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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단] 부친의 이장과 함석태 선생의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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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호 논설위원

7년 전 현충원으로 부친의 이장을 결심한 것은 부친의 메모집을 접하고서였다. 영어교사 시절, 익숙한 검정표지의 학생들 개인생활기록부에 만년필로 출생부터 상벌사항이 한자로 촘촘히 기록되어 있었다. 검단에 있었던 황해도민묘지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개사육장으로 소란스러워질 무렵이었다. 국가유공자 대상여부를 알아보라는 모친의 당부가 있었다. 이제 와서 국가유공자라니…

 

하지만 그 순간 머리에 반짝 섬광이 스쳤다. 부친메모 중 6·25 전쟁 중 대위로 화랑무공훈장 수여기록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일 년 여간 국방부와 보훈처에 통화·서신도 수차례 왕래하고 집사람도 서류접수로 발품을 팔고, 컴퓨터와 씨름했다. 기록된 군번과 메모를 근거로 까마득하게 잊혀졌던 훈장을 되찾고 무공수훈자 대상권리를 획득하기 위해서였다. 전적지에서 전사한 국군의 유골을 획득하여 유전자 감식을 의뢰하는 심정이었다. 그날을 잊지 못한다. 한창 진료 중이었는데 국방부 정훈장교로부터 전화가 왔다. 부친이 수훈대상자로 인정된 것을 축하드린다고, 왜 이제야 신청하느냐고, 훈장은 사단장이 직접 수여하든가 우편으로 우송해드리겠다고 했다. 내가 부모께 할 일을 했구나, 잔잔한 감격이 밀려왔다.

 

부친이 보성전문 법과(고려법대)를 졸업한 것은 1943년 중일전쟁 막바지였다. 해주지방법원에 근무하던 부친은 특별학도병으로 입대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생사와 운명이 걸린 일. 동원직원들의 재촉에 집에도 소식을 끊고 숨어 다니길 한 달 여, 형사들이 매일 찾아와 식구들을 괴롭혔다. 결국 식구들의 고초를 감당하기 어려워 입대하고 만다. 연안읍 역전에서 성대한 출정식 후 평양에서 4주 훈련 후 일본군 소위로 임관되어 만주전선으로 투입된다.

 

지금도 어려서 부친께 들은 이야기가 생생하다. 새벽에 기상하면 영하 20도의 추위에도 오십대의 일본인 군무원이 따뜻한 세숫물과 수건을 딱 받쳐 들고, 당번병이 장검과 권총요대를 채워주었다. 말 타고 장시간 산악지대를 행군하다가 졸아서 굴러 떨어져 죽을 뻔 했던 일. 민간인들 살육장면을 수없이 목격했던 일. 해방 후 4개 월 만에 천신만고 끝 귀국하였는데 악몽과 전쟁후증후군으로 한동안 시달렸다. 한편의 드라마였다. 

 

지난 추석, 아들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해주었더니 “할아버지가 친일이었던 셈이네요~” 그 소리에 아무리 아들이라도 가족사 인식에 거리감이 느껴졌다. 요즘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논란이 시끄러운데, 아들도 좌편향 교육을 받은 감이 느껴진다. 반일반공교육을 철저히 받은 필자는 어려서 역사 정체성에 혼란이 있었다. 부친 전력을 누구에게 떳떳이 밝히기가 꺼려졌다. 왜 일본군 장교였느냐는 질문은 묵시적·본능적으로 건드려서는 안 될 역린 같은 것이었다. 당시 일본군 중위였던 박정희 대통령과 부친이 동일 소속부대 장교일원과 촬영한 사진이 있는데, 난 어린 마음에도 자랑보다는 묘한 괴리감을 느꼈다. 지금에 와서야 불가피했던 당시의 상황들이 공감되고 체험적 인지가 된다. “그때 할아버지가 지금 너보다 훨씬 어린 이십대 초반이었는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 않겠니? 중일전쟁, 6·25 두 전쟁에 참전해 용케 살아 남으셔서 오늘 우리가 있는 것”이라는 천상 설교조에 아들이 수긍했다.

 

시야를 넓혀 우리의 직업적 대부인 함석태 선생에게 관심을 가져보자. 그는 일본치전 출신으로 정식교육을 받은 치과개원의 1호이다. 좌편향의 계급사관 입장에서 보면 그는 부르주아 출신에 일본유학 자체가 친일이고 종로에서 부유층만을 치료했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총독을 저격했던 우국지사 강우규의 손녀를 양녀로 키웠으며(이런 배포와 경제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문화재 수집의 활동과 일가견은 현재 고미술 관계자에게도 알려져 있으며, 한성치과의사회 초대회장으로 후진에 기여했다.

 

얼마 전 서울지부 회사편찬위원회 일원으로서 함석태 선생의 손자인 함각 선생을 조우한 적이 있는데 그도 연로하여 실증적 메모와 기억이 미미했지만 세부적인 사실들을 재확인했다. 동네 아마추어 역사가의 도움을 받아 자료를 취합해 동행했었다. 그의 최초 개업지 표지석 설치는 곧 우리의 역사다. 치과의학사는 정치사로 점철된 큰 줄기가 아니므로 좌우파 논쟁에서도 자유롭다. 역사교과서에 지석영이나 장영실 같이 한 줄만 언급되어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역사가 없는 현재는 없으며 구강보건에 기여한 선생의 역사 일호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다. 함석태선생개원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들의 활약과 서울지부 회장의 정치력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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