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이란 글자는 ‘물이 흐르다’라는 뜻으로 물수(氵)변에 갈거(去)를 썼다고 한다. 아주 오래전 인간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공동생활에 룰이 필요하게 되었다. 즉 공공의 이익에 부합되도록 물이 흐르듯 흘러가야 한다는 보편타당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절대 권력자가 탄생하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법을 만들었고, 그에 대항하던 신하(臣權)들은 절대 권력자들에 대항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또 다른 법을 만들었다. 대부분의 나라의 역사가 그러하였고 우리나라 또한 신라부터 시작된 왕권과 신권과의 싸움이 조선시대 말까지 이어졌고, 왕이 없어진 현재에도 역시 변형된 형태로 지속적인 싸움이 이루어지고 있다. 요즘의 선거 양상만을 놓고 보아도 그것은 그들의 권력을 위한 동일한 싸움에 불과하다. 그리고 과거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점은 역사적으로 그 어떤 법에도 서민과 국민을 위한 법은 없다는 것이다. 취지와 말은 근사하지만 결국은 권력자들이 자신들을 위한 방편으로 만든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권력이 사욕에 이용되면서부터 물이 흐르는 듯한 법이란 없어졌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올해 4월부터 시행되는 법들이 있다. 3월 30일
며칠 전 뉴스에 요즘 직업에 대한 만족도의 순위가 발표되었다. 이는 2012년의 759가지 직업에 대한 만족도를 한국고용정보원에서 평가하고 발표한 내용으로 1위가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었다. 필자가 치과의사이다 보니 그 중에서도 의료인들에 관한 내용에 관심이 먼저 간다. 의료인 중에서는 한의사가 12위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의사가 44위를 하였다. 치과위생사는 189위를 하였고 간호사가 250위였다. 우리 치과의사는 291위였다. 반면 유사의료직업인 음악 치료사가 44위, 의학연구원은 49위, 미술치료사는 76위, 임상연구 코디네이터는 96위를 하였다. 모든 의료인 직업 중에 최하위를 한 것이다. 보고에 의하면 간호사들은 70%가 직업에 불만을 지니고 있으며, 제일 힘든 일이 감정을 숨기고 웃어야하는 고통으로 88%이며, 70%가 스트레스로 두통을 앓고 있다고 보고되었다. 더불어 1년 이내에 이직하고 싶은 사람도 32.1%나 되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아무리 찾아도 간호사보다도 만족도가 낮은 치과의사에 대한 이러한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치과의사의 집단이 간호사보다 훨씬 더 폐쇄적이거나 아니면 사회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직업이거나, 통계를 내기에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가 스트레스일 것이다. 스트레스는 동·식물뿐만 아니라 비행기, 건물 같은 무생물에까지 사용하는 다양성을 지닌 단어이다. 무생물의 스트레스는 붕괴나 파괴로 이어지지만 동·식물의 스트레스는 생명력과 관련된다. 무생물은 스트레스가 없을수록 오래 사용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동·식물은 적당한 스트레스가 없으면 도태되거나 스스로 퇴화하는 현상까지 나타난다. 그래서 분명 적당한 스트레스는 필요하지만 그 적당함의 경계가 모호하다. 적당함이란 것이 일관성을 지닌 것이 아니고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수시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 역시 자연계의 자연조절기능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동·식물과 인간이 받는 스트레스는 조금 차이가 있는데 이는, 인간의 스트레스 속에는 생각에 따라서 스트레스를 받는 정서적인 부분이 동식물들이 받는 환경적인 요인보다 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박지영은 인간이 받는 스트레스는 두 가지 유형으로, 인식하기 쉬운 형태와 어려운 형태로 나누었다. 쉬운 형태는 압박감, 갈등, 좌절, 자극의 결핍 등으로 본인 스스로가 알기 쉽다. 압박감, 갈등, 좌절은 흔하게 쓰는 단어이고, 자극의 결핍은 심한 무료감이라 할 수 있
