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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치과생활

[즐거운 치과생활] 우리옛돌박물관과 길상사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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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_현석주 편집위원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도, 확진자에 대한 숫자 세기도 점점 느슨해진다. 백신 맞은 지는 꽤 되어서 불안감은 적지만 그래도 아직은 마음이 편하지 않다. 언제 또 확산되어 사회적 거리두기 등 제약이 많아질 수 있으니까. 서울 근교에 코로나19도 날려버리고 기분도 전환할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있을까? 사람도 좀 적고 알려지지 않은 숨은 곳이면 더 좋고.

 

우리옛돌박물관? 아마 이런 곳이 있나 하고 핸드폰으로 손이 가서 이미 검색하고 있을 수도 있다. 늦가을 단풍을 즐길 수도 있는 곳이라 하여 일요일 점심에 편집위원들과 함께 방문해보기로 하였다.

 

오늘은 만나기로 한 날이다. 아침에 이것저것 일을 본 후 약속시간이 다되어 내비게이션을 찍어보니 성북동쪽이다.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가깝다. 안국동 북촌 거리를 지나 단풍나무 사이로 구불구불 길을 따라 올라간다. 점점 올라가는 것을 보니 성북동 북악산 자락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전경도 기대된다. ‘오늘 미세먼지 최고’라는 날씨예보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흐흑.

 

 

성북동 고급 주택들을 사이사이 지나 쓱 나타난 박물관의 모습은 고즈넉하고 돌의 무게감을 나타내듯 뭔가 안정적인 느낌이다. 베이지색 대리석으로 마감된 건축물의 모습이 오래된 돌들과도 어울릴 것 같다.

 

아직은 코로나19 상황. 체온 체크하고 QR 체크하고 입장한다. 유물들을 설명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나 코로나로 중단된 상태라고 한다. 이런 박물관은 설명해주는 것을 듣는 재미도 쏠쏠할 텐데 아쉽다. 해설사가 다시 가동되면 한 번 더 와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입구를 지난다. 옛돌박물관이라, 무엇이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이런 박물관이 생겼을까 하는 물음표가 먼저 켜진다.

 

 

박물관의 소개 글을 인용한다.

“우리옛돌박물관은 국내외로 흩어져있던 한국석조유물을 한자리에 모아 건립한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석조전문박물관입니다. 박물관에는 일본으로부터 환수한 문화재를 전시한 환수유물관부터 시작해서, 문인석, 장군석, 동자석, 벅수, 석탑, 불상 등 다양한 돌조각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석조유물뿐만 아니라, 규방문화의 결정체인 전통 자수작품과 한국을 대표하는 근현대작가의 회화작품도 함께 전시하며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우리옛돌박물관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 박물관은 ​1978년부터 석조유물을 수집하기 시작해 2000년 경기도 용인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석조유물 전문박물관인 세중옛돌박물관에서 출발해 2015년 북악산과 한양도성 사이에 자리한 성북동 언덕에 우리옛돌박물관으로 재개관했다. 현재 석조유물 1250점, 자수작품 280여 점, 근현대회화 1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옛돌박물관은 대한민국의 수복강녕과 길상을 기원하는 박물관으로써 한국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자 그럼 들어가 볼까.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걸음을 옮긴다.

 

박물관은 △환수유물관 △동자관 △벅수관 △자수관 △근현대회회관, 그리고 야외전시관으로 구성돼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인왕산 그림이 대신 안내를 해 준다. 거친 터치로 옛돌박물관의 기운을 자아낸다고 할까. 단풍이 살짝 든 그림 속 나무들이 시간의 일치감을 느끼게 한다. 실내에서도 단풍이 느껴진다.

 

바로 오른쪽으로 ‘환수유물관’이 보인다.

“환수유물관 / 바다를 건너온 돌사람, 고궁의 품에 안기다.”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문인석, 동자석 등 돌문화 자체가 넘어가거나 돌문화 기술자들도 꽤 도일한 것으로 안다. 그 유물들을 되찾아 우리의 옛 기운 정신을 되살리려는 노력의 흔적이 보이는 전시관이다. 환수해온 유물들의 테마가 ‘돌상’인 것 같다. 큰 전시공간에 한가득 어른 키만한 돌상들이 서 있다.

어두운 조명이 더더욱 우리네 아픈 역사를 후벼내기도 하고 어둠에 감춰버리고 싶기라도 한 것처럼 잔잔히 말 없는 동상들을 비춘다. 

 

 

2층으로 올라간다. 2층에는 뭐가 있을까. 궁금한 생각의 길이를 천천히 길게 가지려고 계단으로 올라간다.

 

‘자수관’이라는 안내문이 보인다. 자수관? 자수라면 형형색색 색실로 그림이나 문양을 수놓는 것인데 돌문화와 어울리는 부분이 있는 걸까? 호사스런 빨강 노랑 색깔에 시선이 빼앗겨 생각은 멈추고 맘에 드는 문양 앞에 서게 된다.

