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 건강보험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대한민국 의료환경에서 비급여 제도의 취지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그 실행방안인 ‘비급여의 급여화’라는 정부의 정책목표에 흔들리고 있는 형국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의료소비자의 알권리 차원과 비용공개를 통한 합리적 선택을 주장하는 논리가 일반 국민에게는 설득력이 있어 보일 수 있다. 표심에 민감한 정치권과 진보정권의 특성상 사회적으로 소수 기득권층인 의료공급자들을 몰아세우기 좋은 소재임에는 틀림이 없다.
한편 최근 의협신문, 청년의사, 의학신문과 같은 의과계 언론지와 달리 치과계 언론지에는 비급여 공개에 관한 내용이 많이 노출되고 있다. 과거에도 ‘1인1개소법’의 헌재과정과 결국 합헌 판결을 이뤄낸 과정에서도 의과계와의 온도차는 분명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의료계의 다수이고 주류인 의과계에 비해 소수인 치과계가 이러한 사안에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 또한 고민해볼 만한 사안이기도 하다.
현실적인 면을 들여다보면, 치과는 건강보험 제도의 현실상 '보철'이라는 비급여에 대부분의 치과의사들이 생존권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국민들도 보철이라는 기능회복의 가장 큰 걸림돌이 '고가비용'이라는 기본 전제가 바탕에 있다는 사실도 떠오른다.
그밖에도, 기업형 사무장치과의 사업성이 가능한 치과 운영의 구조, 임플란트라는 획기적 보철수복술이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국내 임플란트 회사들이 자행한 대중광고 매체의 무분별한 이용, 진료 자체보다는 진료비용이 치과 선택의 더 중요한 요인이라는 국민들의 심리구조, 이에 편승한 불법 의료광고와 저가이벤트 치과의 범람이 어우러진 상황으로 볼 수 있다.
결국 국회와 정부의 비급여 통제를 목적으로 하는 ‘비급여관리종합대책’은 의원급의 공개로까지 진행되었고, 향후 ‘비급여 보고와 표준화’라는 과정으로 진화할 예정이다.
그에 대한 ‘비급여 공개저지 비대위’의 활동이, 표면적인 과태료 피해 구제와 그저 치과의사들의 이익을 위한 주장으로 비춰진다면, 대정부 저항의 승산은커녕, 기득권의 저항이라는 사회적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 치과의사들이 국가로부터 치과의사 면허증을 부여받은 목적이 무엇일까? 대한민국의 치과의사 면허증을 취득한 자를 회원으로 하는 ‘치협 정관’에 명시된 그 목적을 살펴보면, 국민보건 향상을 위하여 치의학, 치과의료 및 공중구강보건의 연구와 의도의 앙양 및 의권의 옹호로 되어 있다.
대다수 국민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가격요소를 부각시키면, 정부에서 언급하는 알권리가 충족되고, 시장경제원리에 의해 저가 비급여가 정착되어, 결국 국민의료비 부담완화와 건강권이 지켜진다는 논리의 ‘환상’을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치협 회원인 대한민국 치과의사들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알권리’라는 것은 생명체로서 존중을 받고 적절한 진료를 통해서 건강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 되어야 하고, 시장경제원리라는 미명 하에 영리적 목적으로 왜곡된 진료의 진정한 피해자는 결국 일반 국민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직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부당성을 인식하고 8월 17일까지 비급여 자료 제출을 거부한 치과의사들의 현재 심정은 어떠할까? 과태료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불법의 경계에 들어선다는 심정은, 매일매일 환자를 대하는 의료인으로서의 경건한 입장, 가정에서 가족들에 대한 마음가짐 등을 고려할 때, 정말 많은 고민의 지점이 될 수 있다.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들의 심정과 비교한다면, 다소 과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권력에 맞선다는 것은 그만큼의 각오가 있어야 하고, 그 결정에 대한 확신과 신념, 그리고 공동체를 위한 자긍심이 존재해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자료제출자들을 비난하는 행위라고 오해하는 소문, 치협 집행부에 비협조적이라는 편향적 견해, 그리고 이러한 심정을 가진 회원들의 활동을 치의신보 기사에서 배제한다는 소식들은, 우리에게 또 다른 슬픔을 안겨준다.
필자는 오늘 저녁에도 다시 한번 생각에 잠겨본다. 과태료도 그렇고, 범법자로서의 구별도 두려운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다만, 후배치과의사들의 진료환경과 국민의 건강권을 걱정하는 마음, 당대 회무를 수행하는 자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녁마다 만나는 두 아이에게도 떳떳한 부모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