오늘은 택시 막말녀가 인터넷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지하철 막말녀, 화장실 막말녀 등등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벌어지건만 하도 흔하게 들려이젠 별로 놀랄 만한 일도 아니라 여겨진다. 대부분이 나이 많은 분들에게 버릇없이 마구 반말하고 욕을 하며 하대한 경우이다. 이는 그들의 마음 속에 연장자에 대한 공경심이 없기 때문이며, 이것은 그들의 삶과 연관된 어른들이 그런 존경 받을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번이라도 감동 어린 사랑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그런 모습을 보이진 않았을 게다. 아니 어쩌면 어른들에 대한 분노를 지니고 있다가 만만한데서 터뜨렸을 가능성도 있다. 혹은 경제성을 가치 기준으로 삼고 상대적으로 빈곤층을 천시하는 그런 생각을 지녔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어떤 연유였든 간에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어린 시절 한약을 달여 주시던 어머니가 지금 아이들에겐 없다. 학원을 정해주고 시험 스케줄을 잡아주는 엄마는 있으나 정성껏 약을 달이던 어머니의 모습은 없다. 예전 어머니들은 한약을 한 재 지어오시면 약탕기에 약을 넣고 좋은 물을 구하기 위하여 일부러 우물에 가서 길어다가 넣고 창호지로 덮고는 김이 빠지지 않게 다
아침에 눈뜨고 일어나 열어보는 스마트폰의 창에 빗물이 들이치는 모습을 보고 거실 창밖을 보니 봄비가 내리고 있다. 요즘은 눈비 오는 것마저 스마트폰을 보고 먼저 아는 것에, 어떤 정서를 빼앗긴듯하여 아쉬움이 남는다. 운전하며 출근하는 길에 비에 젖은 한강변의 고즈넉하고 차분한 모습이 눈에 들어오면서 문득 할리우드의 명화 ‘애수(哀愁)’에서, 비오는 날 런던의 워털루 다리에서 미남 장교 ‘로버트 테일러’와 발레리나 ‘비비안 리’가 처음 만나던 장면과 Auld Lang Syne 음악이 흐르던 클럽에서의 이별 장면, 그리고 비를 맞으며 서로를 애타게 찾던 모습이 생각나는 것을 보면 아직도 정서적으로 아주 메마르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혼자 빙그레 웃어보았다. 요즘 들어 필자가 감성적이란 유일한 증거인 슬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흘리는 눈물 외에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바쁘게 하루하루를 사는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감동받을 만한 일들이 많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이렇듯 비오는 날이면 병원도 덜 북적거려 한결 여유가 생긴다. 전부터 의료계에서 농담처럼 들어왔던 ‘유비무환’이란 말처럼 말이다. ‘비오는 날에는 환자가 없다’라는 말은 선배님들의 해학이 고스
주변에서 각자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그 무엇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집과 함께 아주 유연한 융통성도 있다. 스티븐 콥스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란 책에서 성공을 위한 공통점을 설명하였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바를 조금 추가한다면, 그들은 오랫동안 깊이 생각하고, 생각이 정리되면 빨리 실행에 옮기는 경향을 지녔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철학을 갖고 군더더기 없이 한길을 곧장 간다. 더불어 더디더라도 지속적으로 간다는 공통성을 지녔다. 그러기에 중도에 무너지지 않고 최고가 되는 것을 본다. 올해 졸업하고 처음으로 치과의사 면허증을 받은 새내기 치과의사들을 위한 강연을 끝내고 나오며 치과의사로서 최고를 생각해 본다. 과연 지금 졸업하신 선생님들에게 최고로 보여지는 선배들은 누구일까? 하고 말이다. 더불어 나름대로 최고가 되려다가 무너졌거나 무너지고 있는 사람들도 본다. 말도 많았던 문제의 네트워크 치과들이 정리되어가고 있다. 그것은 외적으로는 법적인 것에 의한 것으로 보이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법이라기보다는 사람의 보편적 상식에 위배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최고 희극배우 채플린은 ‘독재자’란 영화에서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스스로를 사랑한다고 생각하기에 자신을 특별하게 사랑하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특별한 방법이 있을 리 없다. 