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때로 날카로운 칼날이 아닌 문장 한 줄, 말 한마디로 흐름을 바꿨다. ‘삼촌설격퇴적(三寸舌擊退敵)’은 ‘세 치 혀로 적을 물리친다’는 뜻이다. 중국 전국시대 유세객들의 일화에서 비롯된 이 표현은 뛰어난 언변은 재능을 넘어 시대를 움직이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위(魏)나라 장의(張儀)는 초(楚)나라에서 죽을 뻔한 고비에도 “내 혀가 아직 붙어있는가?”를 먼저 물었다고 전해진다. 자신의 언변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확신으로, 그는 훗날 최고의 정치가가 됐다.
기원전 257년 조(趙)나라 평원군의 빈객이었던 ‘모수(毛遂)’는 사신으로 초(楚)나라에 가서 어려운 정치적 상황을 해결했고, 사람들은 “모수의 혀가 100만 대군보다 강했다”고 극찬했다.
우리 역사에도 이와 비슷한 인물이 있다. 바로 고려의 ‘서희’ 장군이다. 993년, 고려의 제4대 광종(光宗)이 송나라와 국교를 맺자, 송나라와 적대 관계에 있던 거란은 요동땅의 장수 소손녕으로 하여금 80만 대군으로 압록강을 넘어 고려를 공격하게 하였다. 고려는 영토인 대동강 이북을 내어주는 화평책을 쓰려고 했지만, 서희(徐熙, 942~998)가 반대했다. 거란의 장수 소손녕이 요청한 회담에 거란군 진중으로 가겠다는 이가 한 명도 없었을 때 서희는 적진으로 들어가 소손녕과 마주 앉았다.
소손녕이 요나라의 옛 영토인 고구려 땅을 내놓으라고 겁박하자, 서희는 고려가 옛 고구려의 이름을 딴 나라인데, 그러면 요나라의 동쪽 땅 모두가 고구려의 땅이었으니 오히려 도로 내놓아야 하지 않느냐고 단호하게 따져 물었다. 논리정연한 서희의 말에 할 말을 잃은 소손녕은 고려가 압록강 이남의 땅에 성을 쌓아 조공을 바치는 길을 개척하고, 매년 사신을 보내 서로 교통하겠다면 군사를 회군하겠다고 했다. 고려가 오히려 강동 6주를 확보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는 중군사 서희가 세 치의 혀로 소손녕의 80만 대군을 물리쳤다 하여 ‘삼촌설격퇴적’이라고 기록했다.
치과계도 본격적인 선거 국면이다. 후보자들이 하는 수많은 말 중에 이치에 닿는 주장은 회원들의 공감을 얻는다. 반면 근거 없는 추측이나 궤변, 상대방에 대한 중상모략(中傷謀略)은 듣는 이의 마음을 돌아서게 만든다. 겉으로는 수긍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돌아서는 순간 신뢰는 무너진다.
흔히 혀끝에 비수가 있다고 한다. 우리 속담에도 “세 치 혀를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주자의 제자이며 송나라 유학자 ‘나대경’이 쓴 학림옥로(學林玉露)에 등장하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은 세 치 혀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의미다.
고집을 꺾지 않고 끝까지 자기주장만 하다 보면 상대방과 불편한 사이가 되기 일쑤다. 특히 말로 입은 상처는 오래 가고 원상회복도 어렵다. 사람은 좋았던 관계나 도움받았던 기억보다 본인을 섭섭하게 만들었거나 상처받았던 순간을 더 오래 기억한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자기 기분대로 쉽게 말하고 근거도 없이 비방해 상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히는 사람들이 많다. 서희 장군처럼 논리적으로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근거 없이 추측으로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괜한 시기심으로 거짓된 비방을 일삼으면 관계 개선은커녕 다시 안 볼 원수지간이 되는 것이다. 치열한 선거일수록 혀끝에 비수를 품은 말이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자신에게 결정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