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 5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27세 여성 환자가 턱관절증을 주소로 내원하며 같이 온 이들이었다. 한 분은 어머니인 듯 보였고 다른 3명은 형제이거나 매부 같은 느낌이었다. 환자는 턱관절음과 두통 그리고 간헐적인 전신적 불편감을 호소하며 자신이 지닌 안면비대칭을 그 원인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더불어 안면비대칭이 개선되면 그런 증상들도 개선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장시간의 문진과 검진을 통해 환자의 증상이 전형적인 턱관절증보다는 스트레스에 의한 증상으로 판단되어 환자에게 “일하는 동안이나 평소에 스트레스가 얼마나 되나요?”라는 질문을 하였다. 그런데 환자의 대답은 의외였다. “나는 전혀 스트레스가 없습니다”라는 것이었다. 이에 필자는 다시 “직장에서 일은 고사하고 요즘 같은 시대에서 TV나 SNS에 뉴스만 봐도 스트레스 아닌가요?”라고 질문했다. 이에 환자는 “저는 일체 안 보고 안 듣습니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전혀 없습니다. 업무에서도 스트레스 안 받습니다”라고 답변했다. 그 순간 필자의 머리에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20대 중반 현대여성의 입에서 나오는 “나는 스트레스가 전혀 없습니다”라는 말은 심리적으
어느덧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아침 저녁으로 가을이 오고 있다. 자고로 우리네 가을은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오곡백과가 풍성하여 말은 살찌고 하늘은 높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 바로 가을이다. 또한 가을은 산행하기 좋은 계절이기도 하다. 물론 사계절마다 산행의 즐거움이 있지만 특히 날씨가 선선해지고 단풍이 물들어가기 시작하는 가을은 사람들을 산으로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산림이 울창한 산길을 산행을 하는데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다른 것처럼 산행에 대한 느낌도 각각 다르다. 만약 목재상과 화가가 함께 산길을 산행한다고 가정해보면 목재상은 나무의 재질과 산림의 크기를 보고 산의 가치를 평가할 것이고, 화가는 산속의 풍경을 어떤 구도로 화폭에 담을지를 고민할 것이다. 목재상도 아니고 화가도 아닌 일반인들 같으면 ‘공기 좋다’ 혹은 ‘어디까지 올라갈까’와 같은 생각으로 산행을 할 것이다. 같은 산을 산행하여도 사람에 따라 느끼는 것은 다르게 나타난다. 그것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거나 늘 해왔었던 일들과 연관이 있다. 평소에 꽃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은 산행 중에 꽃이 눈에 들어올 것이고, 등산복이나 등산장비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은 산행 후에
이례적으로 부산여중생 폭행사건과 강릉여중생 폭행사건의 가해자가 소년범에도 불구하고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사회가 학생폭력(학폭)의 심각성을 이제야 조금씩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교육학을 전공한 필자가 청소년에 대한 법적인 처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학적 관점에서 법적인 처벌과 범죄유발 감소와의 연관성은 그리 크지 않다. 법이 강화된다고 범죄가 감소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과론적인 처벌이 아닌 원인론적인 처벌은 학폭의 원천적인 차단과 폭력성 증가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구속영장 집행은 향후 발생할 학폭 가해자들에게 일차적인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되는 상징적인 의미는 크다. 이것은 비행청소년들 대다수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잘 악용하고 있는 소년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소년법이 취지와 다르게 학폭의 가해자들에게 법적으로 처벌을 막아주는 보호자 역할을 해준 것은 사실이다. 과거에는 청소년들이 법적인 것에 접근하는 것이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을 통하여 자신의 행동이 법적인 처벌이 크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악용되어 이미 법이 범죄 예방적 기능을 상실하였고 심지어 범법행위를 부추기는 역기능에 이르