다만 너무 당연하다는 이유로 무심코 흘려버리기에 짚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강아지를 기르는 집에서 강아지를 돌보는 일과 거의 다르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강아지에게 하듯이, 본인에게 제일 먼저 해주어야 할 일은 육체적 건강을 유지시켜 주어야 한다. 그 중 첫째가 정량에 상관없이 반드시 하루 3끼를 먹어주어야만 인슐린 펌프가 정상으로 작동하게 되며, 이로 인하여 가장 많은 성인병 중의 하나인 당뇨를 예방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적당한 운동을 함으로써 노화에 따른 근육의 소실을 막아주어서 최소한의 젊음을 유지시켜주는 것이다. 더불어 항상 체중을 체크하여 더 이상의 비만을 막아주어야 한다. 이렇게 병들지 않는 몸을 유지해주는 것이 자기 사랑의 시작이다. 그러기에 자기를 사랑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역시 사랑에는 고통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쁜 것 적게 먹이고 좋은 것을 골라 먹이는 수고를 하여야 한다. 그 중
우리가 흔히 아는 노래 중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란 노랫말이 있다. 성경 속에 나오는 글귀인 것은 대부분 아는 이야기이며 너무도 유명한 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이란 단어를 떠올릴 때 남에 대한, 남을 향한 사랑을 떠올린다. 그것은 사랑이란 단어가 처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때, 남녀간의 사랑으로 다가왔을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또한 종교적으로도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있듯이 남을 사랑해야 한다고 무의식적으로 강요를 받은 탓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 중에 최고는 어머니의 사랑이라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부지불식간에 ‘사랑’을 남에 대한 사랑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결국 그 어느 곳에서도 자기에 대한 사랑을 배워본 적이 없다. 게다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몰리는 풍토속에서 자기를 누르고 참고 인내를 해야만 좋은 사람이라고 강요되어 왔다. 그러나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과 이기심은 분명히 다르다. 예를 들어 상점에서 불만 고객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최소한의 품위를 지킨다. 그것은 사랑하는 자신의 격이 떨어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을 계기로 학생 폭력이 사회의 큰 이슈가 되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고, 이것이 어른들의 이권다툼과 정치 논리에 의한 잘못으로 발생한 일이기에 더욱 안타깝다. 이미 학생 인권법이란 미명 아래 선생님으로부터 매를 빼앗는 순간 예견했던 일이기 때문에 더욱 가슴 아프다. 이런 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대안이 제시되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어림도 없는 방법들이고 임시방편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생각하면 일단 권위의 상실이 아닌가 한다. ‘권위’란 사전에 ‘어느 개인ㆍ조직(또는 제도)ㆍ관념이 사회 속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그 사회의 성원들에게 널리 인정되는 영향력을 지닐 경우, 이 영향력을 권위라고 부른다.’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그 권위를 지닌 자의 힘이 권력이다. 우리나라는 독재시대를 거치면서 그런 권력의 남용에 대한 염증을 느끼었고 그것이 심지어는 모든 권력에 대한 거부로 이어졌다. 그러나 권위에도 좋은 권위와 나쁜 권위가 있다. 