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신문_전영선 기자 ys@sda.or.kr]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을 차리고 그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이 나왔다.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을 악용해 탈법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입증돼야만 처벌을 내릴 수 있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17일 의료법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으로 기소된 A의료법인 이사장 B씨에게 의료법 위반으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비의료인 B씨는 지난 2006년 A의료법인을 설립하고 법인 명의로 C병원을 개설해 운영하다가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1심과 원심은 모두 비의료인인 B씨가 의료법에서 규정한 의료기관 개설자격을 위반해 의료기관을 개설해 운영했다고 보고 유죄를 선고했다. C병원이 A의료법인 명의이지만 사실상 B씨 개인의 소유라고 본 것. 실제로 의료법인 이사와 감사 모두 B씨의 가족과 지인으로 구성된 정황이 드러났다.
하지만 대법원은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했다는 사실 외에 ‘의료법인을 탈법적 수단으로 악용하거나 의료법인 재산을 부당하게 유출해 의료법인 공공성과 비영리성을 일탈했다’는 증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의료법은 의료인만 의료법인 재산을 출연하거나 임원으로 제한하지 않는다. 비의료인도 의료기관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의료법인에 출연하거나 임원 지위에서 의료기관 개설·운영에 주도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며 “의료법인 명의 의료기관은 비의료인이 주도적으로 재산을 출연하거나 임원 등 지위에서 주도적으로 개설·운영했다는 사실만으로 의료기관 개설 자격을 위반했다고 평가하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비의료인이 외형적 형태만 갖춘 의료법인을 탈법적인 수단으로 악용해 적법한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한 것처럼 가장했다는 사정이 인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B씨가 재산을 출연하는 과정이 A의료법인 설립 허가에 영향을 미쳤고, B씨나 배우자의 고액 급여 수령이 합리적 범위였는지 추가로 심리해 판단해야 한다”며 “원심은 이를 심리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B씨에 대한 유죄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법인은 존재하나 특정인의 탈법으로 법인재산 등 실체가 없다면 사무장병원이라 할 수 있으나, 비의료인이라도 개인재산을 출연해 의료법인을 설립하고 그 명의로 의료기관을 운영한다면 사무장병원으로 볼 수 없다는 게 이번 판결의 요지로 추후 유사사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