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서대문구에 위치한 강대건치과에는 한센인들이 모여들었다. 한평생 한센인의 벗이자 대부로 살아온 강대건 원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서다. 가톨릭 한센인들의 모임인 한국가톨릭 자조회(自助會)가 감사패를 전달한다는 소식에 강대건 원장과 인연을 맺은 한센인들이 전국에서 모인 것이다. 치과에서 만난 한센인들은 “평소 치과진료는 생각지도 못한 우리들에게는 크나큰 은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오롯이 한센인을 위한 주말
강대건 원장과 한센인과의 인연은 34년을 거슬러 올라간 1979년부터 시작됐다.
가톨릭치과의사회 회장을 맡고 있던 강대건 원장은 당시 치과기공사의 모임인 녹야회의 진료봉사에 함께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포천 농축단지(음성 나환자정착촌)로 떠났다. 도착한 그곳은 참담했다. 찜통 같이 더운 날씨에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판잣집에 살고 있던 한센인은 오랫동안 진료를 받지 못해 구강상태가 엉망이었다.
참담한 현실에 넋을 놓고 있던 강대건 원장의 눈에 봉사에 열중하고 있는 녹야회 회원들이 보였다. 강대건 원장은 ‘이렇게 더운 날 이 사람들은 돈을 주지도 않는데 이렇게 열심이구나. 나는 누군가를 위해 적극적으로 살아본 적이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강대건 원장의 봉사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치과진료비는 물론 처음 몇 년 동안은 재료비조차 받지 않고 자비로 진료봉사에 나섰다.
이러한 강대건 원장을 주위 사람들은 만류했다. “그런 식으로 봉사하면 오래 하기 힘들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후 기본적인 재료비만 받았지만, 혹시 조금이라도 더 받은 돈이 있으면 한센인 공동체에 전액을 기부했다.
주말은 오롯이 한센인을 위해 봉사하던 강 원장은 평일에도 진료를 보는틈틈이 한센인들의 틀니를 제작했다. 한센인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기공료를 아껴보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직접 틀니를 제작해주며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강대건 원장이 지금까지 한센인들에게 만들어 준 틀니만 해도 5,000여개. 그에게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진료기록부만 두꺼운 공책으로 10권이 넘는다.
전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강대건 원장
강대건 원장은 안양 나자로마을 14년, 대구 한센병 정착촌 10년 등 전라도, 경상도를 넘나들며 한센병 정착촌을 매주 찾아다녔다.
한 주도 빠지지 않고 한센인을 만나러 떠나는 강대건 원장을 보며 주위 사람들은 미련해 보일 정도라며 혀를 내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봉사에 대한 그의 열정은 더욱 뜨거워졌다. 한번은 봉사를 가는 기차에서 깜빡 잠이 들어 내려야하는 곳을 지나쳐버렸다. 뒤늦게 내렸지만 초행길이라 한참을 헤맨 후에야 한센인 정착촌에 도착했다. 약속했던 시간을 훌쩍 넘긴 밤이었다.
“저 멀리 정착촌이 보일 때 불빛과 함께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보였고 곧 그들이 나에게 뛰어왔다”고 회상하는 강 원장은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반겨주는 이들을 보며, 봉사가 아닌 친구를 만나러 다니는 즐거운 주말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강대건 원장의 주말여행은 그렇게 33년간 계속됐다.
어느새 한센인의 가족으로
강대건 원장은 단순히 진료만 해온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한센인의 대부로, 그들의 친구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항상 앞장섰다. 한센인의 결혼식, 장례식까지 한센인의 행사라면 시간이 허락하는 한 항상 함께 했다.
강대건 원장의 진료를 돕는 봉사자 중에는 어릴 적부터 그의 봉사를 봐온 한센인의 자녀도 있다. 사회에서 냉대받던 부모에게 따뜻한 사랑의 인술을 배풀어준 강 원장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한평생 따뜻함을 나눈 강 원장은 봉사를 통해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가슴으로 하는 사랑, 그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알게 된 강대건 원장은 “한센인을 위해 살아온 삶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며 “다시 태어나도 한센인을 위해 살겠다”고 말한다.
올해 81세인 강대건 원장은 고령의 나이와 건강 문제로 지난해 8월을 마지막으로 봉사활동을 중단했다. 아직 자신을 필요로 하는 한센인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기에 안타까움은 여전했다.
봉사인생을 마무리한 강대건 원장은 “치과의사는 사회로부터 많은 것을 받아왔고, 그만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며 “은퇴한 치과의사가 어려운 이를 돕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소신을 피력했다.
후배들에게 자신이 걸어온 봉사의 길을 보여주기 위해 그동안 모아온 진료기록부를 치의학 박물관에 기증하고 싶다는 강대건 원장은 더 많은 후배 치과의사가 봉사의 길을 함께하기를 소망했다.
김희수 기자/G@s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