권력을 사용하지 않는 권위나 올바른 권력의 권위는 좋은 권위로 유지되어야 하건만, 자의든 타의든 이조차 사라진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사라져간 좋은 권위중 대표적인 것 3가지를 들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리고 복을 많이 나누어 주십시오. 반목하고 갈등하던 일들이 모두 풀리고, 이해하고 이해받는 한해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용서하고 용서받는 한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기쁨을 주고 기쁨을 받는 한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모두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길을 먼저 내밀어 주길 바랍니다. 동양 철학적으로 풀이해보면 지난 신묘년은 날카롭고 서로 대치하는 그런 해였습니다. 그리고 올해 임진년은 그런 날카로움은 없지만 壬(수)의 차가움이 있습니다. 또한 북방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북풍한설의 추위가 있습니다. 또한 색으로는 검은 색입니다. 그래서들 흑룡의 해라고 말들 합니다만 그리 큰 의미는 없는 듯합니다. 다만 추위를 견디어내며 봄을 기다리는 희망과 한줄기의 따뜻한 손길이 절실히 필요한 해입니다. 임진년이 지나 내년인 계사년에는 巳(화)의 화기가 있어서 희망이 있습니다. 따라서 내년의 희망에 닿을 수 있을 만큼의 작은 따스함이 필요한 해입니다. 내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남에게 하는 따스한 말 한마디가 위로와 위안을 주는 한해가 될 것입니다. 겨울의 혹한을 견딘 딸기가 맛있습니다. 그런 혹한의 해로 내년의 맛있는 결실을 위한 추위를 견디는 해라고 해
12월의 절반을 넘어서 이제 올해도 열흘 남짓 남았다. 대부분의 모임에서 망년회(忘年會)로 하루하루가 바쁜 때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송년회라는 말보다는 망년회라는 말이 더욱 많이 들린다. 망년회는 국어사전에 ‘연말에 한 해를 보내며 그해의 온갖 괴로움을 잊자는 뜻으로 베푸는 모임’이며, 송년회는 ‘연말에 한 해를 보내며 베푸는 모임’이란 뜻이다.그런데 망년회는 忘年會(ぼうねんかい)라고 하여 일본에서 들어온 문화이다. 일본에서는 신년회와 망년회를 한다. 신년회는 4월 초에 시작하며 그때가 벚꽃이 만발할 때이다. 그래서 벚꽃구경 한다는 명분아래 신년회를 한다. 아주 일본적인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때를 시작으로 한해의 모든 일정이 시작된다. 그것이 우리에겐 ‘벚꽃놀이’로 알려져 있는 ‘お花見’인데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일본의 잔재적인 요소로 여의도에서 벚꽃축제가 열릴 때마다 필자의 마음은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그리고 연말에는 망년회를 한다. 다 잊자는 것이다. 직장에서 억울한 일이나 힘들었던 것들을 다 잊어버리고 새 출발하자는 의미이다. 이 역시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주 일본적인 내용이다. 일하는 동안에는 꾹 참고 일을 하고 연말에는 잊어버리라는 것이
신묘년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을 집어 들고 1월부터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지난 일 년간 겪었던 많은 일들이 생생하게 기억을 스치고 지나간다. 힘들었던 일, 마음고생 했던 일, 기뻤던 일들이 떠오름과 동시에 지금은 타인을 보는 듯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돌아볼 수 있는 것에 조금은 성숙해진 느낌을 받는다. 요즘은 세상이 복잡하고 시끄럽고 어렵고 힘들어 대중매체나 인터넷 등이 부정적인 단어로 도배되다시피 한다. 단어에는 힘이 있어서 부정적인 단어는 부정적인 생각을 낳고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행동을 낳는다. 따라서 지금은 긍정적인 단어와 긍정적인 생각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즉, 희망, 행복, 사랑, 믿음, 기쁨, 배려 등과 같은 긍정적인 단어가 더욱 빛을 발할 때인 것이다.필자도 요즘은 가능한 긍정적인 단어를 많이 사용하려 노력하고 있다. 딸아이와 전화 할 때도 “사랑하는 딸!”이란 단어를 꼭 사용한다. 아들에게도 카카오톡으로 대화할 때 “사랑하는 아들아”라는 인사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신문, 방송, 뉴스 등에서 부정적인 단어가 나오면 의도적으로 다른 채널로 돌리는 행동을 두어 달 하다 보니 세상 돌아가는 일은 잘 모르지만 내 마
