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신문_전영선 기자 ys@sda.or.kr] 비대면 자가인상채득 방식으로 이갈이 방지용 스플린트 등 맞춤형 구강내장치를 판매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구강내장치의 제작 및 이를 활용한 치료는 치과의사의 고유 진료영역으로, 자가인상채득 등 무분별한 방식으로 제작한 구강내장치를 착용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럼에도 비대면 자가인상채득 방식으로 맞춤형 구강내장치를 제작하는 업체의 판매행위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뤄지고 있어 우려를 사고 있다.
치의학회, 무자격자에 의한 불법의료행위로 규정
이갈이 방지용 맞춤형 스플린트 구매는 인터넷으로 손쉽게 이뤄진다. 제품을 구매하면 해당 업체는 소비자가 스스로 인상을 채득할 수 있는 치아 본뜨기 키트를 우편으로 발송하고, 소비자가 이것으로 직접 인상을 채득해 업체에 보내면 스플린트 등 구강내장치를 제작해 보내주는 방식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개인 맞춤형 구강내장치 제작이 가능하다고 업체는 설명하고 있다.
업체에 의한 맞춤형 구강내장치 판매는 수년 전부터 이뤄져 왔다. 실제로 지난 2021년 보건복지부는 의료인 및 의료기사를 배제한 상태에서 구강내장치를 제작할 경우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없는지 등에 대한 자문을 치과계에 요청했고, 대한치의학회는 ‘단순히 의료법 위반 여부의 문제를 넘어 국민건강권을 위협하는 사안’이라는 내용의 공식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당시 대한치의학회는 업체에 의한 맞춤형 구강내장치 판매행위를 비의료인, 즉 무자격자에 의한 의료행위로 간주했다. 맞춤형 구강내장치를 판매하는 과정에 치과의사가 개입할 여지가 없고, 구강내장치의 제작 및 체크하는 과정이 전적으로 업체의 판단에 맡겨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소비자에게 맡겨지는 자가인상채득은 치과의사 또는 치과위생사의 업무범위에 속하는 명백한 의료행위로, 인상채득이 부정확할 경우 부작용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대한치의학회는 “의료인이 실시하는 전문적인 정밀인상 채득과정에서도 오차는 피할 수 없어 실제 구강 내에서 치과의사에 의한 환자 맞춤형 조절과 정기적인 검진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며 “인상채득이라는 의료행위가 치과의사 또는 치과위생사 외에 일반에 의해 시행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부작용으로는 치아 및 치주조직 붕괴, 턱관절질환 유발 등을 꼽을 수 있고, 심각할 경우 기도폐쇄로 이어져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고 엄중 경고했다. 그러면서 대한치의학회는 보건복지부에 즉각적이고 강력한 제재와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바탕으로 한 엄격한 단속을 요청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계속 판매되는 이유는?
그럼에도 아직까지 의료기기업체에 의한 맞춤형 구강내장치의 판매행위가 계속되고 있는 이유는 이를 중지시킬 만한 법적근거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치과의사 입장에서는 무분별한 구강내장치 제작으로 국민의 구강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무자격자에 의한 의료행위로까지 비춰질 수 있는 부분이지만, 업체에게는 식약처로부터 정식 허가를 받은 의료기기의 단순 판매일 뿐이다. 식약처 관계자 역시 “거짓이나 과장된 내용 없이 허가받은 사항 그대로 홍보하고 판매했다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로 일반소비자에게 의료기기를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고, 인상채득 역시 의료행위라 하더라도 환자 스스로 하는 것까지 처벌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5조에 ‘치과의사가 아닌 사람이 영리를 목적으로 치과의료행위를 업으로 한 경우 무기 또는 2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부정의료업자에 대한 처벌조항이 있으나, 해당 업체가 환자를 찾아가 직접 인상을 뜨지 않는 이상 허가 받은 의료기기를 단순히 판매했다는 이유만으로 관련 법률을 적용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건강에 위해가 될 소지는 다분하나 이를 막을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법체계의 한계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의료행위와 구강내장치 제작 등을 규정하는 의료법과 의료기사법, 그리고 의료기기의 제조와 판매 및 허가를 다루는 의료기기법 등 각기 다른 법이 존재하고, 이를 관할하는 부처도 보건복지부와 식약처로 양분돼 있다.
법체계의 한계로 인한 대표적 사건으로 맞춤지대주를 둘러싼 기공계와 임플란트업체 간의 법적공방을 들 수 있다. 당시 대법원은 맞춤지대주 제작을 치과기공사의 고유 업무범위로 판단했다. 임플란트업체가 일정한 설비를 갖추고 치과기공사를 고용해 맞춤지대주를 제작한 행위 역시 개설자격이 없는 임플란트업체에 의한 치과기공소 개설행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해당 행위에 위법성이 있었는지 인지하기 어려웠다는 이유로 임플란트업체에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보건복지부와 식약처의 의견이 서로 상반돼 해당업체로서는 맞춤지대주 제조행위가 금지되는지 여부를 명확히 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고, (중략) 식약처로부터 의료기기 허가를 받은 해당업체가 맞춤지대주 제조행위를 위법하다고 인식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무죄판결을 내렸다.
의료법과 의료기사법, 그리고 의료기기법까지. 관련법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현실을 보다 직접적으로 반영하지 않는 이상 이와 같은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