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반문명적이고, 반인륜적인 행위를 굳이 하나만 꼽자면 폭력이라고 하겠다. 부모자녀에 대한 가정 내 폭력도 그렇지만 개인 간의 폭력, 단체 간의 폭력,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이 국가가 벌이는 폭력 등 세상 모든 폭력은 그 자체가 범죄다.
폭력의 주체는 그 폭력이 자신의 심적 욕망에서부터 시작하기에 상대가 받는 피해에 대해서는 무딜 뿐 아니라 희열까지 느끼는 것 같다. 피해자가 받는 고통은 신체적인 아픔도 있겠지만 그로인한 자존감 상실, 수치심, 무력감 등으로부터 오는 우울증이나 공황장애까지 다양한 심리적 충격을 받는다.
지난 7일 치협과 의협이 변협과 손잡고 ‘법조 및 의료인력 대상 테러행위 대응’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법조, 의료인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폭력방지대책협의회’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정부, 국회 등에 의료인 및 법조인력에 대한 안전한 근무환경 마련 방안을 찾겠다는 것이다.
과거와 달리 의료인에 대한 폭력 또는 살인 같은 흉악범죄는 이제 일상화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가 개원하던 수십년 전에는 어쩌다가 아주 희귀한 사건처럼 일어났던 진료실 내 폭력사건이 이제는 수시로 뉴스에 오르고 있다.
의료인에 대한 폭력은 그 피해를 직접 받는 의료인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의료인에 대한 폭력은 환자에 대한 방어진료로 이어질 수 있고, 환자와의 커뮤니케이션에 문제를 일으켜 올바른 진료를 방해하기도 한다. 즉 그 피해가 다른 환자들에게도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의협이 최근 의료인에 대한 폭력 및 폭언 경험을 설문조사한 결과, 의료인 10명 중 8명(78.1%)이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 가운데는 한 달에 1~2회가 무려 32.1%이며, 1주일에 1~2회는 11.2%, 매일 1~2회는 1.7%나 된다. 이들 가운데 매일 1~2회나 매주 1~2회가 총 12.9%로 비율은 낮지만 의료인 10명 중 1명 이상이 위험에 상시 노출돼 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현재 대책협의회에서는 반의사불벌죄를 적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일단 추진하는 것 같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의료인들은 폭행을 당해도 할 말 못하고 합의해 주거나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병원 평판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고 나중에 보복에 대한 두려움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반의사불벌죄에서 제외된다면 의료인에 대한 폭력은 피해 의료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그 자체로 처벌을 받을 수 있게 돼 어느 정도 방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료인에 대한 폭력사건이 법이 미약하거나 없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을 제어하지 못해 일어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같은 그런 처벌책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전 예방 방안도 동시에 강구해 나갈 필요가 있는데, 의협은 진료실 내 보안요원을 두는 것을 고려하지만, 사실 의료인이 3~4명밖에 안되는 대부분 치과의원에서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아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치과계 특성상 치과에서의 폭력노출이야 말로 더 위험하고, 실제로 매년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번 대책협의회와 별도로 치협 내 대책팀을 만들어 다양한 예방책을 강구해 나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그동안 사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매번 대책위원회다 뭐다해서 방안을 찾겠다고 했지만, 선언적인 구호에 그쳤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만큼 뾰족한 대책을 찾는 것이 마땅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3만여 회원들이 안심하고 진료에 임할 수 있도록 실효적인 대안을 마련해 주기를 사뭇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