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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치과생활

[즐거운 치과생활] 프랑스 모더니티의 영광, 오페라 가르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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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작은 미술관에서 만나는 위대한 예술가 이야기 #4
글/사진_안성규(프랑스 미술관 국가 공인가이드)

 

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오페라 하우스

 

전 세계의 주요 대도시 어디를 가나 그곳에는 음악당이 있다. 우리가 그곳을 가는 이유는 주로 클래식 음악회 또는 오페라 등을 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런데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는 공연을 보지 않더라도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곳이다. 나 역시 여행자들에게 시간이 허락만 된다면 꼭 한 번 들어가 볼 것을 강력히 추천하고 있다. 이곳은 단순한 공연장을 넘어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이 있고 화려한 볼거리가 넘쳐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파리 오페라에서 우리는 음악을 이야기함은 물론 문학, 건축, 회화, 조각 등 다양한 장르의 인문학과 예술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일종의 박물관과 같은 이곳에서 우리는 역사 속의 위대한 예술가들을 만난다.

 

1860년대 역사 속으로

프랑스는 1848년 2월 혁명을 통해 두 번째 공화국을 맞이했다. 루이 필립 왕이 폐위되고 빈 체제가 완전히 붕괴됨에 따라 프랑스 땅에 왕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으며 초대 대통령으로 나폴레옹 3세가 당선되었다. 그는 우리가 잘 아는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1세의 조카로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으며 국가의 수장이 되었다. 새로운 프랑스를 만들려는 그의 야심은 결국 그를 공화국에 대한 쿠데타를 일으키도록 이끌었으며, 1852년에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되어 독재정치를 시작한다.

 

나폴레옹 3세는 당시 파리가 속해 있는 일 드 프랑스 지역 도지사였던 오스만 남작과 함께 도시 재정비 사업에 착수하였다. 어둡고 악취가 나는 좁은 중세 분위기의 도로들과 건물들을 철거하고 넓은 대로와 주상복합 형태의 근대식 건물을 새롭게 건축했다.

 

사실, 넓은 대로를 낸 가장 큰 이유는 시민들이 바리케이드를 치지 못하게 하여 정부에 대한 저항을 막는 것이었는데 이는 결국 변화하는 시대에 부합한 도시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결과를 낳았다. 이제 파리는 완전히 새로워졌다.

 

 

도시 재정비 사업이 한창이었던 1858년 1월 14일, 오페라 극장에서 황제를 암살하기 위한 폭탄 투척 사건이 일어났다. 죽을 고비를 넘긴 나폴레옹은 이를 계기로 기존의 오페라 극장 대신 새로운 오페라 극장 건설을 추진하였다. 변화한 도시에 걸맞은 새로운 건축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정부는 1860년 새로운 오페라 극장 설계 공모전을 열었는데 여기서 청년 건축가 샤를 가르니에(Charles Garnier, 1825~1898)의 응모작이 당선되었고 건축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861년부터 시작된 건축은 1870년 프러시아 전쟁과 1871년 파리코뮌 사태로 인해 중단되기도 하였으나, 우여곡절 끝에 1875년 1월 5일 개관하여 세계 최고 오페라 하우스의 탄생을 전 세계에 알렸다.

 

샤를 가르니에와 그의 건축 세계

이 새로운 오페라 하우스는 파격 그 자체였다. 나폴레옹 3세의 황후였던 외제니는 이 건축물을 보고 투덜거리면서 다음과 같이 건축가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니 이건 도대체 뭐죠? 르네상스도 바로크도 아닌, 그렇다고 고전주의도 아닌 이 건축 양식은 도대체 뭐란 말입니까?” 이에 대해 가르니에는 “이것은 나폴레옹 3세 양식입니다”라고 답하였다. 이 대화가 진짜 역사적인 사실인지, 누군가 지어낸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 대화 속에서 젊은 건축가의 패기와 지혜 그리고 야망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황후가 말한 바와 같이 이곳은 수 세기에 걸친 미술사의 여러 양식들이 혼합되어 있다. 그러나 건물의 외관과 내부에서 이러한 특징이 무질서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압도적인 화려함 가운데 자연스럽고 조화롭게 녹아져 완전히 새로운 근대적 건축미를 뿜어낸다.

