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고”라는 말이 있다. “그건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라는 말도 있다. 후자는 상황이 바뀌었다는 의미이고 전자는 조건이 다르다는 의미다. 이 말이 지닌 공통점은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도 금전적인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 상황과 조건은 늘 법이 상식과 윤리를 따라오지 못할 때 발생한다. 상식과 윤리가 희박해지면 비상식적인 일들이 법을 핑계로 발생한다.
후안무치(厚顔無恥)란 사자성어가 있다.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얼굴이 두꺼워서 부끄러움을 모른다’로 해석된다. ‘얼굴이 두껍다’는 철판가면을 쓴 듯이 뻔뻔하다는 의미다. 이 말은 옛날 교과서인 <시경(詩經)> 소아편(小雅篇)의 교언(巧言)이란 시에서 유래하였다. ‘巧言如簧,顔之厚矣(교언여황 안지후의) 생황소리 같이 간교한 말은 낯가죽이 두꺼운 자들이 한다’는 시구가 있다. 생황이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로 바이올린의 고운 소리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즉, 귀에 듣기 좋게 아부하는 소리는 낯가죽이 두꺼운 아첨꾼들이 한다는 의미다. 이 시는 간신들이 아부로 하는 모함을 믿는 임금에 대한 내용이다. 통상 창피함을 모른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얼마 전 화재가 발생한 광주 한 빌라에서 인명 수색을 하기 위해 소방관이 강제로 현관문을 개방하며 도어락이 파손되자 세대주들이 800여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법적으로 행정배상 책임보험은 소방관의 실수가 아닌 손괴는 배상할 수 없어서 소방서가 그 책임을 떠안아야 했다. 강원도 소방본부에서 2020년부터 2024까지 5년간 손해배상 민원을 처리한 건수가 20건으로 보상액은 1,942만원이었다. 한 상가 건물에서는 소방대원들이 불길 확산 여부와 구조대상자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상가 내 일부 문을 강제로 열었는데 문이 망가졌다는 민원을 받고 66만원을 보상했다. 또 한 주택 화재 현장에서는 신속한 진화를 위해 담장과 자전거 거치대를 파손시켰다가 567만4,000원을 손해배상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화재로 죽지 않고 살았으나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계산은 계산이고’다. 참 가슴 아프고 씁쓸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민원인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도 화재 피해자고 설상가상으로 기물이 파손당하는 손해까지 입었으니 억울할 수 있다. 죽을 것을 살려준 고마움은 원래 소방관 일이고 당연한 것이니 마음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당장 손해 본 것은 법적으로 해결해주면 좋겠다는 합리적 행동이다.
결국 문제는 이렇게 만들어진 법이다. 상식과 윤리가 통용되던 과거에는 살려준 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화재로 발생한 손해는 당연히 자신들이 감당했지만, 상식과 윤리가 희박해지면서 금전적인 손해를 법적으로 보상받은 방법을 찾고 실행에 옮긴 것뿐이다. 법이 시대 변화를 따라오지 못하면서 생긴 문제다. 그나마 광주 소방관 기사가 나가고 수리비를 기부하겠다는 개인이나 단체가 17건이나 있었다는 소식은 아직 우리사회가 완전히 망가진 것이 아니란 의미로 위로가 된다. 소방관들이 이 소식에 조금이라도 위로받기를 바란다.
자신이 살려준 사람으로부터 도어락 손해배상 청구를 받으면 금액을 떠나 심리적으로 매우 힘들어질 것이다. 스스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무너지고 지속적으로 소방관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도 생길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줬더니, 봇짐까지 내놓으라 한다’는 속담이 있는 것은 그런 이기적인 상황은 언제든지 있었다는 의미다.
어느 사회든 다양한 사람이 모여 있는 이상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일반적이다. 다만 그것이 정규분포곡선을 따라야 한다. 아주 선한 사람이 1%라면 아주 악한 사람이 1%이고 보통사람이 98%인 사회가 정상 사회다. 98%의 보통사람이 희석되거나 아주 악한 사람이 많아지고 아주 선한 사람이 적어지면, 정규분포를 벗어난 탈선 사회가 되며 사회는 점점 더 후안무치 사회로 되어 간다.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람들이 증가할수록 소방관들의 행동은 방어적이고 소극적으로 바뀌게 된다. 그런 사회가 될 것이 두려운 것이다.
고마움을 고마운 마음으로 되돌려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