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적인 불황으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치과계에 소위 ‘진상 환자’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있어 주위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진료비로 실랑이를 벌이는 정도가 아닌 계획적으로 ‘합의금’을 노리고 접근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
서울 중구에서 오랜 기간 개원하고 있는 A원장은 최근 한 환자로부터 갖은 협박과 영업방해 행위 등으로 인한 고초를 겪었다. 치료 후 예후가 좋아 별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치료부위가 시리다거나 흔들린다는 등 전형적인 블랙 컨슈머 환자들이 변명으로 늘어놓는 수법으로 수차례에 걸쳐 위자료를 요구한 것. A원장은 “처음 치료를 한 것이라면 실랑이를 벌일 필요도 없이 환자의 요구를 들어 주었을 것”이라며 “이 환자는 작년에만 4차례에 걸쳐 재치료를 요구했고, 이를 다 들어줬다”고 밝혔다.
문제의 환자는 마지막 네 번째 치료를 마치고 6개월 후 치과로 찾아와 위자료 200만원과 치료비 일체를 환불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 환자는 남편과 딸,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과 함께 치과로 찾아와 반 협박조로 위자료를 요구했고, 다른 환자 진료에 심각한 침해를 받은 A원장은 결국 이들을 경찰에 신고했다.
문제의 환자는 A원장의 치과에서만 돈을 요구한 것이 아니고, 이미 전력이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A원장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환자는 경기도 양주의 B치과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위자료를 요구하는 등 세 번에 걸쳐 총 1,000만원의 위자료를 뜯어냈다.
B치과에서 보철시술을 받은 문제의 환자는 6개월에 걸쳐 처음에는 200만원, 두 번째에는 300만원, 그리고 마지막에는 500만원의 위자료를 받아냈다. B치과는 이 환자로부터 치료비조차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A원장은 “이 환자의 행동이 워낙 남달라 나름대로 조사를 해봤는데, 이미 큰 피해를 입은 치과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더욱 큰 피해를 입는 치과가 생기기 전에 이런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제보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외형적으로 보나 치료과정상으로 보나 문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재치료나 위자료를 요구하는 환자들에 대해 대다수 개원의는 ‘귀찮아서’, ‘진료에 방해 될 수 있어서’ 등 이유로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회피하는 경우가 적지않다.
또한 환자들과 언성이 높아져 이성을 잃게 되면 ‘폭력사건’으로 번져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A원장은 “환자들의 무리한 요구에 너무 저자세로 대처하거나, 반대로 일시적인 감정에 휩싸인다면 결과적으로 치과의사들만 피해를 입게 된다”며 “의료분쟁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소위 ‘진상 환자’를 예방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환자뿐 아니라 의료공급자 측의 중재신청도 받고 있는데, 실제로 어느 치과는 환자의 무리한 요구에 시달리다 중재원 측으로 중재 신청을 해 문제를 해결한 경우도 있었다.
무리한 요구를 일삼는 ‘진상환자’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기보다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신종학 기자/sjh@s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