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사석에서 유명 치과대학 보철과 교수님께 “환자가 문의하면 진료비 설명을 어떻게 해야 하냐”고 여쭌 적이 있다. 아예 말씀을 안한다고 하셨다. 환자와의 소통이 중시되고 보철재료 결정에는 가격이 한 요소라고 교과서에도 명기되어있는 만큼, 그땐 의아했다. 그런데 이젠 이해되고 필자도 그 교수님을 닮아가고 있는 듯하다. 비책이 없고 답이 없다. 보철진료비 대화는 비교와 흥정으로 흐르게 되고 치의의 권위와 자존심은 추락하기 마련이라, 직원에게 위임하는 편이 다반사다.
이미 비급여진료비는 각 의원 안내판에 명시돼 있으며 궁금하면 10초간 검색으로 전국 비교가 가능하다. 이것이 자가족쇄 역할을 하므로 수가도 매해 인상하지 못한다. 국민은 워낙 낮은 급여부담 탓으로 상대적으로 비급여부분은 고가(高價)라고 느낄 것이다. 그래서 의료 질은 고사하고 값싼 비급여진료에 현혹될 수 있다. ‘비급여의 급여화 정책’이 한계에 이르니, 한 면은 급여, 다른 면은 비급여이던 동전을 온통 급여동전으로 바꾸기 위한 전초전이다. 이런 자료를 심평원에 공개하고 보고까지 하란 것은 치의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정보유출과 의료 질 하락은 부차적인 문제다.
지난 5월 열린 헌법재판소의 공개 변론에서 재판부의 관심은 개인정보에 관련한 사항들에 집중됐다. 진료내역 공개는 환자의 비밀공개인 만큼 히포크라테스적 양심을 거스르고 당연히 의료인의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 ‘민감정보’인 의료정보는 개인정보 보호법에서도 으뜸으로 규정하고 있으니 국민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 의당 위헌인용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환자 정보 중 개인정보와 아닌 것을 구분하더라도 희귀질환은 개인식별이 가능하다. 또한 보철의 재료, 치아의 위치만으로도 식별이 가능하다. 모든 업종이 정확한 매출신고 의무는 있어도 세부내역 공개는 불필요할 것이다. 어느 식당에 대통령이 왔다면 일시와 가격까지 공개하나? 대통령 주치의들이 진료내역을 공개 못하듯이 내밀한 개인질환 기록을 비밀유지함은 당연하다.
박태근 협회장은 5월 27일 신임 복지부 차관이 협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비급여진료 공개방식을 치료항목별 적정한 진료비용의 범위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개선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이미 헌소 공개변론 석상에서 치과의사 출신인 신인식 변호사의 평균진료비용의 범위를 제공하는 것과 유사한 제안으로 보인다.
이 제안이 수용되더라도 유감이다. 아직 헌재 판결이 나오지 않은 시점이다. 지금은 협회장도 언급했듯이 탁월한 변호사를 추가 선임해서라도 재판에 이겨 인용을 받도록 전력투구할 단계다. 기각되면 비급여정책이 더욱 가속될 것이고, 그때 타협을 해도 늦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용되더라도 심평원은 국민편익을 내세워 정책을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 심평원의 그간 10여 년 행적을 보면 보수, 진보정권 가리지 않고 국민 이익과 알 권리 차원을 앞세워 지속적인 비급여진료비 공개, 급여화, 상승억제책을 구사해 왔기 때문이다.
서울지부의 주도적인 헌소 제기는 최고의 작품이다. 이 험난한 과정에서 법률비용을 놓고 협회와 서울지부간의 오해와 갈등, 감정 다툼이 불거졌다. 안타깝다. 회원들은 불안하고 실망감을 느낀다. 서로 존중하고 자중지란을 즉각 중지해야 한다. UD 때와 같이 전 회원은 성금으로 후원할 준비가 돼 있다. 어쩔 수 없이 복지부와 협상하자면 ‘협회주도’ 전국 평균가 비급여보고로 끝내야 한다.
그리고 매해 협회와 건보공단이 급여비용 수가인상율 결정하듯 조정하면 된다. 각 치과의원별 보고는 행정인력상, 직무윤리상, 전문가 자율권상, 절차상 도저히 불가함을 밝힌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을 천명했다. 복지부, 심평원 정책은 이를 실천하는 것이 시대적 소임이다. 말로만 의료인을 칭송하고 코로나 방역에 도구로만 이용하려 했던 과거 정부와는 선을 그어야 할 것이다.
지난 5월 19일 평일임에도 진료를 못하고 서울지부 법제이사가 강서구회 카톡으로 문자를 보내왔다. “비급여공개 반대, 헌재 공개변론장에 와 있습니다. 우리의 청구가 인용될 수 있도록 성원 부탁드립니다” 비장한 모습이 심금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