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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 건축가 정태종 교수의 건축 도시 공간 눈여겨보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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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위상학적 공간_용산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와 아모레 퍼시픽 본사

강남에서 생활하면 강북 가기 어렵고 강북에서는 강남 건너오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서울은 이동의 심리적 체감이 크고 한강은 명확한 경계가 된다. 그래서 한강과 남산을 볼 수 있으며 강북과 강남 양쪽에서 접근 부담이 적은 용산과 이태원의 존재는 남다르다. 서울의 지리적 중심인 이곳은 외국인과 음식의 이국적 분위기와 자유로운 공간, 리움과 블루스퀘어로 대표되는 세련된 문화시설, 걸으면서 경험하는 스트리트 몰, 저층 건축물의 편안한 거리풍경(Streetscape)으로 인하여 누구는 LA의 비버리 힐즈와 같다고, 또 누구는 도쿄의 오모테산도와 비슷하다고 한다.


이태원의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걸어야 한다. 가까운 곳도 자동차를 이용하는 편리함에 익숙하여 도심에서 걷기가 어색한 서울사람들에게 이태원은 낯선 공간일 수도 있다. 이태원의 한강진역과 이태원역 사이 거리를 걷다 보면 눈에 띄는 건축물이 있다. 바로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최문규 교수(가아건축)1)가 설계한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다[그림 1].

 


제일 먼저 눈이 가는 것은 건축물의 외형 디자인보다 건축물의 왼쪽을 완전히 비워 입구와 작은 외부광장, 언더스테이지로 만들고, 광장에서 한강 쪽 한남동을 볼 수 있게 과감히 뚫어 비워 낸 공간이다. 주변 어떤 건축물도 이렇게 자기의 절반을 비워서 전망과 공공 공간으로 내 주지 않기에 더욱 극적으로 보인다. 이태원 길 좌우로 연속된 건물들을 따라 걷다가 나타나는 보이드(void) 공간. 이것만으로도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의 건축적 가치는 충분하다. 자세히 보면 외부공간 절반을 그대로 비운 것이 아니다. 오른쪽 건물은 뮤직 라이브러리라는 기능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면서 왼쪽의 비워진 공간과 지붕프레임으로 연결되고 있다. 그 결과 왼쪽 광장은 바닥, 벽, 지붕의 형태는 있으나 가운데 공간은 비워진 박스형태가 된다. 이것은 현대건축 개념 중 관통(penetration) 즉, 기존의 이태원과 한강으로 나누어져 한쪽만 사용하는 공간을 도넛처럼 구멍을 뚫어 이태원과 한강 양쪽 공간을 하나로 엮는 건축 디자인으로 새로운 위상학적 공간을 만든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이태원에서 한강 쪽을 보고 숨을 쉬게 되었다. 이와 같은 현대건축 개념의 디자인은 네덜란드 건축가 Rem Koolhaas(OMA)의 Kunsthal2)에서 볼 수 있다. 이 경우는 시각적인 관통뿐만 아니라 바닥판을 이용한 이동과 움직임의 물리적 관통을 동반해서 관통의 개념을 더욱 명확하게 디자인하였다. 로테르담에 있는 이 미술관은 현대건축의 새로운 유형을 만들어 낸 대표 건축물로 건축가들 사이에서 유명하다[그림 2].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는 관통과 더불어 높낮이가 연속적인 대지(landscape) 개념의 광장바닥, 슬레이트 벽의 프린팅 패턴, 유리 마감 등 다양한 현대건축의 표현으로 가득 차 있다. 낮의 한강을 바라보는 분위기도 좋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밤이 압권이다. 건물을 밝히는 노란색 조명이 보랏빛의 움직이는 사람들 패턴의 프린팅 벽과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뿜어내는 보이드 광장에서 바라보는 한강 쪽의 밤 풍경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친구나 가족과 기분 좋은 저녁 식사를 하고 10시경 하루의 들뜬 분위기가 살짝 가라앉을 무렵 이태원 거리를 걷다가 다다른 장소. 그곳에서 한강 쪽을 바라보며 호흡하고 하루를 마무리해보길 권한다. ‘그래 오늘도 수고 많았고, 잘 살았어!’ 힘든 서울 생활을 견디는 우리 자신에게 작은 위로를 줄 것이다. 이것이 건축, 도시 공간, 장소 만들기, 그리고 건축가가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런 장소가 우리가 사는 곳 구석구석에 만들어지길 기대해 본다[그림 3].

 

 

이태원을 뒤로하고 남서쪽으로 녹사평을 거쳐 용산역으로 걷다 보면 또 하나의 놀라운 도시풍경이 기다린다. 용산역 앞쪽은 천지개벽 중이다. 도심 재개발의 문제점이 많아 가슴 아픈 장소이기도 하지만 그런 사연과는 별개로 국립박물관과 용산공원이 있는 도심의 자연을 나타내는 수평성의 공간과 더불어 수직성의 초고층 건축물들이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영국 건축가 David Chipperfield의 아모레퍼시픽 본사는 특별하다. 도시풍경을 보기 위한 건물의 가운데를 크게 비운 보이드 공간의 개념은 이태원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의 확장판이라고 할 정도다. 단순한 매스로 표현한 미니멀리즘, 주변과 잘 어울리는 볼륨감과 분위기, 유리와 수직루버를 이용한 입면, 관통을 이용한 보이드, 중정에 만든 옥상정원 조경, 내부 로비의 높은 아트리움, 지하철역에서 접근하는 출입구의 은하수 디자인 등 좋은 디자인이 끝도 없다.

 

필자는 이런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한동안 작은 책 하나 들고 자주 놀러 간다. 내부 아트리움에는 머무르기 좋은 디자인의 의자들이 있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그림 4].


아모레퍼시픽 본사를 뒤로하고 용산역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용산 개발현장을 볼 수 있다. 용산역 쪽에서 바라보면 정림 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한 드래곤시티 호텔이 눈에 들어온다. 주변은 개발 초기라 여기저기 비어있는 현장에 랜드마크처럼 솟아 있는 호텔 존재 자체가 지금의 용산 분위기가 어떤지 보여준다. 얇고 높은 판상형에 반사유리를 사용한 호텔은 멀리 보이는 63빌딩이 강 건너편 여의도 개발의 상징처럼 2020년 용산 개발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언뜻 보면 두 건물이 왠지 유사하게 보이는 것이 놀랍다. 여의도 개발 이후 50년이 흘렀어도 한국의 건축은 개발 논리에 좌우되는 부동산이라고 해야 더 어울리고, 용산은 한국 현대 경제 논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전형적인 장소가 되었다. 이러한 냉정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요즘 같은 맑은 여름날 해질녘에는 개발의 민낯은 어둠에 살짝 가려지고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대지와 한강과 하늘이 만나는 공간의 원초적인 찬란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지금 더 늦기 전에, 초고층의 건물로 꽉 채워지는 5년 또는 10년 후에는 볼 수 없을 용산의 비워진 땅을 가봐야 한다. 용산에서 한강까지 이어지는 도시의 넓은 벌판, 빈 곳 그 보이드의 낭만을 위해[그림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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