과 3학년인 지금, 학교와 병원을 떠나 필리핀에서 보낸 일주일은 내가 하는 행위가 환자의 삶에 어떤 의미로 다가가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이하 연세치대) 봉사동아리 ‘해우회’는 한 달에 한 번 국내에서 정기진료를 진행하고 있으며, 하계 국외 장기진료를 약 1주일간 진행하는 치과진료 봉사동아리이다. ‘해우회’는 1973년 창단됐다. 초기 바닷가에 파견 나간 공중보건의사들의 봉사모임에서 시작되었기에 바다 해(海), 벗 우(友) 자를 써 이름을 붙였다. 치과진료 봉사동아리로서 역사가 깊은 만큼 연세치대 1기부터 현 49기까지 약 300여명의 회원이 있으며, 현재는 구강악안면외과 김형준 교수님의 지도 하에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여름 ‘해우회’ 진료봉사 지역은 필리핀 나익시, 아미사 무료 진료소(Amisa medical mission)였다. 아미사 무료 진료소는 NGO 단체인 ‘로즈클럽 인터내셔널’에서 2015년에 설립했으며, 매주 화요일 현지 의사와 한국인 한의사가 약 200명의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에게 무료진료를 실시하고 있는 진료소이다. 로즈클럽 인터내셔널 법인 외 경기도의사회, 의료봉사 팀들이 정기적으로 의료봉사를 실시하고 있는 곳이다.
‘해우회’는 이곳 아미사 무료진료소에서 7월 15일(월) 오후부터 19일(금) 오전까지 총 8나절 진료를 계획했으며, 치과의사 수퍼바이저 6명(연세치대 19기 문희일 선생님, 20기 양순봉 선생님, 34기 이상현 선생님, 36기 박종인 선생님, 37기 정희수 선생님, 38기 최석민 선생님), 치과대학생 20명, 학생봉사자 1명, 현지 봉사자 20명으로 총 47명이 봉사에 참여했다. 진료 파트는 크게 구강검진(OE), 치주, 보존, 외과 섹터로 구분하여 치과의사들과 치과대학생들이 맡았으며, 접수와 보조의 대부분은 현지 봉사자들이 맡아 진행하였다. 치주 3체어, 발치 7체어, 보존 3체어로 총 13체어를 운영했다.
필리핀에 도착한 후 월요일 오후 1시부터 진료를 시작하기로 계획했으나, 현지에 도착해보니 오전 6시부터 약 300명의 환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미사 무료 진료소 지부장님과 현지 교회 목사님과 사모님이 주변 지역에 포스터 등으로 많은 홍보를 해주신 덕분이었다. 환자가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지체할 수 없어 진료지 세팅을 빠르게 마무리하고 오전 10시 30분부터 진료를 시작했다.
나익 지역 환자들을 처음 마주한 우리는 구강검진을 하며 큰 난관에 부딪혔다. 환자의 대부분이 복합적인 구강 질병을 갖고 있어 치주, 보존, 외과의 모든 치료를 요하고 있었다. 또한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이 많아 현지에서 보존치료 비용이 이들의 두 달 월급에 해당한다며, 대다수의 환자들이 발치를 해야 하는 등 시급한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존치료를 원했다. 하지만 밖에서는 수 시간 걸려 이곳까지 치료를 받기 위해 방문한 수백 명의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양소연(본과 3학년) 회장을 비롯한 학생들은 치과의사 선생님들과 같이 회의를 거쳐 먼 길 온 사람들을 그대로 돌려보낼 수는 없기에, 각 환자마다 가장 시급하게 치료를 필요로 하는 부분을 한 부분만 치료하고, 남은 날에 재진을 하도록 권유하는 방식으로 운영키로 결정했다. 또한 봉사지에서 치료하기 어려운 케이스는 환자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로컬 치과로 가서 치료받도록 설득했다.
이런 원칙 하에 5일간 진료를 한 결과, 969명의 환자를 구강검진 했으며, 보존(Resin filling)은 142개, 외과(발치) 769개, 치주(Scaling) 348개의 케이스를 치료했다. 또한 첫날에는 150여명의 환자가 기다리다가 치료받지 못하고 돌아갔으나, 둘째 날부터는 치료받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을 가장 최우선적인 목표로 삼아, 방문한 모든 환자를 치료했다.
이번 장기진료 봉사활동에서 가장 감동받았던 부분은 바로 현지 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모습이었다. 매일 수백 명씩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번호표를 나눠주고, 문진하고 작성하도록 하는 역할, 구강검진 시 필리핀어 통역 보조, 발치할 때 light를 비추고 분비물과 적출물을 치우는 역할, 발치 후 약 처방 시 필리핀어 통역 보조, 대기 환자들을 순서 맞춰서 불러주는 역할 등을 담당하여 진료지의 모든 부분을 채우고 이를 통해 치료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만들어주었다. 이런 수고스러운 역할을 맡으면서도 해우회 회원들에게 항상 미소를 잃지 않으며 친절하게 대해주는 모습에 감사하고 감동적이었다. 봉사를 하러 왔으나 오히려 섬김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깊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지막 진료일에 봉사자들을 한 명 한 명 정성스럽게 구강검진하고 치료를 하여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을 전했다.
필리핀에서 보낸 일주일간의 시간은 그 어떤 때보다 값진 감정들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복합적인 문제를 갖고있는 환자의 구강 상태를 보며 봉사지에서는 전부 다 치료해줄 수 없는 상황이기에 드는 참담함, 환자의 아픔을 다 없애줄 수 없으며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치료하게 되기에 드는 무력감, 평생 한 번도 스케일링을 받지 못한 환자에게 스케일링을 하면서도 정말 이 환자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 등 힘든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동시에 치료가 끝난 후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몸을 일으키는 환자를 보며 아직 학생인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술기가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서 조금씩 의미를 찾아갔다. 또한 능숙하게 진료현장을 누비며 수많은 환자를 치료하는 수퍼바이저 선생님들을 보면서 손끝의 능력으로 수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치과의사라는 직업의 가치를 배울 수 있었다.
우리를 찾은 사람들을 절대 빈손으로 돌려보내면 안 된다는 해우회의 봉사 정신을 마음에 새기며, 더욱 정진하여 많은 이들의 삶에 작은 도움의 손길이라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류승민 학생기자(3기)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본과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