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면 안다. 해보지 않으면 평생 모른다.’ 열혈 만화가로 유명한 시마모토 카즈히코의 자전적 만화 ‘울어라, 펜’의 제일 유명한 대사다. 만화가인 주인공이 만화학과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러 갔을 때의 에피소드다. 학생들이 만화가가 되기보다는 만화를 잘 그리는 테크닉에 관심이 많은 것을 두고 너무 많은 준비만 하다가 정작 프로로 데뷔를 못 하고 실력 좋은 아마추어로 남는 것을 경계하며, 일단 데뷔한 뒤 실력은 다듬으면 된다고 일갈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는 수많은 도전과 마주하게 된다. 관혼상제와 같은 개인사에서 큰일들은 더욱 그렇거니와, 작은 일조차도 선뜻 첫걸음이 떼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젊은 치과의사들이 연차가 쌓여 개원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제 슬슬 강호로 나가 내 병원을 차리고 싶은데, 개원하려고 보면 입지 선정부터 시작해서 ‘경영의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싶은 불안감이 엄습하게 된다. 하지만 정작 또 해보면 좌충우돌 우당탕탕 하면서도 어떻게든 넘기고 버텨내면서 적응하는 게 개원의의 삶이기도 하다.
개원을 먼저 해본 입장에서는, 이제 개원을 염두에 두고 있는 후배 치과의사들이 과거 우리가 했던 것처럼 그 첫발을 내딛고 개원하기를 바라지만, 후배들의 체감은 과거와는 다른 것 같다. 과거보다 평균 개원 규모가 커지고 첫 개원이 실패했을 때의 상황을 감당하기가 버거워지면서 첫걸음을 떼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최근 20년 동안 듣고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보면, 사실 언제나 개원은 실패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확실히 전반적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강조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에 기대어 여러 솔루션이나 컨설팅, 마케팅을 지원하는 업체가 과거와 다르게 늘어나고 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렇게 여러 업체의 도움을 받으며 진행하는 개원이 최근 ‘안전한 개원’의 형태로 여겨지고 있는 듯하다. 개원을 오래 한 개원의들이 보기에는 저렇게 여기저기 다 떼어주면 집에 뭘 가져가나 싶은데, 애초에 그런 도움이 없으면 초반에 생존하고 안착하기가 어렵다니 그것 참 돌고 도는 답이 안 나오는 문제다.
업체들은 자신들의 역할이 존재할만한 규모를 원하게 되고, 자기들이 경험해본 모델들을 권하게 된다. 경쟁이 격화되면 마진이 박해지는 것은 전 세계 모든 산업 부문에서 공통인데, 과연 그것을 업체를 끼면 돌파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이 부분을 차치하더라도, 업체를 끼고 개원하는 것 자체가 그 경쟁의 패러다임 안에서 그 룰대로 승부를 보는 것이니 경쟁을 격화시키는 데 스스로 일조하게 되는 모순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제일 큰 문제는 그 개원이 성공하더라도 치과의사가 오롯이 혼자서 개원을 해본 경험이 없다는 점이다.
잘 되어도 그 공의 상당 지분을 업체들이 주장할 테다. 어떻게든 개원만 하는 것이 목표인 건지, 내가 꿈꾸던 형태의 치과의사가 되는 것이 목표인 건지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어떤 치과의사가 되고 싶은 건지에 대한 비전을 세우고 그에 맞도록 개원을 밟아나가는 것이 제일 정석이 아닐까 싶다.
문제는 아직 젊은 치과의사들은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시장에서 어떤 것이 먹힐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어차피 개원 대출을 풀로 당겨서 리스크가 큰 것이라면, 더더욱 규모의 경제로 돌아가는 판에 무리하게 출사표를 던질 게 아니라, IT업계의 창업 전략을 차용하는 게 오히려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린 스타트업(Lean) 내지는 애자일(Agile) 전략이 그것이다. 처음에는 최소한의 규모로 시작해서(MVP), 시장의 반응을 보며 기민하게 대응하며 나에게 맞는 형태를 찾아 나가는(Pivoting) 전략이 맞지 않은가?
그런 관점에서는 수년째 이야기되고 있는, 없어질 치과를 연계 받아 리빌딩하는 방법도 썩 괜찮은 옵션이 된다. 은퇴하는 치과의사들은 인수자를 쉽게 찾지 못하고 폐업하는 경우도 많다. 서울에 자리가 없다고 하지만, 폐업하는 자리는 분명히 있고 구회 별로 인수를 소개해 줄 만한 곳이 없지 않다. 대형화되는 개원 트렌드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더라도 소규모로 창업하며 시도해보는 옵션을 늘리려는 노력이 협회 차원에서 필요하며, 서둘러서 젊은 치의들 피부에 와 닿을 수 있게 진행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