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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단] 혼밥과 회식의 앙상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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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호 논설위원

개원 초창기 겨울, 아침 출근 시 나는 사뭇 로마 원형경기장에 등정하는 검투사 심정이었다. 파카잠바, 모자, 장갑, 안경, 넥타이, 귀마개로 중무장한 후 스님의 말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一日不作 一日不食)”를 되새기며 나섰다. “오늘은 또 어떤 환자와 맞서게 될까? 칼과 창 대신 한손에 핸드피스, 한손에 미러를 들고 유효적절한 언사를 날리며 적시타를 터트려야 할 텐데…” 오전 대기실에 그득했던 사자들을 다 처치하고 나면 입은 마르고 허기지고, 그냥 ‘히키코모리’이고 싶었다. 환자 많은 게 죄였다. 그땐 다 그랬다. 누구와 점심 같이 하자고 전화할 여유가 없었다. 단골 칼국수 집은 혼면을 하며 환자진료를 복기하고, 반성하고 후회하는 한 시간의 도피처였다. 세로토닌이 분비되고 오후 이차전에 대비한 자가 치유의 시간이었다.


그러다 여기저기 감투를 맡게 되었다. 매주 도시락 조찬모임이 있는 날이 있었다. ‘말하며 듣고 생각하며 먹는’ 주요행위를 동시에 수행하는 것은 생리에 거슬렸지만 요령을 터득하는 공부가 됐다. 그날은 번번이 11시가 넘어서야 환자들을 비집고 들어갔는데, 내가 소문난 명의인가 착각할 정도였다. 조석으로 호텔을 출입할 때면 사업가인 듯 성취감도 있었다. 저녁의 한 정기모임은 회식을 거쳐야 비로소 소통되고 교류됨을 깨닫는 자리였다. 점심은 한 선배 치의와 비뇨기과 의사와 했는데 새삼 사소한 식사예법을 일깨우게 되고 요긴한 정보도 얻고 스트레스도 공유하는 기회였다. 반회 회식은 조직의 일원이 되고 공동체감을 불러 일으켰다.


몇 달 전 치의신보에서 창간 50주년을 맞아 개원가 동료 치의들 간의 소통과 단합의 중요성을 위해 ‘동네치과 원장끼리 식사합시다’ 캠페인을 진행했다. 제주도까지 전국을 돌며 분회 및 반회, 친목모임 등 식사자리를 소개했다. 그 최종회로 30~60대 각 세대별 회원들을 초청해서 간담회를 열었다. 그중 60대 회원으로 본인이 초대되었는데, 벌써 내가 이런 군번인가 싶었고 나보다 더 식사소통을 잘하시는 분들이 많을텐데 쑥스러웠다. 하지만 간담회든 진료든 다 먹자고 하는 일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임해서 두서없이 말해주었더니 기자가 조리 있게 기사화 해주어 무거운 비중으로 실어주었다. 사실 그간 치과 동료들과 맛집을 제일 많이 가봤다. 그만큼 편하다.


대통령의 혼밥이 구설수에 올랐다. 드라마 보며 혼밥 했다고 마치 본 듯이 폄훼한다. 자신의 혼밥 자괴감을 대통령에 투사한 것이 아닌가? 혼밥은 죄도 아니고 수치도 아니다. 인간의 가장 자연스럽고 기본적인 식사행태다. 식사를 통한 ‘관계중독’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 왜 혼밥을 했을까? 아무도 모른다. 다만 유추할 뿐이다. 식사상대와 식습관은 지극히 내밀한 즐거움이고 삶의 일부이므로 누가 개입될 수가 없고 관여할 일도 아니다. 본질이 아니므로 비난할 게 아니다. 그렇다고 일국의 최고 공직자로서 바람직하지는 않을 것이다. 누구와 무얼 먹는다는 것이 바로 정치의 시작이고 절반이란 것을 대통령이 모를 리가 없다. 구멍가게 치과원장도 ‘밥이라도 한번 먹은 관계’에서 뜻밖의 정보에 착안하는 경우가 있는데 하물며 나랏일이야 오죽할까. 정치만 잘했다면 혼밥을 하든 회식을 하든 이런 사단이 없었을 터인데, 기가 막힐 뿐이다.


그동안 무수한 사람과 식사를 했지만 30여년이 지나도록 잊혀지지 않는 식사장면이 있다. 야전병원 군의관 시절, 지프 2호차에 간호장교 두 명을 태웠다. 선탑하고 후위 앰뷸런스에 두 위생병과 운전병을 대동하고 전방 GOP 순회진료에 나섰다. 우쭐했다. 전장에 출정기분이었다. 동해경비사령부 MASH(이동외과병원)에서 1박 후 차를 달려 GP연대 사령부에 도달했다. 상황실 중위에게 물으니 방금 식당으로 가셨단다. 암만해도 먼저 보고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때 신참대위라 나름 군기가 들어 있었다. 나의 별명이 ‘환자 중대장’이었다. 식당 문 앞에서 이열종대로 진입했다.


시선이 쏠리고 막 식사하려던 장교들이 흠칫 놀라는 듯 했다. 끝에 헤드 테이블이 있었다. 일면식이 없어도 푸른 견장의 지휘관은 금방 알아볼 수 있다. 긴장했다. 정적을 깨고 “충성” 경례 후 도착보고를 육하원칙에 맞춰했다. 연대장은 말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군의관도 같이 식사하지…”누군가 잽싸게 한자리를 비우고 난 얼떨결에 연대장 맞은편에 앉았다. 묵직한 절도감이 씹는 소리를 눌렀다. 식사 후 연대장이 “여기 왔으니 기념으로 북을 한번 치자”며 우리를 통일전망대로 인솔했다. 타고(打鼓)는 우리를 잔뜩 고무시켰다. 연대장이 아무런 지시도 안했지만 그날 순회 진료는 정말 일사불란 했다. 인정욕구가 한 끼의 식사로 충분히 보상받았으므로 말이다.


단골 점심상대 그 선배님은 은퇴하셨다. 입맛 따라 난 지금도 간혹 혼밥한다. 우연히 환자를 만나면 밥값을 내준다. 대통령의 인생역정으로 미루어보아 간헐적 혼밥은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 한계를 넘어섰어야 했을 텐데 안타깝다. 외람되지만 내가 대통령이라면 일 잘할만한 사람 청와대로 불러 북 대신 테니스 한번 치고 식사도 자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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