 

오페라 내부로 입장하면 만나는 대계단과 중앙홀은 다채로운 색깔의 최고급 대리석으로 제작되어 부드럽고 우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그리고 과거 연회가 열리기도 했으며 오늘날에는 공연 중 인터미션 때 샴페인을 한잔 마실 수 있는 공간인 대 휴게실이 콘서트홀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이 오페라 극장 내에서 가장 화려한 장소이다.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을 연상케 하는 이곳은 금박과 금색의 페인트로 치장되어 사치스럽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나폴레옹 3세가 태양왕 루이 14세의 영광에 뒤지지 않으려는, 아니 오히려 그것을 뛰어넘고자 하는 자신의 야망을 이 장소에서 드러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마도 건축가가 얘기한 나폴레옹 3세 양식이라는 말의 의미는 바로 황제의 야망과도 관련된 것이 아니었을까?

 

 

 

<오페라의 유령>의 배경

우리에게는 뮤지컬과 영화로 더 친숙한 <오페라의 유령>은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Gaston Leroux)가 집필하여 1910년도에 출판된 소설이다. 극장 내에서 관리자들에게 협박편지를 보내어 권력을 휘두르며 유령 행세를 하는 에릭과 프리마돈나 크리스틴,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라울 자작과의 삼각관계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이 줄거리를 이룬다. 특히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 퍼지는 뮤지컬은 오늘날에도 스테디셀러로서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여전히 공연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소설가가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의 역사 속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들을 소재로 하여 글을 썼다는 것이다.

 

작품 속에서 유령은 극장 지하의 호수에서 살고 있는데 실제로 오페라 건물 지하에는 큰 호수가 있다. 가르니에가 건축을 시작할 당시 땅 아래 지하수가 흐르는 것을 발견하였고 건축의 지반을 튼튼히 하기 위해 벽을 쌓아 호수를 건설하였다. 또한 소설 속에서 유령이 공연장 내 샹들리에를 끊어 떨어뜨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 역시 1896년 5월 어느 저녁 공연에서 샹들리에의 평형추 한 개가 떨어져 한 명이 사망했던 사건이 모티브가 된 것이다. 이 사망 사건 후 극장 측에서는 샹들리에의 모든 평형추를 제거했으며 다시는 이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오페라에서 공연을 볼 기회가 생겨 좌석을 예약할 때 주로 측면 박스석으로 예약한다. 뭔가 아늑함이 있어서 좋기도 하고 유령이 자신만의 자리를 위해 항상 비워 두라고 명령했던 좌석도 바로 2층 5번 박스석이었기 때문에 이곳에 앉아있으면 더욱 소설 속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옛날 영화 속에서 오페라 공연장의 모습이 나오는 장면들을 보면 왠지 꼭 박스석이 포커스 되고 있지 않은가? 기왕이면 분위기 있게!

 

 

공연장과 샤갈의 천장화

거대한 샹들리에가 있는 약 2,105석의 공연장 내부는 말발굽 모양의 이탈리아 양식으로 설계되었다. 관람석은 전체적으로 붉은색과 금색으로 되어있는 보석 상자와 같은 느낌을 주는데 특히 붉은색이 주요 색으로 정해진 것은 건축가의 의견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가르니에는 공연장에 온 여성 관객들이 돋보여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붉은색이 조명과 함께 얼굴에 반사되면 여성들이 더욱 젊고 화사하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붉고 우아한 극장을 더욱 특별하게 해주는 것이 있다. 이것은 파리 오페라가 미술관이 될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의 천장화이다. 1960년대 프랑스의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는 그의 친구였던 샤갈에게 오래전 이 프로젝트를 제안하였고 1963년 당시 77세의 노화가는 다른 3명의 조수들과 함께 약 8개월간에 걸쳐 220제곱미터의 거대한 작품을 완성시켰다. 이듬해인 1964년 9월 23일 새로운 천장화를 축하하는 오프닝 세레머니가 열렸으며 이로 인해 기존에 존재하던 르네쁘브(Lenepveu)의 천장화는 가려졌다.

