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일주일 정도면 계묘년이 저물고 2024년 갑진년이 시작된다. 갑(甲)은 방위로는 동쪽을 의미하고 색으로는 청색이다. 진(辰)은 12지지의 5번째로 용을 의미하고 12지지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하늘을 날 수 있다. 따라서 갑진년은 ‘청룡’의 해다. 청룡은 고구려 벽화 사신도에 나오듯이 동방의 수호신이기도 하다. 동양 철학에서 甲은 10개의 천간 중에서 첫 번째로 시작을 의미한다. 즉 갑진년은 10년을 계획하고 새로 시작하는 해다.
새로 시작하는 것은 기존의 것을 업그레이드시키는 리뉴얼보다는 부수고 새로 짓는 리빌딩의 의미가 강하다. 辰은 오행으로 토에 해당하며 천간 목의 기운인 甲목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지지기반이 되기도 하고, 甲목 입장에서는 辰토를 경작하는 소토의 의미도 지닌다. 소토란 경작의 의미로 새로운 농사를 짓기 위해 밭을 갈아엎는 것이다. 즉 유행이나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기반을 만들고 시작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면에서 새롭게 시작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농사를 망칠 수 있다는 의미다. 甲이 지닌 동방은 아침 해가 떠오르는 시작을 상징하며, 청색은 푸르름으로 건강미 넘치게 새로이 시작하는 역동의 모습이다. 물론 새로 시작하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지닐 수 있지만, 그래도 떠오르는 해처럼 희망을 품고 시작할 것을 요구한다. 기존의 질서가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 계묘년이기 때문에 갑진년에 변화를 두려워하고 기존질서를 유지하는 데에만 집착하면 향후 10년의 미래에 뒤처질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전통 사찰에 가면 대웅전 처마 끝에 용머리가 종종 보인다. 불교에서 용은 고통의 바다(고해)인 현실 세상에서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으로 건너게 해주는 영물로 반야용선이라는 배의 역할을 한다. 대웅전 앞에는 용머리가 있고 뒤에는 용꼬리가 있어서 대웅전 법당 자체가 하나의 배를 의미하며 그 배를 타고 고해를 건너 피안으로 간다는 의미를 지닌다. 어떤 사찰은 법당 앞에 놓인 계단 입구에 용머리가 조각돼 있다. 더불어 뒤쪽에도 용꼬리가 조각돼 있고 법당을 포함한 그 전체 마당까지 모두 배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용은 바다에서 하늘로 오르듯이 고해인 현실 세계에서 피안으로 가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의미가 무속 신앙으로 들어가서 굿의 마지막에 배가 나타나며, 그 배에 영혼이 타고 극락으로 간다는 의미로 용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외에도 일상에서 ‘용 되었네’라는 말로 출세를 의미하는 말이 있다. 이는 등용문에서 시작된 말이다. 옛날 중국 황하강 상류에 물살이 너무 세서 고기들이 상류로 거슬러 이동하는 것이 너무 어려운 용문이라는 협곡이 있었다. 그래서 그 협곡을 어렵게 통과한 물고기는 용으로 변하여 승천한다는 전설에서 ‘등용문’이란 고사가 생겼고, 합격하기 힘든 시험이나 고시를 의미하게 되었다.
이렇게 용은 동양의 생활이나 의식 속에서 무한한 긍정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이는 Dragon이라 불리는 서양의 용과는 완전히 다르다. 동양의 용은 수호신이며 물을 관장하고 농사에 필요한 비를 적절하게 뿌려주는 인간에게 이로운 상징인 반면, 서양의 용은 인간을 괴롭히는 괴물의 상징이다. 서양에서 어둠과 악의 상징인 용을 퇴치하면 영웅이 되는 반면, 동양에서는 정의와 수호의 상징인 용의 보호를 받으면 영웅이 되었다. 이렇듯이 용의 보호를 받은 영웅은 다시 용처럼 백성을 이롭게 해야 하는 숙명을 지니게 된다. 그렇게 용은 임금을 상징하게 되었다. 왕은 군림하기보다는 용처럼 무궁한 능력으로 승천하여 하늘에 오르지 않고 백성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했다. 변화무쌍과 천변만화는 용의 능력을 표현하는 용어다. 용들 중에서 가장 젊은 청룡은 늙은 황룡보다 더욱 생동감 넘치기 때문에 더욱 변화무쌍하다. 갑진년 청룡은 더욱 변화가 심할 것으로 생각된다.
새로운 10년의 시작을 꿈꾸어보는 것이 2024년 갑진년 푸른 청룡의 해다. 더불어 지난 것들을 털어버리고 소토하여 밭을 새롭게 갈아엎는 수고를 필요로 한다. 모든 이들이 갑진년 새해에 복 많이 받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