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이란 시간이 미끄러진다는 뜻이다. 과거나 미래의 일정 시간으로 간다는 의미로 종종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용하는 개념이다. 2024년이 이제 한달 남짓 남았다. 2025년을 생각해 보다가 문득 30년 전 생각이 났다.
유학을 가기 위해 일본에 면접을 간 때가 정확히 30년 전인 1994년 11월이었다. 처음으로 외국에 갔으니 많은 것들이 낯설었다. 처음 일본 생활은 무척 생소했는데 요즘은 현실에서 타임슬립을 한 듯한 기시감이 든다. 당시 이상했던 것은 보리차와 생수를 돈을 주고 사먹는 것이었다. 보리차 한줌이면 며칠을 마실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물을 사먹는 것이 많이 이상해 보였다. 또 2L짜리 물이나 500㎖나 가격이 같다는 것도 이상했다. TV 방송은 딱 2가지만 있었다. 음식을 먹는 방송과 수영복 입은 여자가 많이 나오는 것이었다. 결혼 적령기인 20·30대가 결혼을 안 하고 독신이거나 동거를 하였고, 결혼한 친구들 중에는 아이를 낳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를 낳은 친구들은 한 명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자동차는 검정색은 거의 없이 대부분 흰색이었고, 도로에서 클랙슨 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차는 승용차보다 SUV를 선호했다. 공원에는 양복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이혼하고 돌싱으로 사는 사람도 많았다. 30년 전, 이런 모습들은 참 이상하고 생소하고 이해하기 어려웠었다.
그런데 문득 지금 살고있는 한국이 마치 30년 전에 일본 유학할 시절과 너무나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보리차도 생수도 사먹는다. 2L짜리나 500㎖나 생수 가격이 큰 차이가 없다. TV 방송도 대부분 음식을 먹는 방송이다. 결혼 적령기인 20·30대가 결혼을 안 하고 독신이거나 동거를 하고,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부부가 많아졌다. 이혼이 많아 그냥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자동차는 검정색보다는 흰색 계열이 많아졌고, 도로에서 위험한 경우가 아니면 클랙슨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승용차보다 SUV가 더 많아졌다.
타임슬립을 한 듯이 30년 전 일본사회를 정확히 옮겨놓은 듯하다. 다만 당시와 다른 것이 있다면, 아직 공원에 양복 입은 사람들이 없는 것이다. 90년대 초반에 일본 부동산버블이 터지면서 파산한 사람들이 갈 곳이 없어 공원에 있었다. 80년대 말경에 미친 듯이 올랐던 부동산이 금리인상과 동시에 버블이 터지면서 폭락했다. 과도한 대출로 빚을 감당하지 못한 개인들은 수없이 파산했고 부채를 떠안은 은행도 망했다. 그리고 4~5년이 지난 시점에 공원의 양복 입은 사람들을 필자가 보았다.
근래 한국 부동산이 영끌로 미친 듯이 올랐다. 정부는 건설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선심성 정책대출을 마구 풀어대며 부동산 폭등에 기름을 부었다. 전세자금 대출로 갭 투자를 가능하게 하면서 거의 집단광기 수준으로 부동산이 짧은 기간에 폭등했다. 그리고 국제은행과 IMF, 국제신용평가사들이 한국부채 6,500조원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정부는 이제야 대출억제와 금리를 조절하고 있다. 이 모습은 유학 당시 일본 TV에서 너무도 많이 들었던 일본버블 내용과 소름 돋게 유사하다.
대출로 미친 듯이 오른 부동산과 대출규제와 금리인상은 버블이 터지는 전조증상과 트리거였다. 너무도 유사하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부동산버블이 터지며 잃어버린 30년이 오는 것은 다르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러나 최근 보이고 들리는 경제적·국제적 모든 환경이 긍정적이지 않은 것이 걱정이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우리 환율은 1,400원을 넘었고, 주식은 2,400선을 넘나들고 있다. 가계 빚이 3분기에 사상 처음으로 1,900조원을 넘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보려 해도 일본버블이 터지던 때와 유사한 느낌이 떨쳐지지 않는다.
미국에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공짜 치즈는 쥐덫에만 놓여있다’는 말도 유사하다. 빚을 내주는 자들은 빌리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빚은 결국 그 대가를 요구한다. 1,000원을 갚기 위해서는 5,000원을 벌어야 하는 것을 빌려주는 자는 알지만, 빌리는 자는 모르는 것이 빚의 무서움이다. 30년 전 일본처럼 버블이 급격히 터지지 말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