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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개원25년 치과의사 조카 & 개원50년 치과의사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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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_변웅래 강원도치과의사회 前회장

 

1980년대 필자가 치과대학 재학생 시절, 아버지로부터 서울에서 치과를 개원 중인 집안 아저씨인 변영남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2020년 대한치과의사협회 창립기원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대한치과의사협회사 편찬위원회 모임에서, 학생 때 이야기를 들었던 변영남 아저씨를 처음 만나 늦은 인사를 드리게 되었다. 현재 필자는 강릉에서 25년차 치과 개원의다.

 

변영남 선생님은 1969년 서울치대 23회 졸업, 해군진해병원, 백령도에서 군 복무, 1974년 서울 경희대 앞 휘경동에 성신치과를 개원하였다. 선생님은 김동순 회장님 시절 치정회 간사를 맡아 초창기 치정회 설립에 기여했다. 필리핀 치과대학을 탐방하고 18개 치과대학 현황조사 후, 외국인의 국내 치과의사고시 응시 문제점을 파악하여 책자를 만들어 언론과 복지부에 배포함으로써 외국치과대학 졸업자의 시험제도 개선에 초석을 마련했다. 협회 치무이사 시절 한국인 구강실태조사를 했고, 공보이사 때 치의신보 독립채산제를 완성했다. 직장 구강검진이 없을 당시 산·알칼리 취급 업종만 우선하는 방향으로 근로자 구강검진제도를 도입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대한치과의사학회장과 협회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치과의사회관 1층에 한국인 최초의 치과의사인, 함석태 선생님 흉상 제막에 앞장서셨다. 은퇴하시면서 히포크라테스 청동상과 서적들을 서울치대 치의학박물관에 기증하셨다.

 

사석에서 아저씨와 조카라고 호칭하는 나와 변영남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를소개하고자 한다. 이런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은 아저씨께서 나에게 인생의 큰 가르침을 주었기 때문이다.

금년 4월 아저씨는 1974년 개원 이래, 50년간 진료해 오던 성신치과를 폐원한다. 이곳저곳 옮기지 않고 한 자리에서만 50년을 개원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것인지를 개원 25년차인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앞으로 내가 25년을 더 살게 될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오래전부터 들었던 아저씨와의 첫 만남은 매우 따뜻했다. 그러나 협회 창립기념일에 대한 아저씨와 나의 입장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나는 어색하고 불편해졌다.

참고로, 2020년 당시, 협회의 창립기념일은 1980년 협회총회에서 결정된 1921년이었다. 2000년 이전부터 협회 창립연도는 논쟁이 있어왔는데 2021년에‘협회창립 100주년 기념행사’를 바로 앞두고 협회의 창립연도(1921년과 1925년, 1945년)에대한 논의가 재점화된 것이다. 3가지 연도는 20년 이상, 창립연도로서 합리적인 주장이 팽팽하게 유지되어 온 만큼 공청회 총 3회, 신문지상과 역사편찬위원회에서 많은 토론이 있었다.

 

70차 협회 총회(COEX) 때, 원로 치과의사로서 인생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아저씨의 감동적인 연설(1921년 주장)을 나는 모두 기억한다. 마음속 진심에서 나오는 역사관을 듣고 나 자신이 왜소함을 느꼈다. 연설 후 내려오는 아저씨를 총회 장소 밖으로 부축하고 배웅해드렸다.

71차 총회(제주)에서 새로운 협회 창립기념일이 결정되고 창립일 논의는 끝났지만 지금도 아저씨의 외침은 내 기억 속에 명확히 남아있다. 이후 협회사편찬위원회에서 광주학생운동, 일제치하 치과의사들의 활동 등 가르침에 나는 많은 배움을 얻었다.

 

배움 중 내가 각별했던 2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는 4월에 출판된 대한치과의사협회사(2020) 편찬과정에서 치과의사학의 역사적인 관점, 접근방법, 기술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아저씨는 편찬위원회 자문위원이었고 나는 새내기 위원이었다.

나는 대한치과의사협회사 편찬과정의 경험을 살려, 강원도치과의사회사를 써야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협회와 달리 강원도치과의사회 역사서 편찬과정에 많은 애로사항에 부딪혔다. 강원도치과의사회의 역사자료를 찾기 위해 원로, 은퇴 원장님들을 찾아뵈었지만 오래된 자료는 이미 버려졌고 기억에 의한 기록만 얻었기 때문이다.

 

역사사료와 서적들이 절실한 마당에 아저씨는 나에게 여러 역사서적을 주셨다. 이것이 아저씨의 각별한 2번째 가르침이자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자신이 평생을 모았고, 손때 묻혀 보셨던 소중한 책들을 은퇴하면서 조카인 나에게 주신 것이다. 책들은 1960년 대한칫과의학사연구회지, 기창덕 선생님의 한국치과의학사, 이한수 선생님의 한국치학사, 신재의 선생님의 한국근대치의학사, 치과의사(피에르 포샤르) 공저 등이다.

 

곧 문을 닫게 될 성신치과 3층 계단을 오르내리며 주신 책들을 차에 옮기면서, 나는 대학시절 원본을 구하기 힘들어 해적판을 샀던 기억을 회상하였고, 아저씨의 치과의사 활동들과 70차 총회에서 열변을 토하시던 순간을 하나씩 기억했다.

표지가 바랜 책들을 소중히, 그리고 조심히 차에 실었다. 마지막엔 1960년대 DMZ에서 잡혔다는 내 나이의 수리부엉이 박제까지 내게 주셨다.

 

아저씨 고맙습니다! 변영남 선생님 감사합니다!

 

 

강릉 시골집 책장에 책을 가지런히 정리하였고, 풀을 베고 꽃을 심은 후, 틈이 나면 책장에서 정리된 오래된 책들을 펼쳐본다. 봄바람 솔솔 부는 조용한 시골에서 치과역사서를 읽는 즐거움이 이렇게 클 줄 몰랐다. 은퇴하신 아저씨가 오시면 묻고 이야기 나눌 생각에 더욱 즐겁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시골집에 오시기를 부탁드렸고, 오시면‘이야기보따리’를 풀어주실 것 같다. 아마 3번째 배움을 얻게 되지 않을까?

 

이번 일을 겪으면서‘나는 은퇴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의 생각도 미리 하게 되었다.

치의학 책은 역사 그 자체인 동시 치과 문화유산이다. 나는 적어도 책의 가치를 아는 후학에게 손상 없이 물려주거나 치의학 박물관이나 도서관이 생긴다면 그 곳에 기증하게 될 것 같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가르침을 주신 변영남 선생님을 마음에 간직하면서, 나는 치과의사들과 특히 은퇴하신 치과계 선배님들께 정중히 제안을 드린다.

 

“치과계 선배님!

치과의사로서 평생을 바쳐 오신 것에 존경과 박수를 드립니다.

치과계를 은퇴하시더라도 치과서적들과 치과유물, 사료들을 버리지 마시고

후학들에게, 혹은 도서관에 기증해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성신치과에서 50년 동안 아저씨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봐왔던 수리부엉이가 이제는 강릉 시골집을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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