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요리 계급 전쟁’은 넷플릭스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방송 직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했고, 대만을 비롯한 전 세계적으로 한국 관광 열풍과 한국 음식 사랑을 불러일으켰다.
이 프로그램에는 유명 레스토랑 등 100인의 요리사가 출연했다. 재야의 고수 요리사들부터 이미 대중에게 얼굴이 알려진 인기 요리사들까지 총 100명의 요리사가 오직 맛 하나로 맞붙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이 마무리된 후에도 우승자는 물론 초반에 탈락한 참가자들조차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일부 참가자의 부적절한 사생활이 공개되면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지만, 상당수 요리사는 감당하지 못할 만큼 예약이 폭주하여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한다. 최종 우승자는 한 명이었지만 참가 요리사 상당수가 인생 역전 수준의 기회를 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맛에는 정답이 없고, 요리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에는 계급이 없을진대 제목의 이분법에서 불편함이 느껴지는 것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세상을 흑과 백, 빛과 어둠, 내 편과 반대편으로 이분화하는 것이 너무 일반화되어 있다. 세상은 흑백이 아닌 수십억 개의 다양한 색으로 이루어져 있고, 입안의 미뢰세포에서 느끼는 것은 수십억 개의 다양한 맛일 것이다. 치과계도 흑백의 필터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왜곡되어 보일 수밖에 없다.
흑백요리사의 인기몰이에 큰 축을 담당했던 것은 심사위원을 맡았던 백종원 대표다. 안대로 눈을 가려도 재료와 메뉴를 간파하고 한식, 일식, 중식, 양식을 가리지 않는 음식에 대한 방대한 지식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백 대표가 장트리오(간장, 된장, 고추장) 요리를 심사하며 “우리의 장을 얼마나 세계에 잘 알릴 수 있느냐”가 주안점이라고 강조했는데,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본질은 가장 한국적인 것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가 왔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도 가장 우리가 잘하고 있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지식을 세계에 알릴 때가 왔다. 내년 4월 대한치과의사협회 창립 100주년 기념학술대회와 5월 서울시치과의사회 창립 100주년 학술대회 및 국제치과기자재전시회 SIDEX가 우리의 저력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일조할 것이다.
백 대표가 주인공인 또 다른 프로그램 ‘백패커’도 재미있다.
프로그램 안에서 출연자끼리 치열한 견제와 신경전 속에 요리대전을 벌이면서 “거의 흑백요리사인데?”라며 서로를 추켜세우기도 한다. 메뉴 선정에 있어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는 출연자를 ‘능동요리사’라고 하며 이와 반대로 소극적인 사람을 ‘수동요리사’라고 칭한다. 우리 인생에서 맺고 살아가는 여러 관계가 여기서 나타난다.
누구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과 상대방이 원하는 것 사이의 심리적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치과의사인 우리는 매일 많은 환자를 대하며 관계를 맺고 살아가지만, 항상 치과의사와 환자뿐만 아니라 원장과 직원과의 거리, 나아가 사회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과의 거리에 대해 힘들 때가 많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적극적으로 내 생각을 피력해야 하는 ‘능동요리사’여야 할 때가 있지만, 다른 사람을 평가하며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을 때는 강하게 불만을 표출하거나, 자신이 정한 방식대로 되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인해 상대방을 구속하거나 갈등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치과계를 대표하는 리더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이와 반대로 ‘수동요리사’ 태도는 자칫 안전한 관계로 느껴질 수 있다.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움직이기에 관계 갈등에 대한 염려가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수동적 태도는 자신의 욕구를 억제하는 희생을 초래하여 불만이 쌓이게 된다. 수동적 관계가 지속될수록 무기력과 우울 같은 감정에 빠질 수 있고, 그 관계가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문제가 드러나는 경향이 있기에 시의적절한 해결을 놓치게 된다. 지금 치과계를 위해 일을 해야하는 사람 몇몇은 너무 수동적이고 무기력하다.
그래도 치과계를 대표하는 리더라면 자신이 원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방향을 설정하고,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실현해 보길 기대한다. 나아가 자신의 가치에만 초점을 두기보단 상대방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수용할 수 있는 관대함을 가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