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도 있지만, 선택의 순간에 포기할 수 없는 ‘우선순위’를 생각하면서, 역사와 인생의 굴곡은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그 이유를 불문하고, 이상훈 협회장의 사퇴로 시작된 보궐선거의 결과는 예상보다 큰 표 차이의 당선으로 결론지어졌다. 그러나 새로운 집행부의 구성과 출발이 너무 늦어지고 있다. 사실상 노조협약서로 인한 예산안 부결의 꼬였던 매듭을 푸는 것보다 더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임원탄핵이라는 선거공약의 이행'과 '31대 잔류임원 불신임의 건은 정관위반'이라는 의견이 결국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황이다. 이번 보궐선거의 결과에 대한 해석은 각자의 입장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회무의 후속 진행 과정이 치협의 정관과 더 나아가 민법과 같은 상위 법규에 어긋난다면, 극심한 혼란의 상황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다.
결론적으로, 선거결과로 나타난 회원의 표심, 그리고 압도적 지지의 당선자에게 많은 힘이 집중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치협 정관의 틀 안에서의 힘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설사 대의원총회 결의라 하더라도 대한민국 사법체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번 9월 4일 개최예정인 비대면 임시총회의 쟁점안건인 ‘불신임의 건’에 대한 변호사들의 의견서 중에서 몇 가지 문구를 인용해본다.
《어느 시점의 사단법인의 사원들이 정관의 규범적인 의미 내용과 다른 해석을 사원총회의 결의라는 방법으로 표명하였다 하더라도 그 결의에 의한 해석은 그 사단법인의 구성원인 사원들이나 법원을 구속하는 효력은 없습니다.》
《임원 불신임 안건의 의결이 적법하기 위해서는 정관 제34조 제2항에 따른 의결정족수를 충족하여야 하는 등의 절차적 요건이 갖추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같은 조 제3항에 따른 불신임 사유가 존재하여야 한다는 실체적 요건도 반드시 갖추어져야 합니다. 따라서 임시총회에서 불신임 결의가 진행되기에 앞서 정관 제34조 제3항 각호에 따른 불신임 사유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하여 개별 불신임 대상 임원별로 충분히 심의가 이루어져야 하고, 만약 불신임 사유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신임이 결의되어 법적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위 불신임 결의는 실체적 하자가 있어 무효로 판단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오히려 정관에 위배되는 내용의 불신임안의 상정을 강행하고, 그 의결까지 강행하여 진행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정관에 위배되는 행동으로 사료됩니다. 이러한 행동이 정관 제34조 제3항 제2호 ‘정관 및 총회의 의결을 위반하여 회원의 권익을 중대하게 침해한 때’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회장에 대한 불신임을 추진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판단됩니다. 이 경우 협회의 내부 분쟁이 극심해져 협회의 운영에 큰 지장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지난 보궐선거 당선인인 박태근 협회장의 공약 이행과 회원의 민의를 배경으로 하는 추진력과는 별개로 '대한치과의사협회 정관의 준수'와 '대한민국 사법체계와의 충돌 방지'는 치협 회장의 매우 중요한 책무라고 생각한다.
치협 정관에 명시된 불신임 사유는 제한적인 열거 규정이므로 제한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점은 다수 변호사들의 공통된 의견이고, 이는 어쩌면 불신임을 당하는 당사자에게는 형법상의 처벌보다 더욱 큰 모욕이나 불명예로 볼 수 있다는 정관의 취지로 해석할 수 있다.
아무리 흉악범이라고 하더라도 공권력에 의한 처벌에는 객관적 잣대가 정말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죄 없는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면 사회적 지탄을 받지만, 악인에게는 몽둥이찜질을 해도 통쾌함과 정의감, 그리고 지지자를 얻게 될 수도 있다. 아무나(?) 악당을 만들어서 내부의 결함을 숨기려는 방법이 하나의 정치 방식이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아무나의 방법론은 드라마와 같은 관찰자 시점이 아니면 명확하지 않은 것이 대개의 경우라 생각한다. 필자는 대중의 정서법에 의한 마녀사냥 혹은 중국의 홍위병과 같은 오류가 걱정되는 마음이다.
협회장의 회무철학을 기반으로 하는 개별 사안들과 선거공약의 이행을 위한 추진력에는 가급적 지지해주는 것이, 최근과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치협 구성원들의 도리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선택의 결론으로 인한 더욱 큰 혼란을 막아내야 하는 것도 구성원들의 의무이면서, 한편으로는 공동체의 생존본능인 것이다.
즉 211명 대의원들은 이러한 중요한 기로에서 치과계의 명운을 좌우하는 위치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9월 4일 임총에서 ‘불신임의 건’은 그저 31대 잔류임원 12명에 대한 정서적 감정을 표현하는 과정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그들 개개인의 명예와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고, 치협 정관 수호는 물론 최고의결기관인 대의원총회를 상위 법률의 저촉으로부터 지켜내는 일이기도 하다.
대의원들의 현명한 판단으로, 정관에 위배되는 '불신임의 건'이 부결되는 집단지성을 이루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