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신문_신종학 기자 sjh@sda.or.kr] 전국직업계고간호교육교장협회의(회장 정연·이하 간호교육교장협), 고등학교간호교육협회(회장 김희영·이하 고등간호교육협) 등 전국 특성화고등학교에서 공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로 구성된 단체들이 지난 24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정부와 여당의 간호법 중재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들 단체는 이날 기자회견 이전부터 당·정이 제안한 간호법 중재안에 반대 목소리를 거듭 내놓고 있는데, 이 간호법 중재안에는 간호조무사 학력 요건 개정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원장은 간호조무사 학력 요건을 특성화고 간호 관련학과 졸업 ‘이상’으로 차등을 두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된 간호법 당·정 중재안을 발표한 바 있다. 현행 간호조무사 자격 조건은 ‘특성화고 관련학과를 졸업한 사람’ 또는 ‘그 이상의 학력이 있다고 교육부 장관이 인정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기자회견에서 간호교육교장협 정연 회장은 “간호조무사의 학력 요건을 특성화고 간호 관련학과 졸업 ‘이상’으로 한다면, 이를 근거로 전문대에 간호조무과가 설치될 수도 있다”며 “정부·여당이 내놓은 ‘간호법 중재안’은 간호조무사 양성기관인 전국특성화고등학교의 존립 기반을 흔들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문대 간호조무과 설치와 관련해 대부분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해 정연 회장은 “민주국가에서 직업에 학력 하한선은 있을망정 학력 상한선을 두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이는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사회적 측면에서 훨씬 더 통합적으로, 또 미래적 관점으로 봐야 할 문제”라면서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학력차별 문제를 들었다. 고졸과 대졸 간호조무사의 임금 등 차별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정연 회장은 “전문대에 간호조무과가 생긴다면 고졸이냐, 대졸이냐에 따라 임금과 근로 조건 등에서 차별이 생길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며 “간호조무사 교육훈련기관 지정평가제가 도입됨에 따라 세세한 교육과정이 정해져 있는 만큼, 고등학교에서든, 대학에서든 교육과정은 대동소이할 수밖에 없다. 같은 공부를 하고 같은 자격증을 가지고도 학력에 따라 차별을 받아서야 되겠는가?”라고 말했다.
전문대 간호조무과 허용은 결국 학력 인플레이션, 교육비 증가 등 사회·경제적 비용을 더욱 증가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펼쳤다. 정연 회장은 “학력차별 등으로 울며 겨자 먹기로 특성화고보다 전문대를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진다면, 특성화고에서 가장 높은 충원률을 보이고 있는 보건간호과(간호과 등)가 위기에 빠질 것이고, 특성화고 중심의 중등 직업교육 근간이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단체는 간호법 중재안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여당에 대해 ‘양질의 고졸 일자리 창출 정책’에 역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연 회장은 “실력중심사회, 고졸전성시대, 양질의 고졸 일자리 창출 등 직업교육 활성화를 강조하고 있으면서도, 대표적인 고졸 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간호조무사를 대졸 영역으로 확대하는 것은 정부정책에 역행하는 일”이라며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에 그러잖아도 약화되고 있는 직업교육을 살리기 위해, 획기적인 특성화고 육성정책을 제시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특성화고를 위기에 빠트리는 정책을, 정부·여당이 앞장서서 추진해서야 되겠는가”라고 비판했다.
또한 이들 단체는 일각에서 현행 의료법 내 간호조무사 규정이 ‘학력 상한’을 두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학령기에 특성화고를 선택하지 못한 사람은 일반고등학교 졸업 후, 또는 대학에서 다른 전공을 마친 후에 간호조무사양성학원(1년 과정)에서 ‘내일배움카드’를 활용해 무료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정연 회장은 “실제 많은 대졸자와 경력단절자 등이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고 있고, 특성화고와 학원 등을 통해 매년 배출되는 간호조무사가 3만5,000명 내외다. 이들이 직무를 수행하는 데 실력에 문제가 있다는 말은 지금껏 들어보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단체들은 향후 ‘특성화고 직업교육 활성화’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행보에 나서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고등간호교육협 김희영 회장은 “간호조무사 양성기관을 변경하려는 중차대한 정책을 현행 양성기관과 단 한마디 논의도 없이, 심지어 교육부의 의견조차 들어보지 않은 채 슬그머니 중재안에 끼워 넣는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는가?”라며 “이제부터 우리는 자신들의 직능단체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우리 제자들을 위해, 간호조무사들이 당당한 직업인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평생 성장의 경로를 걸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정부·여당은 중등 직업교육 체계를 흔드는 간호조무사 자격 기준 중재안을 당장 철회하고,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직업교육 활성화 대책을 마련할 것 △ 보건복지부는 특정 기관에 독점적으로 부여한 간호조무사 보수교육 권한을 자격 조건을 갖춘 모든 단체에 개방해 간호조무사 보수교육의 질을 높일 것 △교육부는 직업계고 간호조무사 양성학과 취업률 향상을 위해 선취업 후학습제, 일학습병행제 등 평생학습 경로를 마련하고, 간호교과 교사들에게 ‘간호’ 표시 과목을 즉각 부여할 것 등을 정부·여당에 요구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간호조무사자격취득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특성화고 재학생이 직접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특성화고 3학년에 재학 중인 이 학생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간호조무사 교육기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학교 수업과 함께 780시간의 의료기관 현장 실습을 통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고, 이제 간호조무사 자격 취득 국가시험을 앞두고 있다. 만약 대학에 간호조무과가 생긴다면 우리와 같은 고졸 간호조무사들은 많은 차별을 받게 될 것이 뻔하다. 사회에 나가서 학력으로 인한 차별을 받기 싫다”고 간호법 중재안 철회를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