청소년에 의한 인천여아살인사건의 판결이 나기도 전에 부산여중생폭행사건이 알려지면서 사회여론이 소년법 폐지로 흐르고 있다. 여기에 강릉여중생폭행사건이 다시 발생하였다. 그런데 가해자가 14세 미만인 13세로 처벌할 수 없다는 데 대한 비판여론이 증가되어 기존의 소년법이 폐기되거나 변경되는 것은 이제 시대적인 요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다. 청소년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청소년에 대한 생리적이고 심리적인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 이 시기는 사춘기라고 부르며 급격히 성장과 발달을 하는 시기이다. 뇌 또한 활발하게 성숙한다. 어른들이 하루에 1~2%의 뇌세포를 만드는 반면, 청소년은 15%의 뇌세포를 만든다. 이렇게 급격하게 자라는 관계로 성숙되지 않아 어른들처럼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다. 특히 전두엽 발달이 충분하지 않아 미래에 발생할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 부족하고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10대 뇌는 몇 가지 특성을 보인다. 어른보다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위험한 행동에 마음이 끌린다. 어른보다 모든 중독에 약하다. 술·담배는 어른보다 10대의 뇌에 더 손상을 주고 남학생보다 여학생의 뇌에 더 치명적이다. 충동적으로 범
학부모들의 고민 중 하나는 자녀들이 좋아하는 컴퓨터와 스마트 폰 게임에 대한 개입이다. 이러한 게임이 학업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걱정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중독으로 이어져서 생활이 엉망이 되는 것을 염려하는 부분도 있다. 특히 요즘 컴퓨터 게임은 현실감이 더해지는 연출을 하였기에 어떤 경우에는 현실과 가상게임의 세계를 구별하지 못하고 심한 경우에는 현실을 게임으로 착각하여 범죄로 이어지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컴퓨터나 스마트 폰 게임 뿐만 아니라 인기 연예인 중에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 도박을 하다 하루 아침에 자신의 인기와 명성을 날리는 경우도 있다. 그 중에서는 한두 번의 실수로 자숙기간을 가지다가도 또 다시 도박을 하여 영영 연예계로 복귀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일반인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러한 행위들이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기와 경제적 여유를 도박으로 잃어버리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학생들이 컴퓨터나 스마트 폰 게임에 빠져서 생활이 엉망이 되는 것이나 일부 연예인들이 도박에 빠져서 모든 것을 탕진하는 것은 중독(addiction)이다. 중독되는 것들의 공통점은 재미난 것이다. 재미있기에 중독
후배에게서 환자 문제로 연락이 왔다. 타 치과에서 치료 중에 내원한 60대 초반 여성 환자였으며, 타 치과에서 신경치료를 받으며 많이 아프고 고생했는데 후배에게 진료를 받으면서 아프지 않다고 칭찬이 많았다고 했다. 그런데 신경치료 후 크라운을 하자고 설명한 후부터 온갖 불평불만이 많아졌고 매사 트집을 잡는데 왜 그러냐는 질문 전화였다. 이에 환자가 성격장애의 일반적인 유형을 보인다고 설명해주었다. 성격이란 사전에 ‘시간과 상황에 걸쳐 안정적으로 지속되며 잘 변하지 않는 개인의 정서나 사고 및 행동양식으로, 대개 어린 시절부터 서서히 발전하기 시작해 청소년기나 초기 성인기에 굳어진다’고 정의된다. 그리고 이러한 성격 특성으로 인해 대인 관계나 직업 및 기타 개인의 중요한 생활 영역에서 부적응이 초래되는 경우에 ‘성격 장애’라고 한다.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은 몇 가지 특성을 보인다. 우선 개인의 특질로 굳어진 성격은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주어 잘 변하지 않는다. 다음은 본인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 못하는 경우가 많다. 셋째로는 양극적인 극단적 사고를 하기 쉽다. 옳고 그름, 좋고 싫음이 극단적인 경향을 지닌다. 넷째로 감정도 좋을 때와 나쁠 때가
장마가 끝날 시기인 8월 중순이 지났는데도 지속적으로 비가 내린다. 며칠째 내리던 비가 오늘 아침까지도 내리고 있다. 필자는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한다. 비가 내리면 번잡함이 사라지고 고즈넉해져서 좋다. 오늘 아침도 비가 내리면서 그렇게 시끄럽던 매미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고즈넉한 한가함이 있어 좋다. 더불어 창밖에서 들리는 빗소리도 좋다. 특히 비오는 날에 자동차 안에서 빗줄기가 천장에 부딪치는 소리는 더욱 좋다. 이럴 때면 지금은 이룰 수 없지만 아랫목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고구마를 까먹으면서 만화책을 보는 것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필자에게 비오는 날은 좋은 추억과 기억이 있다. 반면 비오는 날이면 우울해지는 사람들도 있다. 