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 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민법은 거대 제국이었던 로마 시대부터 발전해 왔다. 그 오랜 역사만큼이나 민법에는 인간 사회의 갈등과 선택, 그리고 책임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개념이 있다. 바로 ‘진위불명’의 상황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어떤 사실의 진위를 끝내 밝혀내지 못하더라도, 법원은 이를 이유로 판단을 거부할 수 없다. 만약 법원이 판단을 회피한다면 분쟁은 제도 밖으로 밀려나고, 자력구제가 난무하는 혼란이 초래될 것이다. 이는 곧 법과 질서의 붕괴를 의미한다. 그래서 법은 진위가 불분명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결론에 이르러야 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장치가 바로 ‘증명책임’의 원칙이다.
한편 치협 선거를 앞둔 유권자들 역시 선택을 유예할 수 없는 시점에 서 있다. 선거라는 제도 또한 판단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법원의 역할과 구조적으로 닮아있다. 현재 선거 국면에서 제기되는 프레임은 크게 ‘부정선거’와 ‘회무방해’로 나뉜다. 유권자들은 어느 쪽이 진실인지 쉽게 단정하기 어려운, 일종의 진위불명 상황에 놓여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프레임이 중요한 이유는 지난 임기에 대한 평가가 불분명해질 경우, 공약과 정책 논의 자체가 공염불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2천 년 민법의 지혜는 하나의 분명한 기준을 제시한다. 진위가 명확하지 않을 때, 법은 그 불확실성을 방치하지 않고 증명책임을 통해 결론에 도달해 왔다.
즉, 최초로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측은 그 주장을 입증할 책임을 진다. 그러나 사법부가 부정선거라는 판결을 내린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그 결론을 부정하며 다른 해석을 제시하려는 측이 다시 증명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이는 특정 진영을 보호하기 위한 논리가 아니라, 판결 이후의 법적 안정성과 공동체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원칙이다.
선거 관련 당선무효 소송의 특성상 신속한 판단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럼에도 임기 3년 중 2년이 훨씬 지난 시점에야 판결이 내려진 점은 혼란을 키운 측면이 있다. 사법부의 명확한 판단 이후에도 여전히 부정선거가 아니라 회무방해라고 주장하려면, 그것 역시 새로운 주장으로서 다시 입증되어야 마땅하다.
전문가 집단인 사단법인 치협의 선거가 사법부에 의해 부정선거로 판단되었다. 67쪽 1심 판결문이 명확하고, 항소심도 1월 23일 변론종결과 2월 13일 선고 일정이 결정되었다. 선고 일정상 결과 번복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회무방해의 문제로 돌리려는 현 상황은 치협의 사회적 신뢰와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회무방해는 부정선거에 따른 절차적 수순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선거는 감정의 축제가 아니라 이성의 심판대여야 한다. ‘부정선거’라는 판결도, ‘회무방해’라는 반박도 결국 객관적인 증거라는 필터를 통과해야만 정당성을 얻는다. 오랜 시간 다듬어져 온 민법의 이성은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입증되지 않은 주장에 흔들리지 말고, 증명된 사실 위에서 판단하라는 것이다.
치협 회원이자 유권자인 우리 역시 법원과 마찬가지로 판단을 회피할 수 없는 위치에 서 있다. 부정선거와 회무방해라는 프레임 속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할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다만 그 선택이 혼란이나 감정이 아니라, 책임과 논리에 기초한 판단이기를 기대해 본다. 2천 년을 이어온 민법의 이성이 오늘의 선택 앞에서도 하나의 준거가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