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는 경구를 누구나 한 번쯤 보거나 들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출판 역사와 독서 운동에 상징적인 이 문장이 필자에게는 8년 전 소천하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연결된다.
1993년 책의 해를 맞아 ‘국민독서생활화운동본부’에서 발표한 선언문은 책을 단순한 지식의 전달 도구가 아닌,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지혜의 축적물로 정의했다. 부친께서는 전국서적조합연합회를 이끄시면서 1970년대 후반부터 추진되었던 ‘범국민 독서생활화 운동’을 통해 당시 열악했던 문화 환경 속에서 “책 읽는 국민이 강한 나라를 만든다”는 신념을 전달하고자 한반도 모양의 슬로건을 만드셨다.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독서 캠페인의 모태를 마련하신 것이다.
33년 전의 이 문장은 지금도 치과 진료실에서 환자를 마주하고, 신문의 행간을 살피는 필자의 50년여 년 인생을 지탱하는 뿌리가 됐다. 안중근 의사가 여순 감옥에서 남긴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이라는 경구는 치과의사인 우리에게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그가 말한 형극(荊棘) ‘입안의 가시’는 단순히 물리적인 통증과 고통이 아니라, 성찰 없는 언행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스스로의 인격을 훼손함을 경계한 것이리라. 치과의사라는 전문직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책 읽는 습관’은 환자의 구강과 안면을 진료하는 기술적 지식을 넘어, 그 사람의 삶과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의 기초가 된다. 우리가 책을 통해 스스로를 다스리지 않는다면, 진료실에서 나누는 대화는 날 선 가시가 될 수 있음을 상기하게 된다.
마침 이 칼럼이 독자 여러분을 만나기 얼마 전인 4월 23일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책의 날’이었다. 책을 사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풍습에서 유래된 이날의 의미처럼, 독서는 삭막한 일상에 향기로운 꽃 한 송이를 피워내는 일과 같다. 협소한 자원을 가진 우리나라가 도약할 길 또한 ‘정신문화의 위대한 힘’뿐이라고 역설하신 백범 김구 선생님의 소원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중략)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어버이날은 원래 1956년 ‘어머니 날’로 지정되었으나, 1973년에 ‘어버이날’로 변경되어 부모님을 함께 기리는 의미로 확장됐다. 필자처럼 홀로 계시는 어머님 혹은 아버님께만 카네이션을 달아 드릴 수 있는 선생님들은 아실 수 있으리라.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 카네이션을 달아 드릴 수 없는 안타까움을… 따라서 이번 어버이날에는 모든 선생님이 ‘명서(名書)’와 함께하는 식사를 하시면 어떨까 제안해 본다. 우리에게 인생의 길을 열어 주신 부모님은 존재 자체로 스승이자 자식이라는 사람을 만들어 주신 명서이므로 그분들의 빈자리도 책의 향기로 채워지리라 믿는다.
8년 전 아버님은 떠나셨지만, 당신께서 주창하신 명구(名句)는 여전히 수많은 서적과 매체 사이에서 저를 지켜봅니다. 저는 오늘도 아버님께서 늘 강조하셨던 '책 한 권'을 손에 쥐어 보겠습니다. 그것이 아버님이 만드시려 했고, 백범 선생님이 소원했던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길이라 믿으며, 편집인으로서 우리 치과계도 책 읽는 문화로 더욱 풍요로워지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