 

 

보자기 자수라는 것도 있는데, 강원도 자수 보자기는 행운과 다복을 기원하는 문양이란다. 그중에 눈에 드는 것은 베개 자수. 베개 커버에 문양을 넣은 것인데 현대인들도 숙면이 중요한데 잠을 잘 자는 것이 건강에 중요한 점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듯 하다. 

 

요즘엔 목을 잘 받쳐주는 경추베개니, 메모리폼베개니, 꿀수면을 기원하는 많은 베개가 소재나 모양쪽으로 발달했다면, 예전에는 베개에 그려 넣는 자수 문양으로 꿀수면을 기원한 것 같다.

 

여러 가지 문양들을 자수했는데 그 문양에 따라 기원하는 바가 약간씩 달랐다.부귀를 뜻하는 모란과 생명의 창조와 번영을 상징하는 연꽃을 수놓아 길상의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딸기, 포도와 같은 과일을 수놓아 다산을 기원하고 희(囍), 다남자(多男子), 수복강녕(壽福康寧) 등의 글자를 수놓아 행복과 평안을 빌었다고 한다. 십장생은 무병장수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나한테 고르라면 마음을 차분하고 안정되게 하는 단색의 베개가 좋을 텐데 예전에는 화려하고 문양이 많은 베개가 문화였던 것 같다.

 

바로 옆의 전시관으로 발걸음이 옮겨간다.

함박눈이 가득 쌓인 소나무 그림이 보인다. 사계절에 따라 달라 보이는 박물관인 것 같다.

 

그 옆에 ‘동자관’이라는 곳으로 들어가 본다.

 

“동자석. 16~18세기 중반까지 서울과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왕실 가족과 사대부 묘역에 조성된 석물이다. 쌍상투를 틀고 천의를 입고 지물을 들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공손히 시립하여 엄숙한 묘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존재이다. 동자석의 조성 초기에는 불교 동자상과 같은 장식적인 표현이 두드러지며 생동감이 강조된 모습이었으나, 서서히 단정한 모습의 유교적 시동상의 모습으로 형태가 변화된다. 17세기 이후로는 점차 문인석과 혼합되는 양상을 보이는 등 조선후기로 갈수록 동자석 고유의 특징이 사라진다.”

 

그중에서 제주동자라고 이름 지어진 돌상이 보인다. 제주동자는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동자석은 연꽃을 들고 있거나 제기차기를 하는 모습이 많다. 그 역할 또한 무덤의 수호신, 마을의 지킴이 등으로 다양하다고 한다.

 

동자석은 손에 다양한 물건을 들고 있다. 꽃을 들고 있는 것은 무덤 주인의 극락왕생을 빈다는 의미가 있고, 술이나 떡을 들고 있는 동자석은 무덤 주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물건을 들고 있는 것이라 해석이 되며 무덤을 수호하는 의미로 방망이를 들고 있는 동자도 있다. 불로장생의 상징인 복숭아를 두 손에 들고 있는 동자승의 모습도 보인다.

 

 

내가 동자석을 만든다면 어떤 모습의 동자를 만들까 생각하며 다음 길로 옮긴다.

 

요즘의 피규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이나 인물, 캐릭터를 형상화하여 현실화한 것이 캐릭터며 피규어지만, 피규어는 사실은 본인이 되고 싶은 형상이거나 자신인 경우일 것이다. ‘동자석이지만 귀여워 보이진 않네’라는 생각과 함께 지나간다.

 

다음 전시실에는 ‘벅수관’이란 안내판이 보인다. ‘벅수’는 ‘장승’의 사투리란다.

 

인용해본다.

​“벅수는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장승을 부르는 명칭으로 순우리말이다. 장승은 나무로 만든 목장승과 돌로 만든 돌장승 두 가지가 있다. 목장승은 비바람에 쉽게 썩어 주기적으로 교체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원래의 모습에 다소 변화가 생길 수 있으나, 돌장승은 한번 세우면 반영구적으로 전승되기 때문에 조형성이나 미의식에 대해 다양한 접근이 가능했다. 사람의 얼굴을 한 장승을 마을 입구에 세워두면 전염병을 가져오는 역신이나 잡귀들이 겁을 먹고 마을로 들어오지 못한다고 믿었으며, 재화를 막고 복을 가져다주는 신비스러운 힘이 있다고 여겨 마을의 벅수에게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소원을 정성스레 빌었다. 또 벅수는 전문적인 장인이 아닌 마을 주민 중에서 견문이 있거나 장승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제작한 것으로 형태 또한 정형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 공동의 요구에 따라 그때그때 만들어졌다. 따라서 우리 민초들의 삶과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석조물이며, 그들의 희로애락이 그대로 드러난 천진한 표정, 해학적 표현 등이 특징이다.”

