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가의 시스템에 아기가 등장하면 문제가 생겼음을 암시한다. 아기는 국가 시스템에 흡수되어 크는 것이지 아기를 대상으로 하는 시스템이 구축된다는 것은 그 사회가 이미 병들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정부는 출산율 저하에 대한 해결책으로 저금리로 신생아대출을 증가시킨다고 발표했다. 얼핏 들으면 엄청난 혜택을 주는 것으로 보이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아기를 낳는 부부에게 대출을 해주니 빚을 내라고 장려하는 것이다.
신생아대출을 들으며 ‘황구첨정(黃口簽丁)’이 생각났다. 조선시대 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전란을 겪으며 인구가 감소하고 농토가 황폐해지며 국가 재정이 극감했다. 그러나 줄어든 재정에 맞춰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재정에 맞춰 징세를 하다 보니 온갖 폐단이 발생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징수 시스템은 삼정으로 토지세와 병역세와 환곡이었다. 세금은 양반과 노비를 제외한 양인들만 부과했고, 병역세인 군포는 병역을 대신해 옷감으로 냈다. 환곡은 봄에 먹을 것이 떨어지면 관청에서 빌리고 가을에 이자와 함께 갚았다. 조선 정부가 거둬들일 양을 정해놓고 징수를 하다 보니 결국 관리들은 무리한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고, 조선 멸망의 근원이 되었다. 그중 하나가 황구첨정이다. 병역은 16세 이상부터 시작하는데 갓난아기(황구)까지 세금을 징수했다. 사회 시스템이 무너진 것을 의미한다. 한두 명의 청렴한 관료나 유능한 왕이 등장해 해결할 수 있는 구조를 넘어섰다.
그런데 300년이 지난 지금 묘하게 ‘신생아대출’이란 단어가 ‘황구첨정’으로 들린다. 조선시대는 징수를 당해 피해로 보이고, 지금은 저금리 대출이라는 특혜로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지 않다. 우선 신생아대출을 받아야 하는 사회구조가 잘못됐다. 집값이 터무니없이 상승한 탓에 결혼을 포기하고 아기를 못 낳을 정도다. 그럼 왜 집값이 올랐는가를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저금리대출을 통한 경기부양책이었다. 지난 정부들이 한국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서 제일 간단한 방법인 대출을 택했다. 저금리 대출을 장려해 집값과 전세가 끊임없이 올랐다. 집값이 오르자 벼락부자가 돼 지출을 했고, 전세금을 올려 지출을 했다. 한국경제를 버틴 것이 서민들의 대출금이었다. 자기들 정부에서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서 끊임없이 대출을 유도하여 가계대출이 2,246조원이다. 이제 과도한 서민 부채가 위기가 되고 대출 감소가 공론화되자 꼼수로 신생아대출이라는 명목으로 또 경기부양을 위해 대출금을 풀겠다는 의미다. 출산장려를 위한다면 신생아대출이 아니라 싱가포르처럼 신혼부부에게 30년 무이자로 집을 주는 것이 옳다. 지금 신생아대출은 어린 부부들에게 대출을 장려해 빚을 지게 하는 것으로 장기적으로 집값이 떨어지면 모두가 벼락거지가 될 수 있는 위험한 정책이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는 대출(국가, 기업, 서민)로 버티다가 이제 끝내 아기에게 대출을 해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선은 황구첨정, 백골징포(죽은 사람에게까지 징수), 친족에게 걷는 족징, 이웃이 도망가서 걸인이 되거나 화전민이 되면 이웃집이었다는 이유로 세금을 부과하는 인징까지 시행하면서 결국 망했다. 지금 우리 경제의 근원이 언제부턴가 대출에 의한 빚이 되었다. 너무 많은 빚의 위험을 인지하고 줄여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정부는 신생아에게 대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환율이 1,400원을 넘나들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혈압이 180~190에서 정도에서 움직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언제 터져도 위험하지 않은 상태이건만 모두가 무심하다. 무심하다 못해 아기에게 대출해준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특혜라고 말한다.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 가난하던 시절에 빚을 구할 수 없다가 이제 꿔주는 곳이 많다 보니 흥청망청이 되었다.
빚은 생산을 위해 투자되는 것이 경제교과서의 기본이다. 집이라는 비생산적 구조에 들어가서 묶이면 안 된다. 비정상이 정상으로 인식되고 특혜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날에 돌아갈 수 있을 희망이 남아 있을 정도로 너무 늦지 않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