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겐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고 불안한 상황에 처하면 무언가 하려 하는 ‘행동편향’의 습성이 있다. 심리학자들의 여러 분석이 있지만, 요컨대 가만히 있기에는 자신도 불안하고, 상황이 지나간 후 주위의 평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보다는 뭔가 했을 때 좀 더 우호적일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설명된다. 전형적인 예로 축구에서 페널티킥을 막아내는 골키퍼들이 좌우 방어측을 미리 정하고 공이 날아오기도 전에 몸을 날리는 대응을 택하는 현상이 이에 해당된다고 한다.
이 행동편향이 행동의 주체에게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다줄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결과에 무관하게 큰 비판에 민감한 개인이나 집단에서 적당히 기본평가는 유지해야 하는 경우 채택되는 고전적 인기전략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지난 주말, 이와 같이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고 불안한 상황에서, 많은 사연을 뒤로하고 SIDEX(시덱스) 2020이 치러졌다. 행사 후 2주가 지나가야 ‘지혜와 용기로 일구어낸 성공적 개최’라는 인정을 받을지, ‘경솔하고 무모한 강행의 예정된 참사’라고 여론의 뭇매를 맞을지 알 수 없는 오리무중의 상황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행사 전날까지 이어지던 치과계 내의 개최반대 목소리와 치과계 밖 일반 대중미디어들의 우려하는 여론의 수위를 돌이켜보면, 당연히 서울시치과의사회(이하 서울지부) 집행부와 SIDEX조직위원회는 ‘SIDEX 2020 취소’라는 ‘무언가 하는’ 카드를 집어들고 고전적 인기전략인 ‘행동편향’의 노선을 택할 수도 있었다. 그것이 안정적 포석을 할 줄 아는 신중한 집행부의 모양새로 적당했었을 터인데 굳이 험한 길을 택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지난 봄 치협 분과학회들의 춘계학술대회들은 모두 취소, 연기됐으며 다가오는 7, 8월에 다시 개최하는 것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 서울지부 이외의 지부 학술대회 및 대형 전시회들도 가을을 기약하며 분주한 채비를 시작했다. 이런 치과계의 행사들에 대해 사회 전체에선 관심도 없겠지만 사회적으로 초·중·고등학교의 등교 시작과 그 동안 움츠렸던 모든 산업 및 사회활동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별다른 대책 없이 재개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은 코로나19(COVID-19)의 재확산뿐 아니라 만연의 불안과 두려움을 국민들에게 안겨주고 있다.
지금 그 어느 전문가도 이러한 제반 움직임들이 얼마나 안전한 것인지, 또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얘기하려 하지 않는다. 안정된 이중나선의 DNA염기배열과는 완전히 다른, 엄청난 변이력의 이 RNA바이러스를 퇴치할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이 그렇게 쉬운 과정이 아니라면, 그래서 코로나19(COVID-19)와 우리가 함께 지내야 한다면 우리가 예전의 삶에서 무엇을 바꾸고, 더하고, 또 빼야 일상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아내어 신중하게 그러나 적극적으로 행동에 옮겨야 할 때다.
이러한 시기에, 늘상 환자와 극도로 근접한 위치에서, 그것도 비말과 에어로졸로 가득한 환경 속에 살아온 우리 치과의사들이기에 ‘이렇게 하면 된다’는 것을, 우리들 평생의 일상이었고 몸에 밴 특기였던 마스크와 페이스 쉴드와 라텍스 글러브를 끼고 상호신뢰 속에 수천 명이 모여 예전의 삶을 다시 보여준 것이 이번 SIDEX였다고 자부한다.
조용히 묻고 싶다. 이 일을 군인이 하겠는가, 성직자가 하겠는가, 아니면 정치인이 하겠는가. SIDEX 2020에 참가한 치과의사들에게 아무도 이 일을 권하거나 시키지 않았고, 참가한 치과의사들이 이런 대단한 일을 하려하니 알아달라고 홍보하지도 않았다. 이 상황에서 이 행사를 무사히 해냄으로써 사회 전반에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과 활력을 불어넣을 TF팀은 오로지 우리 치과의사들이었다고 감히 단언한다.
토, 일 양일간 현장에 참가해서 필자가 경험한 일련의 방역조치들은 당일 코엑스에서 열렸던 다른 대형 행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완벽했고, 참가자들의 행동들도 모범적이었다. 보름 후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는 시점에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르는 바 아니지만, 지금은 누가 누구보다 덜 어리석고 더 어리석음을 따질 때가 아니다.
이제 열흘 후에 알게 될 일이다. 앞으로 다른 행사에서 SIDEX 2020보다 방역의 범위와 수준을 더 넓히고 높여야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무엇이 더 필요하고, 필요치 않은지. 아무것도 안 했다면 아무것도 알 수 없을 것이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시간의 연속이다. 주최 측과 참가자들은 여론의 뭇매와 본인들의 희생을 각오한 조용한 선택과 행동의 주인공들이었다.
*논단은 논설위원의 개인적인 견해로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편집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