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니 사방이 어둑하다. 흐린 날씨에 조금씩 비가 내리고 있다. 지난밤 저녁 뉴스에서 며칠간 겨울비가 내릴 것이라는 예보를 들으며 약간 귀에 거슬렸다. 입추가 지났고 어제가 우수인 지금 내리는 비는 겨울비가 아니고 봄비라 해야 옳기 때문이다.
비록 아직 두꺼운 겨울 패딩을 벗지 못했지만, 절기상으로 봄이다. 우수는 봄이 시작되는 입춘과 개구리가 깨어나는 경칩 사이 절기로 눈이 녹아 비로 온다는 의미에서 우수다. 봄비는 국어사전에 ‘봄철에 오는 비. 특히 조용히 가늘게 오는 비를 이른다’고 정의돼 있다. 지금 창밖에는 봄비의 특징처럼 고즈넉한 분위기에 조용히 비가 내리고 있다. 역시 겨울비가 아니고 봄비가 맞다. 물론 앞으로 한 두 번의 꽃샘추위는 남아있겠지만 ‘우수 경칩에 대동강 풀린다’는 속담처럼 서서히 봄기운이 돌며 초목에 싹이 트고 먼 산에서부터 초록빛이 올라올 것이다.
24절기는 베이징, 허베이, 텐징 지역인 중국의 황하강 이북인 화북 지역에서 시작됐다. 강을 끼고 넓은 평야 지대이기 때문에 문명의 발상지가 된 곳이다. 24절기는 한반도가 아닌 황하 기준이기 때문에 조금은 차이가 날 수 있지만, 하루 이틀 차이로 무시할 만하다. 이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시간이 서울시가 아닌 동경시를 사용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도 동경시를 사용하고 있는 이유에는 군사적 목적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도 황하의 24절기를 사용하고 있는 것도 비슷하다.
한석규가 세종으로 분한 영화 ‘천문’에서 중국은 당시 첨단학문인 천문을 연구하는 것은 철저히 막았다. 요즘 미국이 중국에 IT를 차단하듯이 국력과 관련된 첨단학문이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중국 책력을 정치에 이용하였듯이 천문은 중국이 더 발달했던 이유도 있다. 황하유역은 우수가 지나면서 빠르게 환경이 바뀌었다. 우수와 경칩 사이를 5일씩 나누어 3후(三候)라 하였다. 첫 5일간은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 올리고, 다음 5일간은 기러기가 북쪽으로 날아가며, 마지막 5일간은 초목에 싹이 튼다고 하였다.
우수가 되면 얼었던 황하강이 녹으며 겨우내 배고팠던 수달이 부지런히 물고기를 잡았다. 겨울 철새인 기러기는 봄기운을 피해 다시 추운 북쪽으로 날아갔다. 경칩이 가까워지면 풀과 나무에 싹이 트기 시작했다. 그 후 다시 보름 뒤인 춘분이 되면 확연한 봄에 이른다. 지난밤 겨울비로 정의한 뉴스 앵커의 말에 이야기가 길어진 모양새다. 사실 봄비는 정서적으로 가을비나 겨울비와 느낌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가을비가 쓸쓸한 코트 깃을 연상시킨다면, 겨울비는 한껏 두꺼운 패딩을 여미는 모습이 생각나는 반면, 봄비는 화사하고 가벼운 옷차림이 생각난다. 봄비는 봄의 전도사로 희망을 담고 있다. 아직 겨울의 찬 기운이 남아있지만 봄 햇살을 가득 품은 화사하고 따스한 햇볕과 같은 희망이다. 비록 바람이 쌀쌀하지만 혹독한 냉기를 품고 있지는 않다. 봄비는 그런 희망을 준다.
필자에게 봄비는 3가지 감성을 준다.
고등학생 시절 무슨 뜻인지도 모르며 배운 시인 이수복의 ‘봄비’가 지금은 구구절절이 가슴 시리도록 다가온다. “이 비 그치면 /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 맑은 하늘에 /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 향연(香煙)과 같이 / 땅에선 또 아지랭이 타오르것다”
두 번째는 할리우드 흑백 명화 ‘애수(哀愁)’에서 비 내리는 날의 만남과 이별과 Auld Lang Syne 음악이 흐르던 클럽의 정서다. 세 번째는 애절함을 담은 장사익 노래 ‘봄비’다. 이제는 이수복의 봄비가 교과서에 실린 이유를 안다. 장사익의 봄비와 애수의 비가 지닌 감성을 모두 포함하고, 애이불비를 새로운 희망으로 바꿔야만 하는 현실을 담았기 때문이다.
요즘 의대 정원 문제로 의료계와 정부가 충돌양상이다. 역사와 문명은 정반을 넘어 합을 이룰 때 발전하고 완성되었다. 변화를 알리는 봄비가 내리는 시절에 미래를 위하여 정반합으로 지혜로운 결정을 이루어 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