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을 2회로 졸업한 전찬혁 원장은 미국 유학길에 올라 지금껏 타향살이 중이다. 뉴욕에서 개원생활을 이어갔던 그는 지금, 이름도 낯선 중남미 온두라스에서 의료선교활동으로 남은 여생을 보내고 있다. 고국을 방문한 이유도 온두라스 우나치과대학과 연세치대 및 병원, 의료원 측과의 교류협력 때문. 지난 12일 전찬혁 원장을 만나 의료선교활동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번 방문에 특별한 목적이 있다고 들었다
온두라스 우나대학병원장, 치과대학장과 함께 방문했다. 모교인 연세치대는 물론 연세의료원과도 MOU를 체결해 우리나라의 선진 의학 및 치의학을 중남미 국가인 온두라스에 전파하고자 한다.
치과의 경우 온두라스는 우리나라에 비해 거의 50년 정도 뒤처져 있다. 중남미 지역 국가 대부분이 그렇듯이 온두라스 역시 빈부의 격차가 심해 부유층은 구강건강에 대한 욕구가 강하지만, 일반 계층의 경우 개념조차 없는 실정이다.
박영철 前학장의 배려로 이미 여러 차례 도움을 받은 바 있다. 현재 의료선교를 펼치고 있는 곳에 대한 장비 지원뿐 아니라 인적 교류를 통한 근본적인 치과진료의 개선이 필요할 것 같아 양 측의 다리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MOU 내용은 무엇인가?
구체적인 내용은 앞으로 협의해야겠지만, 궁극적으로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구축해 온두라스 치과의사 인력에게 양질의 치·의학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연세의료원 측이 중남미 지역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데, 내 것을 가지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부족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나눔실천은 연세대를 세운 창립자들의 뜻을 보존하는 일이다.
특히 우리나라에 서양의학을 전파한 세브란스는 당시 천문학적인 금액을 지원했다. 이제 우리가 그 뜻을 이어 세계의 여러 어려운 이웃들에게 돌려줄 때다.
온두라스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
치과의사로서 재능을 살리면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의료선교를 하고 있다. 온두라스에 투신한지 이제 겨우 3년. 솔직히 아직 언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중남미 지역은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쓰기 때문에 언어를 익히는 게 급선무다. 따라서 현재는 선교보다 보건소에서 치과진료에 매진하고 있다.
의료선교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뜻이다. 뉴욕에서 개원하고 살고 있을 때 3번 정도 온두라스에 진료봉사를 간 적이 있다. 3번 모두 단기 의료선교였는데, 두 번째 방문에서, 마음으로부터 어떠한 음성이 들려왔다. 온두라스에서 봉사하면서 살라는 얘기였다. 세 번째 방문에서도 똑같은 목소리를 들었다. 하나님의 목소리라고 굳게 믿었다. 그 목소리대로 나의 운명을 받아들이려고 했지만, 당시 가족과 일 모두 여건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모든 일이 약속이나 한 듯이 2~3년에 걸쳐 순조롭게 풀려나갔고, 지난 2009년 아내와 함께 온두라스에 와서 지금까지 그 ‘목소리’ 대로 남은 삶을 보내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치과대학을 졸업한 지 37년이 지났다. 13년 후에는 졸업한지 50년, 즉 치과의사로서의 삶을 산지 50년이 된다. 나에게 주어진 삶이 그 때까지 허용된다면 치과의사로서 50년을 살고 싶다.
이제 남은 13년 동안 할 일은 내가 받은 은혜를 남에게 배푸는 것이며, 그 롤모델이 바로 모교인 연세대학이라고 할 수 있다. 구한말 세브란스가 한반도에 서양의학을 전파했고, 이를 위해 세브란스병원을 세웠듯이 온두라스에도 이와 같은 병원을 세우는 것이 내 꿈이다.
물론 13년의 세월은 병원을 세우기에 너무나 짧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바탕으로 하는 병원을 세우기 위한 밑거름과 기초를 다지는 일부터 차분하게 준비하고 있다. 다행인지 모르지만, 목사인 내 아들과, 손자도 나와 함께 그 뜻을 세우는 일을 하고 싶어해 큰 힘이 되고있다. 치과계의 관심과 성원 당부드린다.
신종학 기자/sjh@s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