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업은 특례대상, 문제는 11시간 연속 휴게
“주52시간이 도입되면, 병원 직원 및 수련의 근무시간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모 치과대학 병원장은 최근 고민에 빠졌다. 주52시간이 도입되면서 1주일에 최대 근무할 수 있는 시간이 기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되면서 치과병원 내에서의 인력활용에 대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질의했으나, 당연히 법대로 준수해야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의료계에서 주52시간 근무제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곳은 대형병원이다.
7월 1일부터 우선 적용되는 대상은 상시 노동자 300인 이상 사업장, 국가,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이다. 다만, 병원을 비롯한 ‘보건업’은 ‘근로시간 특례업종’으로 분류돼 노사 합의에 따라 연장근로시간을 넘겨서도 근무할 수 있도록 예외를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오는 9월부터는 특례업종이라 하더라도 11시간 연속 휴식시간을 보장해야 하는 상황이 됨에 따라 응급실 의료진부터 당장 충원이 필요한 상태다. 노사합의에 진통을 겪는 경우도 발생한다.
다만, 고용노동부에서는 전공의의 경우 수련시간이 주당 80시간으로 제한돼 있는 특별법이 우선 적용된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인력의 적정한 배분과 충원에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특례업종에 종사하는 의료진도 일반 근로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고 싶다는 취지의 국민청원도 제기되고 있다. 의료진의 삶의 질 개선에 대한 관심도 중요한 부분으로 부각되고 있다.
야근수당이 필요한 근로자? 치기공계도 영향
사회 일각에서는 ‘저녁 있는 삶’은 얻었으나 ‘돈 없는 저녁’이 생겼다는 푸념도 나온다. 임금이 낮은 근로자의 경우 야근수당 등을 통해 급여를 보충해왔지만 강제적으로 주52시간이 도입된다면 오히려 삶의 질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치과기공사 A씨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물가는 오르는데 그만큼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에 오히려 근로자 입장에서 부담이 된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특히 영세한 기공소에서는 기간을 맞추려면 야근을 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현재 주40시간 근무에서 더 나아가 주52시간으로 최대 근무시간까지 단축된다면 또 다른 어려움이 불거질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주52시간 근무제는 종업원 300인 이상의 사업장과 공공기관은 2018년 7월 1일부터 도입됐고, 50∼299인 사업장과 5∼49인 사업장은 각각 2020년 1월 1일, 2021년 7월 1일부터 법이 적용된다. 다만 주 52시간제가 전면 시행되는 2021년 7월부터 1년 6개월간(2022년 12월 31일까지) 30인 미만 사업장은 노사 합의를 통해 특별연장근로 8시간을 허용하기로 했지만, 전면시행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남지 않은 것이 문제다.
뿐만 아니라 법정공휴 유급휴일도 확대 적용되는 것 또한 고용주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이전까지 일부 민간기업의 노동자나 공무원한테만 유급휴일이었지만, 앞으로 5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가 똑같은 권리를 누리게 된다. 신정과 3·1절, 부처님오신날, 어린이날, 현충일,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크리스마스, 설날과 추석 연휴 3일, 공직선거법에 따른 선거일, 임시공휴일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근로자에 대한 적정 임금 보전 문제도 또다른 과제가 될 전망이다.
개원가 구인난이 불러올 발 빠른 변화
치과 개원가에서는 정부의 단계적인 시행보다 근로기준법과 관련한 규정들이 빠르게 정착되고 있는 상황이다. 직원 채용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는 5인 미만의 동네치과에서도 주40시간 근무제는 이미 일반화되고 있다. 구인구직난이 불러온 영향이라는 해석이다.
실제로, 서울시치과의사회 구인구직특위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근무시간과 관련 ‘주40시간 이하’로 답한 응답자가 57.8%, ‘주40~52시간’이라는 응답이 41.4%를 차지했으며, ‘주52시간 초과’를 선택한 경우는 0.9%에 불과했다. 특히 이 설문의 응답자의 89.2%가 5인 이하 사업장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주목할 부분이다.
구인구직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생기면서 규모에 상관없이 주40시간 근무는 일반적인 조건이 되고 있다. 여기에 최저임금 인상, 주52시간 근무까지 도입되면 300인 이상 기업에 우선 적용된다는 예외조항에도 불구하고 빠른 전파는 불 보듯 빤한 상황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본지 송윤헌 논설위원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직종 등은 대체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특징이 있어 0.5명의 업무량과 0.5명의 업무량이 필요해도 합해서 1명이 아니라 2명을 고용해야 하는 특징이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노무관련 변화가 빠르게 이뤄지다 보니 전문성이 강조되고 노동집약적이며, 여성인력이 대부분인 치과계의 특성이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진료시간을 줄여도 임금은 줄이면 안 되고, 그 부족분은 생산성 향상으로 해결하라는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근로조건을 중심으로 한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일각에서는 주40시간이 주5일 근무로 오해되고 있고, 이미 지급되고 있는 임금도 근로계약서에 적시되지 않아 불이익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의료계의 특성을 반영한 제도와 현실에 맞는 대응이 더욱 중요한 시기다.
김영희 기자 news001@s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