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에서 개원의로 생활하고 있는 김선 원장은 다양한 곳에서 여러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 원장은 지역사회와 호흡하는 다양한 봉사와 남북치의학교류협회 활동을 통해 직접 북한을 방문해 북한주민들에게도 진료봉사를 펼쳐왔다.
또 스마일재단 운영위원으로 장애인 진료에도 힘쓰는 등 바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모아네트워크를 통해 양질의 진료경험과 경영기법 공유는 물론 따뜻한 봉사의 정신을 확산시키고 있는 김선 원장을 만났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 어디든 간다
시흥 외국인복지센터, 시흥뉴스 편집실, 스마일재단, 남북치의학교류협회, 지역사회모임 등 치과를 비롯해 일주일에 김선 원장이 들르는 곳은 방방곡곡이다. 자신을 필요로 하고 할 일이 있는 곳이면 마다 않고 가다보니 직함도 여러 개다.
“저야 그냥 평범한 개원의죠. 한 지역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니 제 도움이 필요하다며 이곳저곳에서 불러주고 그곳에 가서 힘을 보태다가 자연스럽게 봉사를 하게 됐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봉사와 나눔은 특별한 것이 아닌 제 생활의 일부가 된 것 같아요.”
김선 원장의 다이어리에는 그렇게 봉사일정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매주 일요일 외국인복지센터를 찾아 지역 외국인노동자의 구강건강을 돌보고 센터에서 치료가 힘들 정도의 중증환자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지역활동에 참여하고 스마일재단 봉사에도 빠지지 않는 등 김 원장의 일주일은 짧기만 하다.
그러던 2001년, 김 원장은 남북치의학교류협회 일원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장비와 물품지원이 주를 이뤘다. 김선 원장은 북한의 현실상 물품지원이 일반주민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 것이 안타까워 북한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다방면으로 뛰어다닌 결과, 2005년 금강산 인근 온정인민병원 치과진료소 개설에 한축을 담당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북한주민들을 직접 만나 진료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2주에 한 번씩 북한주민들의 구강건강을 챙겼다.
북한주민과 친교를 나누다
북한을 방문해 직접 진료에 나서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움이 많았다. 사상과 이념이 다른 분단국가에서 김선 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은 감시의 대상이었다.
“초창기에는 통관에서 소독 후 밀봉한 기구들을 다 뜯어버리고, X-ray필름도 다 열어봐 사용을 못한 적도 종종 있었어요. 특히 북한관리자들이 환자와 대화도 못하게해 어려움이 많았어요. 환자와의 대화도 치료의 중요부분인데 질문할 때마다 서슬퍼런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곤 했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김 원장은 온정인민병원 치과진료소 방문을 포기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김선 원장의 순수한 마음에 북한주민과 관리자들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먼저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진료도구도 같이 운반해줬다. 대화가 이어지면서, 경계의 대상이 아닌 가까운 이웃으로 김선 원장을 맞이했다.
한번은 김 원장에게 금강산을 구경시켜주겠다고 북한관리자가 손을 이끌었다. 금강산의 절경을 구경시켜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가 특별한 말을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둘 사이의 벽이 없어진 느낌을 받았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70번이 넘게 북한을 방문해 주민들을 돌봤지만 2008년 금강산 피살사건 이후 아쉽게 교류가 중단됐다.
봉사문화가 더욱 확대되길
온정인민병원을 통한 북한주민 진료가 한순간에 중단되자 김선 원장은 허탈감에 빠졌다. 하지만 곧 다른 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김 원장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곳이 아직도 많았기 때문이다.
스마일재단을 통한 장애인 치과진료봉사, 시흥 외국인노동자 치과진료 등 장애인과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에 집중했다. 지역현안을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시흥뉴스를 운영하고, 비둘기공원에 숲속문고를 만들어 자연과 함께 하는 문화공간도 조성했다. 오랜기간 한 지역에서 개원한 만큼 지역과 하나 되는 다양한 나눔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대표로 있는 모아네트워크를 통해 봉사 정신을 확산시켜 나갔다.
“네트워크는 경영과 진료기법을 공유하는 것뿐 아니라 신념과 의식을 공유해야 합니다. 사랑과 나눔의 정신도 네트워크를 통해 퍼져나가기를 기대하고 있죠.” 김 원장의 노력으로 모아네트워크는 사랑의 밥차, 외국인노동자 진료, 등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치과의사의 한 사람으로 전문적인 지식과 의술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그곳으로 달려갈 것”이라는 김 원장은 “그것이 내가 사회로부터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길” 이라고 전했다.
김희수 기자/G@s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