 

벅수가 많을수록 가뭄이나 역병 등의 재난 상황이 많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해본다. 마을 평민들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기에 벅수라도 만들어 안녕과 평안을 지키려는 심정이 담긴 구조물인 듯하다. 마음을 달래는 구조물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하는 현세에도 백신을 만들고 진단키트를 만들고 치료제를 연구한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 2년 동안 벅수 시절과 달라진 건 별로 없는 것 같다. 카운팅하고 백신은 만들었지만, 아직도 걸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은 그때나 매한가지이니까. 집 앞에 코로나가 범접하지 못하게 벅수 한 쌍을 세워두고 싶은 심정이다. 얼굴은 석굴암의 부처님 얼굴처럼 평안한 인상에 한 손에는 바이러스를 날려주는 부채와 한 손에는 바이러스가 소멸되는 만파식적 피리를 들고 우직하게 마주보고 서 있는 벅수를 상상해 본다.

 

 

야외전시관으로 나온다. 관솔대 하마비 등 널찍한 야외에 여러 가지 모양의 돌상들이 늘어서 있다.

 

여기도 제주 동자석이 보인다. 제주 돌하르방이 생각난다. 조선시대 때 제주에 전염병과 흉년이 자주 들자 중국의 옹중석을 들여와 세워 원귀가 드나들지 못하도록 했다는데. 그 맥락이 같은 것 같다. 아마 아무리 문명이 진화하고 과학이 발전해도 인간의 곁에는 의지할 만한 정서적인 무엇인가를 곁에 두고 싶어하는 마음은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박물관 건물을 둘러싼 야외전시관을 산책한다.

 

북악산 높은 등줄기에 자리 잡고 있어서 날씨가 청명한 날엔 박물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전경이 좋을 것 같다. 정원이 잘 다듬어진 주택들이 저마다 서울뷰를 내려다보며 뽐내고 있는 듯하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나올만한 저택들이다.

 

인간은 왜 미술은 할까. 왜 뭘 그리고 조각하며 수를 놓을까. 무엇을 기원하고 무엇을 갖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그 대상이 결국 자신인 걸까? 하는 질문을 남기고 박물관을 나온다.

 

 

미세먼지를 뚫고 저택들 사이 골목으로 내려오면서 다음 일정인 ‘길상사’란 곳으로 이동한다. 그래도 아직 가을인데 단풍놀이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입구 종무소에서 또 한 번 체온측정과 QR체크를 하고 입장한다.

 

길상사는 1987년에 김영한이라는 분이 서울 3대 요정인 대원각을 운영하다가 법정스님의 말씀에 감동하여 법정스님에게 음식점을 기부하고 불도량으로 청하여 1997년에야 시주를 인정하여 창건된 절이다. 길상사라는 이름은 김영한 씨의 법명인 길상화를 따서 지었다 한다. 옛돌박물관에서 들었던 길상과 길상사가 같은 의미라는 점을 되뇌이며 절 내부의 아름드리 단풍을 느껴본다.

 

이쁘다. 선명한 빨강이면서도 눈에 피곤함을 주지 않는 단풍잎들이 아직은 절 내부의 길상을 기원하듯 자태를 유지하고 있다. 노란 은행잎들이 있으면 더 예쁠 텐데, 떨어져 치워진 은행잎들의 덧없음도 보인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다니’ 하면서 둘러보니 포토존 아닌 곳이 없다. 좀 늦은 단풍 시기임에도 이쁘다. 사람도 그리 북적이지 않는다. 한적한 느낌인데 뭐랄까 처음부터 도량으로 지어진 게 아니어서 그런지 수도하고 고행하고 고독한 분위기가 덜하다. 화려함까지는 아니지만, 한복의 옷고름이 살짝 흩날리는 것 같다. 절 내의 둘레길을 따라 올라가 본다. 저절로 더 이쁜 포토존이 있을 것 같은 마음에 계속 이리저리 둘러보고 걸어 다니게 된다. 언덕 끝에 자리 잡은 조그만 암자가 하나 보인다. 진영각?

 

 

진영각은 법정스님의 생전 유품들이 보관되어있는 암자이다. 쓰시던 면도기, 세숫대야도 있다. 이혜인 수녀와 주고받으신 편지, 책, 메모들도 보인다. 바로 옆에 법정스님의 유골을 모시고 있다는 안내문도 보인다. 잠시 법정스님의 설파하신 무소유란 단어가 떠오른다. 김영한은 무소유의 진리를 깨달은 것일까? 그래서 대원각을 시주한 것일까? 내 마음을 소유한 것이 소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진영각에서 다시 극락전으로 내려오는 길은 단풍과 고즈넉한 암자들에 어울려 가을답게 수놓아져 있다. 내려오면서 생각해보니 ‘벅수’의 한자와 ‘법정’의 한자도 비슷하다. 무언가 바라지만 결국엔 무소유로 돌아가는 것이 일맥상통한 느낌이다.

 

갑자기 출출하다. 내려가는 길에 간단히 막걸리 한잔에 오늘 풍광을 안주 삼아 이야기하다 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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