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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단] 흐르는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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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혁 논설위원

어렵고 힘든 지난 일 년을 뒤로하고 갑오년 청마(靑馬) 울음을 시작으로 우리는 별반 다를 바 없는 일상을 다시 살고 있다. 끊임없는 변화와 개선을 지향하는 삶이지만 해아래 새것이 없는 까닭에 그 지루함을 덜어내고자 단지 하루의 변화인데도 새해를 기념하고 법석을 떠는 것인가 보다. 혹자는 나이 사십이 되어 마음이 무겁다지만 오십을 이미 지나버린 나이로는 그럭저럭 편해져 버린 것이 삶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을 정도로 버리고 갈 것만 남아 홀가분하고도 편한 늙음을 언급했던 소설가 박경리 씨나 다시 젊어지고 싶지도 다시 태어나고 싶지도 않은 자유롭고 헐렁한 노년을 예찬한 박완서 두 분의 경지를 절로 가늠해 보고 싶은 나이인지도 모른다. 두 분 모두 이미 작고하신 분들이지만 말년을 후배들의 귀감으로 보낸 훌륭한 분들이기에 남긴 소설보다 마지막 노년의 삶이 더 인상 깊은 것이다. 소인(小人)의 삶을 사는 우리 역시 여느 다른 생을 제대로 살지 못한 밀린 숙제를 하는 것이 이생의 삶으로 생각하고 마지막 페이지에 가까워질수록 미련보다는 홀가분한 자유를 희열로 느끼려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노자 도덕경 제8장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여 가장 훌륭한 덕을 물이라고 했다. 공자는 하늘을 숭상하는 서주(西周)를 사회의 이상으로 받아들였지만 노자는 물을 숭배하는 하(夏)나라를 염두에 두고 세계의 근간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면이다. 어쨌든 땅 위의 대부분은 위를 향해 뻗어 나가지만 물은 반대로 낮고 어두운 곳을 채운다. 그래서 생명이 물을 기반으로 존재할 수 있고 모든 계곡의 왕은 강과 바다라고 한다. 낮게 처하지 않으면 물이건 사람이건 다툼 없이 존재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이 같은 흐름의 특성과 함께 물은 형태를 자의적으로 유지하지 않는 유연한 특성이 있기에 어디든 흘러갈 수 있고 어느 모양에도 자신을 담을 수 있게 된다. 이는 특히 세속의 연륜 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칠 수 있는 성질이기에 고대로부터 병법에 인용되기도 했고 지금도 많이 언급되는 말 중 하나이다. 그래서 육십이 되면 굳이 귀가 순해져야 한다고 하는 것이고 칠십이 되면 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라 하여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도 도를 넘지 않는다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인데 100세 시대를 사는 우리 범인(凡人)들이 과연 시간만큼 인생의 과제를 잘 마치고 갈지는 의문이다. 주역에도 물과 관련하여 감지(坎止)라는 말이 나오는데 잘 흐르던 물이 특성상 구덩이를 피해갈 수 없는 탓에 일단 그곳에 들었으면 다 채우고 넘쳐나야 벗어날 수 있다는 험난한 시간에 대한 괘(卦)다. 물론 구덩이가 많아야 좋은 것은 아니지만 흐르는 물이라면 넘쳐나는 것은 시간문제이므로 때를 기다리고 준비한다면 다시 큰 강으로 흘러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흐르는 물에 비유해 보면 젊은 날에는 거칠고 빠른 흐름이 있었다면 이 세월의 연륜은 우리에게 더 낮고 느린 곳으로 가서 흐름이 없어 보이는 강처럼 존재하라는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우리 치과계는 이미 지난 한 해 뼈저린 고통의 시간을 계곡의 흙탕물처럼 흘려보냈다. 치과계 전체가 한바탕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난 그런 형국의 시간이었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 변화해야 하고 서로 소통하며 더욱 낮추지 않으면 안 된다. 높은 곳에 있든, 낮은 곳에 있든, 물은 흐를 뿐이고 그 본성이 변화되지 않는 것처럼 전체 치과계가 새로운 각성을 해야 하는 시기이다. 특히 올 4월에는 우리의 수장을 뽑는 중요한 선거가 있다. 더구나 이번 선거는 선거인단으로 치러지는 만큼 그동안 회원의 의무를 다해온 이들에게는 지대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대의원 선거제에서 마땅한 역할이 없었던 일반 회원들이 이미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의 됨됨이를 눈여겨봐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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