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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단] 영국 사랑니 수술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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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호 논설위원

큰맘 먹고 지난 추석 연휴 앞뒤로 이삼일을 휴진하고 벼르던 영국 일주 여행을 떠났다. 마침 손해를 보던 펀드가 원금을 회복하여 환매한 뒤였고, 자식들도 출가하고 모친도 요양병원에 계셔 운신이 좀 자유로운 터였다. 영국은 근세 앵글로 스피어(영어권 국가)의 원조이고 패권을 누리던 국가여서 학생 때의 동경과 환상이 있기에 지금은 좀 쇠잔해졌다지만 마거릿 대처 총리 이후 여전한 그 기품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전에는 그룹 패키지여행을 해보면 장시간 버스 이동 시에 가이드가 자기소개도 하는 시간을 주며 분위기를 이끌었지만, 요즘은 생략한다. 아마도 복잡한 인간관계에 부대끼다가 모처럼 여행을 떠나 ‘짱박혀’ 은둔을 즐기려는 프라이버시 세태를 배려하는 듯하다. 사실 이국적 풍물의 외국까지 와서 느닷없이 입을 벌리고 봐달라는 몰상식한 경우를 당하면 난감하기도 하다. 그런데 부인들의 수다로 일행 중에 치과의사 두 명, 약사, 안과의사가 있음이 알려져 자연히 이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작달막한 키에 하악전돌의 가이드는 허스키한 영어로 두 팔로 만세 하듯 서양인과 포옹하면 폭 싸여 안보이지만 억척스러운 대한의 딸이었다. 노처녀 가이드가 재담도 잘하는데 “이 차 안에 치과의사가 있다는 고급정보를 알았다”며 자기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치아가 갑자기 욱신거리고 아파 런던의 동네 치과에 갔더니 파노라마 촬영 후 사랑니가 원인이라고 전문의에게 통보해 주겠다고 했단다. 과연 7일 후에 병원 전문의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3개월 후에 사랑니 수술이 잡혔단다(전액 무료라고 했다). 그런데 그때까지 참을 수 있을까하는 의심에 알음알음 다른 경로를 알아보았더니 편법으로 곧바로 수술할 수 있는 곳이 있었는데 수술비가 600프랑(100여만 원)으로 너무 비싸 포기했단다. 영국치과의사협회는 몇 년 전에 사랑니 수술 후에 간혹 사망사고가 잇따르자 “사랑니 수술은 루틴으로 하지 말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하라”고 공식권고했다는데, 무상 사회주의 의료의 그늘을 보는 듯 했다.

 

30년 전 강원도 현리 102 야전병원 군의관 시절, 명색이 구강외과장이라 이골이 나도록 사랑니 수술을 한 적이 있었다. 전방이라 각 사단에서 후송되어온 골절 및 농양, 봉와직염 입원 환자 수는 10여 명을 유지했다. 간혹 수술실에서 전신마취 수술을 하고 외래에서는 아치바 와이어링과 원인 지치 발치를 밥 먹듯 했다. 힘들었지만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었다. 군진 학술대회에서 이때의 수술임상 통계를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만감도 생겼는데, 한번은 정신과 동료 군의관의 사랑니 수술을 하게 되었다. 빨리 끝내려고 무리하게 힘을 주다가 치근이 3㎜ 정도 파절되었다. 점심도 거르고 3시간을 끌었는데, 환자가 턱관절이 아프니 그냥 두면 안 되겠느냐고 해서 중단하게 되었다. 걱정되어 Anti와 Steroid를 세게 쓴 덕인지 부종과 trismus도 미약했다. 지금 같으면 부러진 순간 안심시키고 그냥 놔두고 말텐데 그땐 왜 그리 자존심이 상하고 찜찜했는지 모르겠다(사실 사랑니 수술이 제대로 안 되어 출혈과 암흑의 좁은 동굴 속에서의 고난의 행군, 절해고도(絶海孤島)에 처한 고독감과 불안감은 치과의사만이 안다).

 

필자는 몇 년 전 칼럼에서 사랑니 수술 대란을 예측한 적이 있는데 이제 용감한 개원의 덕에 해소 조짐이 보인다. 강남에 사랑니 수술 전문 치과가 생긴다는 보도를 보았다. 보험 수술비가 너무 낮아 운영이 가능할까 우려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길을 선택한 용기와 소신에 박수를 친다. 나의 경우 지금은 과도한 노동력과 시간이 부담되어 친구 자제와 단골 환자 이외는 대학병원으로 의뢰한다. 수술비가 지금의 10배는 되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고려대 이의석 교수의 보수교육에서 하치조 신경이 가까워 수술이 불리한 경우 치관만 절제 후에 치근은 그대로 묻고 봉합하는 술식이 도입되었다는데, 저가진료 시대에 적절한 술식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보험청구를 어이할지 모르겠군요~. 언젠가 지하철에서 우연히 ‘소방관의 기도’란 시를 감명 깊게 읽었는데 이를 최소로 패러디해보았다.

 

 

사랑니 수술하는 치과의사의 기도

 

제가 천직의 부름을 받을 때에는
신이시여
아무리 선혈과 타액이 낭자한 비좁은 입안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병든 사랑니를 제거할 수 있게 해주시고
공포에 떨고 있는
환자를 구하게 하소서.
저에게는 언제나 안전을 기할 수 있게 하시어
가냘픈 고통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신속하고 효과적인 수술을 진행하게 하소서.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시어
저의 술식을 충실히 수행하게 하시고
저희 모든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시고
지키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만에 하나 환자가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그의 가족과 저를 돌보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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