비가 오면 우울해지는 사람들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과거의 불행한 경험에 의한 정서적 원인이다. 즉 비와 연관된 안 좋은 경험을 지닌 것이다. 예를 들어 비오는 날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다던가 아니면 빗길에서 심한 사고를 당했다던가하는 등등으로 비가 심리적인 트라우마의 원인으로 자리 잡은 경우이다. 두 번째는 빛에 반응하는 멜라토닌과 연관된 생리적 원인이다. 비가 오면 일조량이 줄어들면서 멜라토닌 분비가 적어지면서 우울증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가요? 그대의 어깨가 무거워 보여…”라는 가사 말을 처음 접하게 된 장소는 몇해 전 대학원 졸업생들과 함께 한 회식자리에서 누군가 흥을 돋구겠다며 불렀던 노래에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요란한 음악소리와 함께 흥겨운 리듬을 타고 흘러 나온 가사를 상담심리학적 관점에서 오랫동안 그 내용을 음미해 보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가요?’와 같은 상대방의 상황에 대한 물음과 ‘그대의 어깨가 무거워 보여’라는 신체적 상태에 대한 물음은 그냥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하는 질문도 아니요, 의례적이고 관례적인 물음은 더더욱 아니다. 상대방의 상황과 신체적 상태에 대한 질문은 그야말로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다. 상담심리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심리상담에서 제일 중요시 해야 하는 것은 상대방을 향한 그리고 상대방을 위한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심과 간섭은 상대방을 향하는 것이지만 그 기저에 깔려있는 의도는 전혀 다른 것이다. 관심은 오로지 상대방을 향한 그리고 상대방을 위한 감정이입이지만, 간섭은 자신의 기준에 의한 상대방에 대한 평가 그리고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피드백이다. 관심은 상대방을 위한
“4시 40분 알람소리에 눈을 뜨고, 아버지 집에 오니 아직 5시도 안되었다. 안방에 TV도 켜져 있고 화장실에 불이 켜진 것이 아버지께서 화장실에 계신 모양이다. 오늘은 깨우는 실랑이가 없어서 좋았다. 아버지를 모시고 아침 운동을 나오니, 내가 좋아하는 비가 내렸다. 평소 나의 로망이 비오는 날에 우산을 쓰고 걷는 것인데, 오늘 새벽에 소원이 이뤄져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비가 와서인지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아버지와 둘이서 황제산책을 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사람이 없는 덕에 ‘천년을 빌려준다면’과 ‘안동역에서’를 크게 틀어놓고 따라 부르며 올 수 있어서 좋았다. 평소라면 팔각정을 한 바퀴 돌고는 대나무 밭 안에 있는 평상에서 15분간 쉬면서 간식을 드셔야 하는데, 비도 오고 평상이 젖어서 바로 돌아오게 되니 아버지가 힘들다고 투덜거리셨다. 사우나에 도착하니 아버지 몸은 온통 땀이셨다. 아버지가 온탕에 계시는 동안에 시간을 내어 팔굽혀펴기 80개와 맨손 스쿼트를 200개 하는데 오늘 따라 온탕에서 나올 생각도 없으신 모양이다. 평소에는 일찍 나오셨는데 비온 탓인지 나오시지 않는 덕분에 3년 만에 처음으로 스쿼트 400개를 했다. 허벅지가 터
한일 월드컵이 있던 2002년, 로또가 처음 시행될 때의 풍경이 생각난다. 상점마다 길게 줄을 늘어서서 어떤 번호를 선택할까를 고민하였다. 아마도 전 국민이 한번 씩은 경험했을 것이다. 로또가 새로운 경험이 된 것은 기존의 복권방식과 다른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선택된 번호의 복권을 사는 방법에서 자신 스스로 번호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을 구매자에게 준 것이 로또이다. 로또는 사람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판매를 늘렸다. 로또를 사러 가면 점원이 스스로 번호를 선택하는 방법과 기계가 번호를 선택하는 방법 중에 어느 것인가를 묻는다. 구매자의 성격에 따라서 선택이 달라진다. 객관적으로 기계가 선택한 방법과 자신이 선택한 방법이나 수학적인 당첨확률은 동일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 마음에는 자신이 선택한 번호가 당첨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란 생각이 은연중에 생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컨트롤 환상’이라고 한다. 즉 자신은 운조차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자기편의적인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기편의적 사고’를 교묘하게 복권판매에 이용한 것이 로또이다. 스스로 번호를 기록하는 사람과 기계에 맡기는 사람의 심리를 보면 스스로 기록하는 사람이 자기편의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