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중파 TV 심야토론에 나와서 서로 거짓말을 한다는 등 험담에 가까운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며 상대방을 맹비난하기도 한다. 한 쪽은 생명을 두고 흥정을 하자는 거냐며 여론몰이를 계속하고 있고, 다른 쪽은 과연 이 제도가 국민의 입장에서 옳은 것인지 다시 한 번 고려해보자고 한다. 누구의 주장이 옳고 그른지는 ‘가재는 게 편’이라는 말을 들을까봐, 당장 이 논단에서 판단을 내리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강 건너 불구경 하는 듯한 치과계의 태도는 문제의식이 결여된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포괄수가제가 남의 이야기인가? 당장 이달부터 시행되는 75세 이상 레진상 완전틀니의 급여수가도 포괄수가제로 묶여있다. 난이도를 고려하지 않은 동일 수가다. 환자가 의료기관에 방문하여 신청서를 작성하고 등록절차를 마친 후에 레진상 완전틀니 치료의 1단계에 들어가면 바로 포괄수가제로 묶이기 때문에 이전의 기본진료비에 포함된 구강검진과 방사선 촬영 등 1단계에 해당하는 비용을 환자에게 환불해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환자 등록이 실시간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어떤 경우는 환자가 신청서를 들고 공단에 직접 방문하여 접수하는 경우도 있으니, 그 사이 혼란이 생길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민국의 건강보험제도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값싼 진료비에 많은 국민들이 양질의 의료혜택을 보고 있어, 선진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부러워하고 있는 제도다. 그러나 저수가를 용인해준 의료단체의 희생과 양보를 기억하고 고마워하는 국민은 드문 것 같다. 열심히 진료해주고도 과잉진료니, 도둑놈이니 욕을 먹고 있으니 마음이 아프다. 실제로 대승적 차원에서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들의 무료의치를 제작해드린 수가는 슬그머니 레진상 완전틀니의 수가로 정착이 되었고, 내년부터 시행될 부분의치나 지대치의 가격도 비슷한 수준이다. 치면열구전색도 마찬가지로 보건소에서 후원을 받아 반반씩 부담하던 것이 의료보험 상에서는 그대로 수가로 녹아들었다. 대국민 봉사의 일환에서 좋은 의도와 마음으로 협조해왔던 것들이 수가협상 테이블에서 오용된 것이다. “우리는 생명을 존중하고 인류의 구강보건 향상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한다”는 치과의사윤리를 울며 겨자 먹기로 120%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전체 의료기관의 94%에 이르는 민간의료기관을 마치 공공의료기관처럼 다룰 수 있는 정부의 힘은 의료보험 강제지정에서 비롯한다. “우리나라의 의료기관은 모두 공공의료기관이며, 그 이유는 의료인을 만드는데 정부의 보조금이 들어갔기 때문”이라는 어느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의 어이없는 발언에도 그저 웃음만 나오는 이유는 그동안 우리 스스로가 마치 ‘모범생 증후군’에나 걸린 듯이 해야 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마당쇠마냥 그저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해온 탓은 아닐까?
신포괄수가제에는 544개 질병군이 포함돼있다. 그 중에는 치과 쪽 질환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앞으로는 대구치 근관치료는 얼마, 매복치 발치는 얼마, 이런 식으로 보험제도가 바뀔지도 모른다. 의과 쪽 신포괄수가제를 보아하니 진료의 양적 평균값을 내어 수가를 고정한다. 난이도 고려를 했다지만, 보상체계는 더욱 허술하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의료제도의 틀 속에 갇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평균적인 진료를 생산해내야 하는 입장이다.
우리나라는 진료비 총액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아니다. 표면적으론 말이다. 하지만, 상대가치 점수에 있어서는 ‘총점고정’을 내세우는 정부 때문에 아랫돌을 들어 위에 쌓는 식의 협의 밖에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리는 동료 치과의사를 비롯한 모든 보건의료인과 협조하며 국민과 함께 최상의 의료제도 정착에 힘쓴다”는 윤리선언의 기본 정신에 입각하여 포괄수가제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적어도 정부와 국민 사이에, 그리고 유관 의료단체 사이에 끼어서 입장 정리도 못한 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