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정읍의 천년 고찰 내장사의 대웅전이 전소됐다는 뉴스는 매우 안타까웠지만, 53세 사미(예비승려)의 소행이란 소식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동안 우려했던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화재사건은 예비승려에 의한 방화라는 종교적 범죄의 의미가 아니라 수 천 년을 이어온 전통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어 무너지며 나타난 파열음이며 사회적 경고다.
그간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스승과 제자 관계인 도제식 교육제도가 변질되고 전통이 파괴되어 온 지 오래되었다. 도제식 교육 중에 가장 오래된 곳이 불교 승려제도였다. 전통적으로 승려가 되기 위해서는 군대보다 어렵다는 행자 생활을 마치고, 예비승려 생활을 모두 겪고 나서 비로소 정식 승려가 되었다. 한 명의 스님이 되기까지 스승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도하고 책임지는 전형적인 도제였고, 수행하는 내내 성취도를 늘 확인받고 인가받는 작업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던 것이 출가자 수가 감소하면서 13~50세만 출가가 가능했던 연령 제한을 2017년부터 65세까지 확대했다. 도제식 교육에서 승가대학 같은 시스템 교육체제로 바뀌게 되었다. 그때 이미 스님들 자질 검증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예비승려가 대웅전에 불을 지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번 사건은 종교를 떠나 도제식 교육이 무너졌을 때 나타날 문제의 끝판을 보여주었다. 인성이 무너진 사회에서는 어떤 일도 발생 가능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도제식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유·무형문화재들이 제자를 구할 수 없어서 명맥 유지가 어려워진 지 오래다. 돈이 되면 몰리고 아니면 명맥이 끊어진다. 장인정신으로 이어오던 일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안타깝지만 인성보다 돈이 중한 사회로 변하며 예견된 일이었다. 구글신이 사회를 지배하면서 기존 종교의 몰락 또한 예견된 일이었다. 출산율이 감소하고 인구가 줄면서 기계로 대치할 수 없는 분야에서는 필연적으로 나타날 일들이었다. 학생 감소로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없어진다는 이야기가 현실적인 위기로 나타났다. 이런 총체적인 변화의 결과가 이번 내장사 대웅전 방화이고 그 결과물이 전소다.
몇 년 전 일본에서 백년 이상 이어온 국수집이 문을 닫았다는 기사가 있었다. 장인정신으로 가업을 잇던 일본에서 세대변화와 젊은이의 부족으로 전통이 단절되기 시작했다. 요즘 동경 근교에는 중고차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아파트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예견된 일이었으나 막지 못하면서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95년에 필자가 유학을 갔을 때, 비용 때문에 결혼식을 하지 못하고 결혼한 부부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에 의아했던 것이 이제 우리의 일이 되었다. 급격히 출생아가 감소하는 우리도 20년 뒤에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이다.
도제교육과 정신 수양의 대명사인 승려제도마저 무너졌으니 이제 우리 사회는 새로운 그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 황금만능주의가 교육을 넘어 정신세계의 마지막 보루인 종교까지 침범했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버리라고 가르친 부처를 모신 대웅전을 분노와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태워버렸다. 부처는 세상의 모든 것이 인연에 따라 왔다가 간다고 하였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 사라지니 끊임없이 정진하라는 유언처럼 내장사 대웅전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었지만 그 방법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번 방화사건도 되돌아보면 우연이 아니다. 비록 대웅전과 불상이 전소되었지만, 만약 범인이 승복을 입고 저지를 수많은 악행을 막았다고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이미 종교인들이 격이 떨어지며 자질에 문제가 있는 사건들을 많이 보았지만, 이번 사건은 종교 주체를 파괴하는 패륜적 모습이어서 충격이었다. 정치인들이 이익에 따라 정의를 왜곡하면서 옳고 그름이 구별되지 않고, 도덕과 종교가 무너져가고, 인성이 사라져가는 지금은 성서의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시킨다.
이제 뒤돌아보아 소금기둥이 되지 않고 스스로 옳은 길을 가야 할 때다. 자신을 등불삼으라(자등명自燈明)는 부처님 말씀처럼 스스로 옳은 길을 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