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시끄럽다. 세상사가 항상 평탄하지는 않다. 하지만 여기저기 봇물 터지듯이 문제가 노출되다 보니 여러 의문점이 생기게 된다. 아무리 역동적인 대한민국이라 하더라도, 원래 이런 나라였는지 아니면 무언가 하나 잘못되기 시작하여 모든 것이 엇박자가 나오는 것인지. 우리나라의 시스템이 문제인지 사람이 문제인지.
예전부터 시스템을 잘 만들어 놓으면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따라가기에 시스템 우선이라고 하고, 한편으로는 사람이 중요하지 시스템은 사람을 막을 수 없다고도 한다. 논쟁이 분분한 화두였다. 과연 무엇이 정답일까? 정답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먼저 ‘시스템’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시스템이란 간단히 말하면 ‘길’이다. 새로 길을 만들면 그 길을 따라서 자동차도, 사람도 다니게 된다.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법과 제도, 관행 등이 그것이다. 이른바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나라나 단체가 있다. 그들은 오랜 기간 동안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실패하고 개선해서 만들어진 결과물을 갖고 있다.
법치주의를 정착해서 통치자에 대한 견제를 법으로 하였고, 그 법을 통하여 시민들의 기본권을 지켜주었다. 이렇듯 제도가 정착된 조직은 항상성이 존재하여 큰 틀을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또한 제도로 규정하지 않았던 부분은 관행이라는 전통적인 약속에 의해서 지켜졌다. 물론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였다.
시스템은 교통신호체계처럼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질주하려는 욕구를 공권력으로 막아 공동체가 안전하고 합리적으로 통행할 수 있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비탈길이나 험난한 길을 만들어 놓고 빠르게 달리라고 하면 모순이다. 시스템은 잘 닦여진 고속도로를 만들어 차를 달리게 하는 것이며 안전한 인도를 만들어 사람들이 다니게 하는 것이다.
다음은 ‘사람’에 대한 생각이다.
아마 머지않아 이런 세상이 올 것이다. ‘사람이 운전을 했단 말이야? 이렇게 가변적이고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사람에 의한 위험성을 내포하는 말이지만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하는 변혁이 오더라도 중심은 결국 사람일 것이다. 칼자루를 쥔 사람의 능력과 판단, 그리고 도덕성에 따라 조직과 나라의 미래가 결정된다. 도약이냐 나락이냐 흥망성쇠가 여기에 달렸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세시대의 영주나 왕처럼 권한을 주어야 제대로 발전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었다. 중흥을 이루었던 성군에 대한 바람이 오히려 폭군에게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그러하기에 사람을 잘 뽑아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공적 가치에 기반을 둔 행위를 할 수 있도록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어떤 자리에 사람을 뽑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지나온 인생의 궤적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인생 자체를 수용하고 기대하는 것이다. 과거의 행적을 참고삼아 사람이 행하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인 셈이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을 종합하자면, 시스템이 구축되고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의 역량과 양심에 따라 결과가 좌우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여기에 버그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시스템을 컨트롤하는 위치에 오른 사람이 변심 내지는 그동안 감추었던 본능에 충실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면?
이상적으로는 시스템과 사람을 조화롭게 공존시키는 것이지만, 요즘은 사람의 문제가 더 크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