잃어버린 낙원이란 의미의 ‘실락원’은 영국의 시인 존 밀튼이 17세기에 지은 서사시로 영어 원제는 Paradise Lost이다. 존 밀턴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혁명에 실패하여 파산하고 실명하였을 때, 인간의 원천적인 선악의 문제와 자유의지에 대한 기독교적인 원죄를 내용으로 이 책을 썼다. 존 밀턴은 셰익스피어에 이어 2인자의 자리를 내어준 적이 없는 대단한 문호이며 ‘실락원’ 또한 단테의 신곡에 버금가는 명작으로 알려졌다.그리고 1997년 유학생이던 필자가 레지던트 2년차 때, 일본에서 전 국민의 반 이상이 보며 대히트 했던 영화의 제목도 ‘실락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심혜진, 이영하 주연으로 리메이크 했으나 실패했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당시 불륜 내용에 과도한 애정 표현으로 문제가 되기도 하였던 영화였다. 필자도 호기심으로 그 영화를 보러갔는데 마지막 장면에서의 내레이션은 영화를 보는 모든 이들로 하여금 본인들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가슴 아픈 공감을 주었다. 필자 또한 그 자리에서 두 번을 연속하여 보았고 15년이 지난 지금도 마지막 장면의 내레이션은 귓가에 쟁쟁하게 들려온다. 영화의 내용인 즉, 30대 중반의 주부와 50대의 평범한 가장이 우연히 만
짜릿함’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심리적 자극을 받아 마음이 순간적으로 조금 흥분되고 떨리는 듯하다’라고 정의된다. 이런 짜릿함은 삶의 활력소가 될 수도 있고 촌철적 의미의 행복을 줄 수도 있다. 심리학에서는 크게 사고의 방식에 따라, 긍정적 형과 부정적 형으로 나눈다.종교적 의미로는 어차피 벌어지는 상황은 같지만 그것에 반응하는 사람의 행동에 따라서 결과가 천차만별로 달라짐을 설명한다. 결국, 긍정은 긍정을 낳고 부정은 부정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 긍정을 유지하려 하여도 그것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한데 그중의 하나가 삶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사실은 발견되지 않은 매 순간 아주 작은 짜릿함 속을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조금 더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다.오늘 아침처럼 촉촉이 내리는 가을비 속에서 느껴지는 고즈넉한 도시의 차분함이 행복을 자극한다. 진료실 창밖으로 어슴푸레 내린 안개 속의 이국적인 정취가 느낌이 좋다. 갓 사온 커피 원두의 봉지를 처음 열 때, 코끝에 감도는 커피 향은 영혼을 자극하는 듯하다. 분쇄기에 넣고 원두를 갈 때의 소리 또한
스마트폰이 울려 받아보니 뉴질랜드에 있는 지인의 이름이 뜬다. 반가운 마음에 받았는데 내용은 편하지 않은 사연이었다. 뉴질랜드에 아이가 공부하러 간 지 3년 정도 되는 분이었다. 지금 12학년인 아들이 학교에서 선생님과 언쟁을 하고 교실을 박차고 나오면서 분에 못 이겨서 화단에 있는 조각물을 발로 차서 약간 쓰러졌는데 학교 측에서는 징계위원회를 열겠다는 내용이었다.필자의 아이들이 오랜 세월 유학을 해서 조언을 듣고 싶어 전화가 온 것이었다. 외국에서 12학년은 우리나라의 고3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학교에서 많은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 것 또한 같다. 다만 외국이란 특성상 폭력적인 것에 대한 배려가 우리보다는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내용인즉 한국으로 돌아갈지, 그곳에서 전학할지, 그런데 6개월 후면 졸업하는데 너무 억울하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필자가 아이에게는 뭐라고 했냐고 물었더니 마지막 6개월을 못 참은 것이 화가 나고 아쉬워서 야단을 치셨단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아이가 왜 그랬는지, 아이를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도 없었다. 다만 그동안 고생한 것과 향후 잃어버릴 것에 대한 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