 

그림을 보면 크게 5가지의 원색으로 된 구역에 에펠탑, 개선문, 오페라 등이 그려져 있어 자칫 파리의 주요 장소를 테마로 한 것인가 하는 오해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서양 음악사를 빛낸 음악가들과 그들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그럼 구역별로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10년 전에 앙드레 말로 씨가 나에게 파리 오페라 하우스의 새 천장화를 그려 달라고 제안했다. 나는 고민에 빠졌고, 감동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의심을 품었다. 밤이나 낮이나 나는 오페라 하우스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건축가 가르니에의 천재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는 윗부분에서 배우와 음악가들의 창작활동을 아름다운 꿈속의 거울에 비친 것처럼 묘사하고 싶었고, 아랫부분에서는 관객들의 의상이 일렁이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론이나 방법 같은 것에 구애받지 않고 새처럼 자유롭게 노래하고 싶었다. 오페라와 발레 음악의 위대한 작곡가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나는 정성을 다해 작업에 임했다. 프랑스가 아니었다면 색채도, 자유도 없었을 것이다.” - 1964년, 마르크 샤갈

 

 

 

 

 

 

카르포의 조각 <춤>

샤갈의 그림뿐 아니라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유명한 조각이 있다. 샤갈의 천장화 하얀색 구역에 그려진 오페라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장 밥티스트 카르포(Jean-Baptiste Carpeaux, 1827~1875)의 1869년작 <춤>이다. 나폴레옹 3세 치하에서 이루어진 파리 재정비 사업 때 근대식 건물들이 새롭게 많이 지어지면서 장식 조각이 많이 이루어졌는데 이 오페라도 건축되면서 여러 조각가들이 장식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중 가장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 카르포의 <춤>이다.

 

건물 파사드에 있는 다른 차분한 조각들과 달리 이 조각은 남녀가 벌거벗은 채 손을 잡고 쾌락적인 미소를 띠며 춤을 추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것이 당시 보수적인 파리 시민들을 불쾌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거센 철거 요청에 잉크병 투척 세례까지 받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였고 원작에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원작은 보호를 위해 1964년 루브르 박물관으로 옮겨졌으며 현재는 오르세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현재 오페라에 장식되어 있는 것은 1963년 복제된 조각이다.

 

 

 

최고의 감동은 오페라에서 나오면서 경험한다

 

 

우리는 왜 유럽의 도시들을 방문하는가? 로마로는 고대 로마제국의 역사와 유물을 보기 위함이며, 피렌체로는 르네상스 시대의 역사와 예술을 만나기 위함이다. 알프스의 멋진 풍경을 보기 위해 우리는 스위스를 방문하고 가우디라는 전설의 건축가를 만나기 위해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떠난다. 그렇다면 파리는 무엇을 보러 가는 것인가? 그래, 바로 에펠탑으로 상징되는 19세기 후반 아름다운 시절, 즉 벨에포크(Belle époque)로 시간 여행을 떠나기 위함이다.

 

파리에 10년 넘게 살면서 이 도시가 가진 아름다움 때문에 눈물이 찔끔 날 만큼 감동을 받은 몇 번의 순간들이 있다. 그 중에 한 번이 바로 오페라에서 공연을 보고 나온 후 내 앞에 펼쳐진 오페라 대로의 야경을 바라보았을 때이다. 수도 없이 지나가며 바라보았던 풍경이었는데, 이날은 왜 달랐을까? 오페라 가르니에 안에서 역사, 건축, 문학, 예술, 그리고 음악까지 근-현대의 문화를 입체적으로 경험하면서 나는 비로소 프랑스 모더니티의 영광이 무엇인지 그 진정한 의미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겉만 보고 가는 여행이 아닌 들어가서 경험하는 여행, 그때 진짜 감동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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