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하십니까’로 시작되는 고려대 대자보가 붙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자보는 하나의 열풍이 되어 전국을 뜨거운 토론의 장으로 몰아넣고 있다. 대학은 물론 고등학교, 정부기관 및 회사 등 대자보가 붙은 장소도 다양하다.
물론, 대자보의 내용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고, 단순히 신드롬으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고려대 대자보는 그 존재만으로도 관심받아야 하는 이유가 충분하다. 생활에 치여 보여도 보이지 않는 척, 알아도 모른 척 해왔던 나와 내 이웃의 현실에 누군가는 다시 눈을 돌리고, 함께 고민해보자며 독려하고자 했기 때문이며, 그간 애써 현실을 외면해온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내 일 아니라는 듯 입 꾹 다물고 지나쳐가는 사람들에 대한 울분으로 나도 모르게 가슴 속에 응어리져왔을 그 무언가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안녕할 수 없는 시기에 묻는 안녕하냐는 인사는 그래서 뼈아프다.
우리 치과계는 그럼 안녕한가? 과연 정말 ‘안녕들 하십니까?’
얼마 전, 치아미백과 라미네이트에 부가가치세를 부과하겠다는 기획재정부의 통보가 있었다(나는 감히, 이를 통보라 부르고 싶다.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달리 무엇이라 부르겠는가). 이미 입법예고 되었고 국회에서도 의견이 모아졌다 하니 시행은 자명한 일. 우리가 제 목소리를 내지도 못한 사이, 시행을 목전에 두고 있다. 단순히 치아미백과 라미네이트에 부가가치세를 붙이는 것만으로 끝날 것인가? 영리병원과 원격의료 도입 등으로 의료민영화에 대한 논란이 가중되는 시점이라 모든 것이 다 수상하다.
어디 정책에서뿐이랴. 환자들의 외면을 받고, 치과 경영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이때, 치과를 넘어 다른 과들과의 경쟁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현재를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향후 치과가 무엇을 가지고 환자들의 구강건강을 증진시키는 데 일조할 것인가, 또 어떻게 진료술식과 기자재를 발전시켜 치과계가 함께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신의료기술로 대변될 수 있는 우리 미래에 대한 고민은 그러나 여전히 냉담함 속에 방치되어 있다. 현재 치과분야 신의료기술 신청도 미비할뿐더러 그 중에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은 것도 극히 적다. 의과분야에서 매우 활발하게 신의료기술을 신청한 것에 비하면 매우 저조한 실적이다.
왠지 생각보다 조용한 치과계를 보면, 그리고 왠지 생각보다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치과계를 보다보면, 우리는 참 안녕한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도 그렇다. 진료를 하다 시간 내서 신문이라도 한번 보고 뉴스를 검색하려 하면, 마음 무거운 얘기보다는 한번 웃고 넘길 수 있는 것에 더 눈이 가고, 치과계 뉴스를 읽다 보면 큰일이다 어찌하나 싶다가도 생활에 치이다 보면 곧잘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래서 더더욱 안녕할 수 없는 세상이, 안녕하지 않은 치과계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자보는 붙일 수 없을지언정, 나도 한번 그대에게, 그리고 나에게 물어나 보자.
“안녕하십니까?” 당신은 정말… “안녕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