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버스터’ 논란이 지난주 출산을 앞둔 임산부를 중심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페인버스터’는 제왕절개 등을 통해 분만할 때 수술 부위 근막에 별도 기구를 삽입해 국소마취제를 투여하는 것이다. 통증 완화를 위해 국소마취제가 지속해서 들어가는 통증 조절 기구다.
정부가 7월부터 시행을 밝힌 ‘요양급여의 적용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 사항’ 일부 개정안 행정예고에 따르면 ‘개흉, 개복술 등 수술 부위로의 지속적인 국소마취제 투여’를 제한하게 된다. 제왕절개 등을 통해 분만할 때 무통 주사와 ‘페인버스터’로 불리는 국소마취제 투여법을 병용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행정예고가 전해지자, 임산부와 그 가족을 중심으로 “출산을 장려한다며 제정신이냐?”, “출산 고통을 그대로 느끼라는 말이냐?”, “가뜩이나 저출산 시대인데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하려고 작정했다” 등 거센 반발이 나왔다.
이에 정부는 “선택권을 존중해 달라는 산모와 의사들의 의견을 반영해 ‘수술 부위로의 지속적 국소마취제 투여 급여기준’ 개정안을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페인버스터’ 등도 본인이 원하면 비급여로 맞을 수 있는 방향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선별급여에서 비급여로 바뀌면 이 비용은 기존의 12만~30만원에서 16만~51만원으로 대폭 오르게 된다.
이번 논란에서 혼합진료 금지 정책의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현재 정부는 기존 선별급여 항목을 2~5년마다 적합성평가위원회에서 다시 평가하여 급여 여부를 결정하거나 기준을 조정한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6월 16일 의과대학 증원 재논의를 포함한 3대 대정부 요구안을 발표하고, 정부가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같은 달 18일 전면 휴진, 이후 무기한 휴진을 포함한 전면 투쟁 방침을 밝혔다. 대정부 3대 요구안 중 먼저 의협이 그간 주장해 온 의과대학 증원 전면 백지화 또는 원점 재검토가 아닌 의과대학 정원 증원안 재논의로 바뀐 점이 눈에 띈다. 의과대학 정원을 포함한 내년도 대학입시 일정이 확정된 상황에서 의협이 정부와 대화에 물꼬를 트기 위한 신호가 아니겠냐는 해석이 나온다.
세 번째인 전공의, 의대생 관련 모든 행정명령과 처분을 즉각 소급 취소 및 사법처리 위협 중단안은 정부가 가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항이라고 본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안은 두 번째인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사안 수정 및 보완이다. 정작 논의하고 연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그간 정부가 의료개혁을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가장 큰 이유는 필수의료 기피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련의 사태로 현재 의료시스템의 구조적, 근본적 문제를 알게 되었고 현시점에서 의료시스템의 문제를 개선하고 고쳐 나가야만 한다. 현재의 환자도 중요하지만, 미래의 환자도 중요하다.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과 함께 제시한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에 대해서는 의료계와 입장이 첨예하게 갈린다. 비급여(건강보험 보장이 안 되는 치료)와 급여(건강보험 보장이 되는 치료)를 묶어 진료비를 청구하는 ‘혼합진료’를 금지하는 것은 의료계 전체의 밥그릇을 뺏는 것으로 비쳐 가장 민감한 사안이다. 정부는 혼합진료 금지를 통해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는 비급여 진료시장을 통제할 방침이다. 혼합진료를 금지하면 소위 인기과 의사 쏠림이 줄어들고, ‘낙수과’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필수의료과로 의사가 지원한다는 것이 정부의 예상이다. 정부는 2028년까지 10조원를 투입해 필수의료(응급, 분만, 중증질환, 소아과) 수가를 올리는 것과 동시에 팽창하는 비급여의 고삐를 옥죄는 통제장치로 ‘혼합진료 금지’라는 칼을 빼 들었다. 현재까지는 과잉 비급여에 대한 혼합진료 금지만 밝혔을 뿐, 혼합진료의 범위를 어디까지 할지, 환자에게 필요한 진료가 제한될 여지는 없는지 등 차분히 따져봐야 하는 쟁점도 많다.
이번 ‘페인버스터’ 논란도 임산부와 가족들의 반발로 한동안은 비급여로 동시에 맞을 수 있게 될 것이지만, 혼합진료가 금지되면 급여인 무통주사와 비급여인 ‘페인버스터’는 동시에 맞을 수 없게 돼 출산을 앞둔 임산부들의 혼란과 공포심은 더욱 커질 우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