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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야기

을사년 첫눈과 송년단상(送年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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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바라본 심리학이야기 (738)

올해도 이제 보름밖에 남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별문제가 없었는데도 사회적으로 혼란하다 보니 분위기에 휩쓸려 어떻게 한해가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지나간 느낌이다. 우리 사회는 자다가 홍두깨라는 말처럼 느닷없었던 지난해 말 계엄으로 시작된 일련의 사건들이 마무리되어가고 있다. 아마도 올해 10대 뉴스는 대통령선거 등 계엄으로 유발되어 벌어진 사건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 금요일 첫눈이 내렸다. 수북하게 내려서 서설이었다. 많이 내린 눈으로 도로는 마비되었고 심지어 자동차를 버리고 가는 일까지 생겼다. 갑자기 내린 눈으로 인한 사고에 대한 이야기만 있었지 뉴스 어디에도 ‘서설’이란 말을 하는 곳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낭만이 없어진 탓인지 아니면 MZ기자들이 서설이란 단어를 모를지도 모른다. 혹은 서설이란 단어가 시대에 뒤처진 용어 탓일 수도 있다. 첫눈 교통 대란으로 서설이란 단어는 듣지 못한 채 눈이 녹으며 관심도 녹았다.

 

서설(瑞雪)이란 상서롭고 길한 징조라는 뜻이다. 옛 농경 시대에 눈이 많이 오면 땅이 얼어붙는 것을 막아주고, 눈이 녹으면서 토양에 충분한 수분을 공급하여 이듬해 농사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첫눈이 많이 내릴수록 이듬해 풍년이 들 징조로 생각하여 ‘서설(瑞雪)’이라고 칭하고 첫눈을 즐거워했다. 그러나 지금은 농경 사회도 아니고 운동장에서 눈사람을 만들며 놀 아이들도 없다. 퇴근길 교통대란으로 눈을 즐길 낭만적인 여유도 없다. 첫눈은 결국 어려서 눈사람을 만들며 놀았던 추억을 지닌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시간이 흘러 그 사람들조차 없어지면 서설이란 용어는 고전 속에 수장되고 고고학적 용어로 될 것이다.

 

어린 시절 첫눈이 내릴 때 즐거웠던 동심을 요즘 아이들은 모른다. 옳고 그름은 아니지만, 놀이터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동네 친구들과 눈썰매를 타본 추억을 모르는 요즘 아이들에게 아날로그적 낭만은 없다. 지금 아이들은 첫눈이 와도 스마트폰을 놓고 눈을 밟으러 나가지 않는다. 첫눈은 스마트폰보다 더 흥미를 줄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과거 흑백 TV 시절에는 아이들에게 흥미롭고 자극이 될 만한 일이 별로 없었다. 눈이 내린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엄청 자극적인 일이었다.

 

지금은 스마트폰을 열면 몇 초 단위로 끊어지는 수많은 자극의 세계로 들어간다. 첫눈이 즐거운 자극으로 수용되기보다는 미끄러운 길을 만들고 교통 체증을 유발하는 귀찮은 사건으로 인지될 가능성이 더 크다. 어쩌면 필자세대가 첫눈을 보면서 어린 시절 눈사람을 만들고 미끄럼을 타며 같이 놀던 동네 친구들을 생각하며 즐거운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세대라는 생각이 든다. 어려서 스마트폰 자극을 경험한 세대는 첫눈과 같은 아날로그적 자극에 반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첫눈은 과거에도 내렸고 앞으로도 급격한 기후변화가 아닌 이상 내릴 것이지만, 이를 느끼는 사람들은 과거와 지금이 다르듯이 앞으로는 달라질 듯하다. 첫눈은 이상과 같은 풍년을 예견하는 의미 외에도 서정적인 순백의 의미도 있었다. 눈은 한순간에 세상을 깨끗한 순백으로 변화시킨다. 더럽고 보기 싫은 곳조차도 모두 덮어버리는 신기함을 지녔다. 첫눈은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다사다난이란 용어가 어울렸던 을사년에 첫눈으로 서설이 내렸다.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많은 사건 사고들이 새해에는 모두 잘 마무리되길 기대해본다.

 

이제 보름이 지나면 병오년(丙午年)이다. 60갑자에서 병오(丙午)는 순수한 빛의 세계를 의미한다. 정오(正午)에 태양(丙)이 하늘 한가운데 떠 있는 형상이다. 모든 것을 비추어 어둠이 가장 작은 때이다.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순백의 눈과 정반대로 빛은 모든 것을 샅샅이 비춘다. 더럽고 추한 것까지 모두 드러난다. 오행 중에 화(火:불)의 기운이 가장 강한 때다. 가장 청명한 때다.

 

병오년에는 지난해 다양한 일들이 정리 정돈되어 새로 시작되는 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며 항상 새해가 돌아온다. 하지만 사람들은 한 해 동안 성숙하여서 해마다 새해를 맞이하는 느낌이 다르다. 을사년 끝자락에 병오년 새해를 기대하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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