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은 지난 7월 기준 ‘그냥 쉼’ 청년(15~29세)이 44만3,000명이며, 이들 10명 중 7명은 일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그냥 쉼’은 실업자가 아닌 비경제활동인구 중에 질병이나 장애가 없는 상태에서 자기의지로 쉬는 사람들이다. 2013~2017년에 20만명대였다가, 코로나 시절인 2020년엔 40만명대로 증가했다. 이후 2022년에는 36만명으로 줄었는데 다시 증가한 것이다. 쉬는 청년 44만명 중에 75.6%인 33만명은 전혀 구직의사가 없다고 한다. 이들을 필자는 ‘그냥쉼족’이라 부른다. 이들은 일본의 히키코모리와 다르다.
히키코모리는 일본 고도성장기인 1970년대에 등교 거부하던 청소년들이 40~50대가 되도록 문밖으로 나오지 않은 은둔형 외톨이들로 지금 60~70대가 되었다. 그 후에 캥거루족이 있었다. 캥거루족은 2000년대 취업이 어려워지자 독립하지 않고 부모에게 의지하던 자녀들이었다. 이미 그들도 40대를 넘었다. 이들은 자의적이 아니라 사회적인 환경 문제였기 때문에 요즘 생긴 ‘그냥쉼족’과는 다르다.
‘그냥쉼족’은 아르바이트를 해보았거나 한두 번은 취업을 해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일은 힘들고 노는 것이 더 좋고 쉬어도 부모덕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다. 혹은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는 든든한 후원자인 헬리콥터맘이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일하지 않을 의지가 있음을 당당하게 말한다. 부모로부터 월급에 준하는 용돈을 받고 친구를 만나고 즐겁게 지낸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지 않을 뿐이다. 어찌 보면 가장 부러운 삶이다. 일하지 않고 놀고먹기만 할 수 있는 삶이란 모두가 원하는 것일 수 있다.
심리학적으로 히키코모리는 회피성 성격장애였고 캥거루족은 치맛바람 엄마들에 모든 것을 맡기는 의존성 성격장애였다. 반면 ‘그냥쉼족’은 누림에 익숙한 평범한 사람이다. 히키코모리는 사람을 기피하는 경향을 지녔고, 캥거루족은 부모의존성이 높다면, ‘그냥쉼족’은 부모의존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부모가 자식을 부양하고 생활비를 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게 누리지 못하면 자신들은 무능한 부모의 피해자라 생각한다. 자식을 낳았으면 그 정도는 기본적으로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에게 손 벌리는 것이 아니고, 당연한 권리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없고 일을 해야 할 이유도 사명감도 없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부모를 가진 것도 자신의 능력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결코 일하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SNS에 돌아다닌 괴담이 하나 있다. 서울대생을 대상으로 은퇴한 부모가 언제쯤 돌아가시면 가장 적절한가를 묻는 설문에 ‘63세’라 답한 학생이 가장 많았다는 내용이다. 부모 돈은 자신의 미래 자산이기 때문에 많이 줄면 안 된다는 취지다. 필자는 이 설문의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찾아보았으나 괴담이라는 내용만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괴담이 돌만큼 지금 젊은 세대 사고는 기존 세대들과 완전히 다르다.
이들은 윤리나 도덕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집에서 밥상머리 교육도 받아본 적이 없다. 선진국에 태어난 선진국민이라고 생각하고 누리는 것에 익숙하다. 유아 땐 명품 유모차를 탔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명품 옷을 입고 자랐다. 그들은 우리나라를 스위스와 동등한 진짜 선진국이라 믿는다. 당연히 부모 것은 자신의 것이라 생각한다. 남 밑에서 기분 상하며 일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그런 교육과 환경에서 자랐으니 그들을 탓할 수도 없고 말한다고 바꿀 수도 없다. 다만 우려될 뿐이다.
자연계에서 동물은 경쟁해서 성취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수많은 시간을 통하여 인간 또한 자연법칙에 따라 심신(몸과 마음)을 유지하도록 프로그램되었다. 경쟁은 동기유발이 되고, 성취를 통해 행복을 느끼게 DNA화 되어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프로그래밍 된 자연계 법칙에 따라 심신에 문제가 발생한다. 성취를 통한 기쁨이 없으면 자극적인 향락에 빠지기 쉽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력해지거나 우울해진다. 자연계가 부여한 동물 속성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젊은 세대 모두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스스로 당연하다고 해서 자연계의 당연한 것이 아님을 모르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