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은 멸치육수 내서 칼국수나 해먹자.”
글쓴이의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우리집 주방에서는 중대장, 아니 대대장 격이었다. 대대장님, 할머니의 지시가 떨어졌으니 선임하사 격인 글쓴이의 어머니는 머릿속 매뉴얼 페이지를 펼쳐 꺼내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물론 나, 글쓴이는 오늘은 무슨 일을 도와 맛난 걸 먹을지 똘망똘망한 눈으로 어머니의 입만 쳐다보며 지시를 기다린다.
냉장고 바로 옆 한 칸만 열리는 찬장을 열면 맨 윗 단에 늘 중력밀가루가 보관되어있다. 어머니는 사용한지 20년은 족히 넘었을 반질반질한 양푼에 눈대중으로 밀가루를 탈탈 털어넣고 소금 한 숟가락, 식용유 한 바퀴를 휘두르고 나에게 양푼을 안겨주신다.
“물 맞춰서 부어줄 테니까 거실 가 앉아서 손으로 잘 젓고 있어.”
아무래도 오늘 반죽은 내 담당인 것 같다. 국민학교(내가 졸업하고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뀌었다.) 3학년이었으니, 갓 열살을 넘긴 아이가 맡기에는 팔이 꽤나 아픈 일이었지만 손에 질척하게 묻어나던 반죽이 반질반질 쫄깃한 한 덩어리로 바뀌는 신기한 반죽치는 일이 나는 참 즐거웠던 아이였다.
물을 머금었다 말랐다를 반복하며 우리집 칼질을 받쳐왔던 나무도마는 짤퉁한 다리높이만큼 슬쩍 휘어 가운데 자리는 까실까실 나무가 일어나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오래된 한식도 칼곡선에 꼭 맞춘 듯 휘어진 도마에서 애호박이 할머니의 ‘딱딱딱딱!’ 칼질 소리에 맞춰 채썰어져 나오니 풋풋한 애호박 향이 진동을 하고, 진한 멸치육수 향과 섞여 집안을 가득 메운다. 아무래도 몇 주 전에 좋은 육수멸치를 들여다 내장도 다 빼내어 다듬고 꽁꽁 싸매어 냉동칸에 넣어 두시더니, 그 멸치를 발발발발 끓여 진하게 멸치육수를 내셨나보다.
덧가루 넉넉하게 뿌려 홍두깨로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낸다. 오늘 칼국수면 칼판은 어머님이 잡으셨다. 또각또각 칼질로 면을 썰고 손으로 후두둑 털어내니 쫀쫀한 칼국수가 진한 멸치육수에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유월 망종이 지나 햇보리가 나올 때면 그걸로 풀죽을 쑤어 여린잎 열무를 들여다 쨍한 열무김치를 담가 놓는다. 할머니가 잘 익은 열무김치를 한 보시기 꺼내시는 동안 어머니는 칼국수를 육수에 넣고 호로록 끓여내신다.
언제 준비하셨는지 같이 푹 끓여낸 감자가 칼국수 국물을 걸쭉하게 만들었다. 갓 끓여내 김이 모락모락 이는 멸치칼국수를 한 탕기씩 받아들고 열무김치 보시기가 올려진 식탁에 온 식구가 둘러 앉았다.
글쓴이의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집밥’편 폴더에서 ‘멸치칼국수’ 파일을 열어보면 아무리 간단히 정리해도 이만큼이다. 어쩌다 보니 빵집 사장이기도 한 글쓴이의 반죽 레시피노트 한 켠에는 소금을 넣은 밀가루 반죽은 글루텐이 잘 잡혀서 쫄깃하다라는 경험치가 자연스레 묻어있다. 식용유 한 바퀴 휙 두른 반죽은 손에서 반죽에 잘 떨어지기도 하지만 면의 윤기도 좋아지고 맛이 참 고소하다. 날이 더워지면 보리를 베어 햇보리가 나오고 논에 물을 대어 모내기를 준비한다. 보리풀죽으로 열무김치를 담그면 잘 삭지도 않고 김칫국이 쨍하다. 내장빼고 꽁꽁 매어 냉동칸에 육수멸치를 보관하면 1년이고 잘 먹는다.
이 모든 것들.. 요리사로 살아갈 것을 알고 가르쳐주신 건 아니겠지만, 정말이지 나는 음식으로 할 수 있는 조기 교육은 최고급으로 받았다. 한끼 한끼 그저 맛나게 먹으려 준비한 집밥이었는데 이제와 생각하니 다 엄청난 추억이고 내 기억 속 경험자산인 거다. 나의 기억 조각들에는 할머니와 어머니 손맛의 깊은 향과 진한 맛이 각인되어 추억의 페이지마다 늘 그들이 따뜻하게 웃고 계신다.
많은 사람들이 ‘왜 집밥이 중요하냐?’고 나에게 왕왕 묻는다. 위 이야기를 대본도 없지만 막힘없이 쭉 해드리고 나면, 울컥 눈물을 훔치시는 분들이 꽤나 많다. 잊고 살았던 집밥 추억의 페이지를 내가 다시 열어드린 것 뿐이다. 외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내 손은 모양새부터 주름의 깊이까지 참 많이 닮아있다. 그 손맛까지 이어받았는지 요리사로 살아가는 글쓴이 인생의 참 많은 영감이 어린시절 경험했던 집밥에서 나왔다. 이제 갓 한 살을 넘긴 내 아들이 요리사로 살아가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내 손 모양을 쏙 빼 닮은 저 아이의 인생에 집밥의 좋은 추억은 꼭 남겨주고 싶다. 이 아이 기억의 조각 속에 내가, 나의 어머니가, 나의 할머니가 맛있는 향과 진한 맛으로 추억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