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원이라는 곳이 있다. 통일부에서 운영하는 기관으로 새터민(탈북자)들이 한국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이다. 하나원에서는 새터민들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 하나의료원을 운영하고 있고, 기세호 원장은 매달 한 번씩 경기도 화천에 있는 제2 하나원에서 새터민들을 돌보고 있다. 최근에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통일부 장관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봉사의 시작 ‘배운 지식 베풀자’
“봉사를 시작하게 된 것은 2000년쯤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열린치과봉사회(회장 김성문·이하 열치) 활동을 하면서 시작하게 됐죠. 사실 열치가 처음부터 봉사단체는 아니었습니다. 마음 맞는 치과의사들이 모인 일종의 친목단체였는데, 인원도 점차 늘어나면서 뜻 있는 일을 해보자는 마음에 봉사를 하게 됐습니다.”
친목모임에서 발전한 봉사회. 기세호 원장을 비롯한 열치 회원들은 인천 남동공단 무료진료봉사를 시작으로 첫 발을 내딛는다. 본격적으로 봉사를 하게 된 것은 당시 문래동에 위치한 자유의 집에서 노숙자들을 진료해주는 것이었다. 문래동 자유의 집은 장안동으로 옮기면서 비전트레이닝센터로 명칭을 바꾸었고, 그곳에서도 열치의 봉사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처음에는 배운 지식을 어려운 분들에게 베풀자는 취지였습니다. 그런데 봉사를 하면서 제가 오히려 많은 것을 얻게 되더라고요. 보람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고, 심적으로 위안을 받는다고나 할까요? 치료를 받는 사람보다 오히려 제가 더 기쁘고, 만족감도 큽니다. 봉사하는 것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큰 활력이 되고 있습니다.”
통일부 장관 표창, 9년 공로 인정받아
노숙자들을 돌보던 기세호 원장은 현재 하나원으로 자리를 옮겨 인술을 펼치고 있다. 경기도 안성에 있는 제1 하나원을 거쳐 현재는 제2 하나원에서 봉사하고 있는 기세호 원장은 9년 동안 하나원을 찾아 새터민들을 구강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9년이라는 시간. 통일부에서도 기세호 원장의 그간 공로를 인정해 최근 표창장을 수여했다.
“아시겠지만, 상을 받고자 봉사를 한 것도 아니고, 본의 아니게 이번에 상을 받게 돼 무척 쑥스럽습니다. 저보다도 더 열심히 그리고 더 오랜 기간 봉사하신 선생님들도 많은데 말이죠.”
기세호 원장은 이번 통일부 장관 표창을 무척이나 쑥스러워했다. 진료봉사를 하는 대부분의 의사들이 그렇듯 기세호 원장 역시 자신의 선행이 알려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다만 9년이라는 시간 동안 꾸준히 봉사를 해올 수 있도록 도와준 다른 치과의사들과 치과위생사 및 치과기공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치과의사 혼자만의 힘으로 봉사를 할 수는 없죠. 주위에 도와주시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특히 그 멀리까지 그리고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함께 봉사해주시는 치과위생사를 비롯한 스탭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봉사를 하는 데 있어서 정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겁니다.”
새터민이라는 특수한 상황의 애잔함
“처음에는 새터민이라고 해서 긴장도 되고, 우리랑은 좀 다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말투만 좀 다를 뿐 크게 다를 건 없더라고요. 굳이 차이점을 말하자면, 형편없는 구강 상태 그리고 새터민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오는 애잔함 같은 게 있죠.”
그러면서 기세호 원장은 지난달 하나원을 찾았을 때 진료한 한 새터민의 얘기를 들려줬다.
“깜짝 놀랐습니다. 한 어르신이었는데, 두 다리가 모두 없더라고요. 진료하면서 이것저것 여쭤봤죠. 두 다리가 없이 어떻게 탈북을 했나 들어봤더니, 아들이 업고 압록강을 건넜다는 거예요. 아들도 같이 치료를 받았는데, 제가 봐도 듬직하고 대견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우리는 이곳에서 편하게 살고 있는데, 이 분들은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하는구나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매주 가서 봉사를 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한 달에 한 번 하나원을 찾고 있습니다. 보철치료 위주로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새터민 같은 경우는 하나원에서 교육이 끝나면 사회로 나가게 되는데, 보철치료 같은 경우는 비용이 많이 들거든요. 통일부로부터 최소한의 지원을 받아 보철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새터민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은 편입니다. 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도 힘이 닿는 한 봉사를 이어갈 생각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진료실을 나오면서 1월부터 12월까지의 달력이 빼곡하게 붙어 있는 기세호 원장의 스케줄 표가 눈에 띄었다. 하나원 진료스케줄과 1주차에서부터 4주차에 이르기까지의 진료팀 명단이 쓰여 있었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표기된 하나원 진료스케줄. 기세호 원장의 하나원 진료봉사는 이미 삶의 한 부분을 차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전영선 기자/ys@s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