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행위별수가제(fee-for-service)는 미국 하버드대학 Hsiao 교수의 투입 자원에 근거한 자원기준상대가치체계(Resource Based Relative Value Scale, RBRVS)를 도입하여 운용중이다. 수가는 투입된 자원총량의 가격으로 결정된다는 이론적 근거에 기반하는 것으로 원가요소가 많으면 수가가 높아야 한다.
미국에서도 상대가치수가제도를 도입하는 초기과정에서 각 전문영역간의 제로섬게임이 이뤄져서 외과 및 수술계열의 수가가 대폭 감소된 반면 내과계 및 검사, 진단부분의 수가는 인상되었다. 그러나 복잡한 수식, 가정, 절차에 의해 과학적으로 도출되는 상대가치의 학술적 모형이 주는 신뢰를 바탕으로 집단 간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과정에서 수가를 감소시키는 합의를 도출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정부에는 도구적 근거를 제공해 주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 하나는 미국의사협회에서는 수가인상에 의해 이익을 본 의사 수가 손해를 본 의사 수보다 많았기 때문에 전체회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소수 고소득의사의 수가를 대폭 감소시켜 다수의 상대적 저소득의사들의 수가를 조금씩 인상시키는 개편안을 받아들이고 상대가치의 결정에 주도권을 가져오는 기회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상대가치제도도 개편을 한다. 2차개편에서는 총 8,500억원의 재원을 투입해 수술, 처치, 기능검사 원가보상률을 9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고 정부에서 발표를 했다. 저 문장만 보면 기존 재정 외에 8,500억원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고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상식적일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재원조달 방식은 원가보상률 100%가 넘는 검체검사, 영상검사 수가를 인하해서 각각 3,637억원, 1,363억원의 건강보험 재정 절감분을 수술, 처치, 기능검사 수가 인상에 투입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즉 왼쪽 주머니에 있는 원가보다 높은 곳에서 5,000억원을 오른쪽 주머니의 수술, 처치 등으로 옮긴다는 것이다. 나머지 3,500억원도 매년 수가계약에 따른 환산지수 차감으로 환수된다는 발표가 있었다.
검체검사나 영상검사는 자동화 등의 이유로 투입자원이 감소하고, 따라서 정확하게는 상대적으로 수술이나 처치보다는 원가보상률이 높다는 것이지만 적정 원가인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병원급 이상에서는 내과와 외과, 진단과 등을 고루 가지고 있어서 결국 병원 자체의 손해가 없으니 별 영향이 없게 된다. 그러나 특정 전공의 경우 수가가 낮아지는 결과에 따라서 손에 보이지 않는 손해나 인력배정 등에서 불이익을 받는 일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상대가치 점수에서 이러한 당시의 논리에 의해서 전체적인 재정이나 점수의 순증 없이 여기서 떼어다가 저기에 붙여주고,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식의 임시변통을 하는 하석상대(下石上臺)같은 뒤죽박죽 정책은 문제가 있다.
원래 처음에 출발하면서 보험재정 파탄이라는 변수에 의해서 단계적 반영이라는 것이 실행되지 못하면서 왜곡된 수가는 바로 잡지 못했고, 과별 총점고정의 원칙을 도입하여 결국 행위 간 약간씩의 조정을 하다가, 갑자기 계열별로 주머니 옮기기 정도로 개선이 되었다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이 결여돼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정책점수라는 것이 반영되면서 이제는 거의 누더기 수준이라는 혹평이 무색하지 않다.
상대가치는 숫자로 나오기에 뭔가 정확한 것 같아도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현재 보험수가가 정말로 자원투입이나 원가를 반영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제대로 된 수가를 내 평생 볼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