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구정 연휴 마지막 날이다. 올초에 원고 부탁을 받은 후 3주 동안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글을 써내려 간다.
올해도 어김없이 새로운 해가 시작됐다. 새해 첫날 다짐했던 결심들이 흐린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던 때, 바로 찾아온 음력 1월 1일 또한 사흘이 지나가고 있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결심만 하고 실행을 못할까?
얼마 전 읽었던 뇌와 인지과학 분야 저명 학자인 개리 마커스의 저서 ‘클루지(Kluge)’에 따르면, 인간은 새로운 도전을 꺼리도록 진화했다고 한다(클루지(Kluge) : 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 해결책).
저자가 주장하는 핵심 개념은 ‘진화의 관성(evolutionary inertia)’이다. 인간의 진화는 완벽한 체계를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에 계속 ‘땜질’을 해가는 속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개리 마커스는 인간의 마음이 세련되게 설계된 기관이라기보다 ‘클루지’, 즉 서툴게 짜 맞춰진 기구라 주장한다. 생존 때문에 최선의 선택을 방해받는 진화의 법칙, 즉 진화의 관성 때문에 우리들의 마음과 세계는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과거 원시시대에는 새로운 도전을 한답시고 맹수들에게 덤볐다가는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오히려 직접 도전하지 않고 본연의 일만 하던 원시인들이 더 많은 혜택을 누리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아무 도전도 하지 않는 것이 내 삶을 더 힘들게 만들고, 진정한 시간적·경제적 ‘자유 박탈’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일평생 내 인생을 장악할 수도 없이 돈과 시간으로부터 속박돼 살아가는 것이다.
도전과 혁신이 지상 과제가 된 현대사회에서 겁쟁이 클루지는 자기계발에 큰 장애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자연스러운 진화의 관성 때문에 우리는 이번 새해에도 어김없이 술과 담배를 끊겠노라 약속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겠다 결심하며,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작심삼일은 고사하고 하루 이틀 만에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왔나 보다. 유전자의 명령과 본능에 사로잡혀 온갖 핑계를 만들어내며 포기하기를 반복했나 보다.
올해부터는 전 국민의 나이가 1~2살 줄어들어 감사하지만, 필자는 올해 기존 한국 나이로는 하늘의 명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됐다. 매 새해 다짐하고 결심하는 것들을 이제는 가볍게 넘기면 안 되겠다 싶어 꼭 지켜야 하는 환경으로 만들어 버렸다.
자주 마시던 술은 일주일에 한 번으로 줄이기, 나이가 들며 점점 빠지는 근육을 위해 코어근육 운동하기, 독서 모임을 만들어 한 달에 2권 이상의 책을 반드시 읽고, 일주일에 2회 이상 블로그에 글쓰기 등을 목표로 삼고, 이를 지키지 못할 시 아내와 아이들에게 회당 만원의 벌금을 물기로 했다.
인간의 본성보다 자본의 힘이 더 위대하다는 믿음으로 계묘년 한 해를 즐겁게 시작해보려 한다.
모쪼록 치과신문 구독자 여러분도 올해는 바라고 소망하는 모든 일들을 이루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