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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칼럼

[치과신문 편집인 칼럼] 죽으나 사나, 이 정(情)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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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호 편집인

입추(立秋)가 지나니 삼복염천 무더위도 한풀 꺾이며 가을 문턱에 들어선 듯 하다. 절기상 입추 이후에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도 있지만 밤이면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우리는 가을을 서서히 준비한다.

 

무더위에는 엄두도 못 내던 독서를 다시 시작하려 ‘치과의사의 서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서울시치과의사회 전자도서관을 열어보니, 보유 도서가 크게 늘어 있었다. 올 가을은 다양한 책과 함께 보낼 수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다. 요즈음 손에 잡히는 책은 주로 심리학, 그중에서도 사회심리학 분야다.

 

사회심리학은 개인 간 상호 작용과 사회적 환경 속 인간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사회학과 심리학의 중간이고, 두 분야를 결합해 연구하는 종합 과학이기도 하다. 최근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어쩌다 어른’ 등 여러 방송에서 교수들이 ‘한국인의 특징’을 주제로 사회심리학 강의를 하는 것을 보았다. “정말 한국인을 정확하게 정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흥미로웠다.

 

“한국인은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관계주의적 문화’를 갖고 있으며, 조직 내에서나 타인과의 소통 과정에서 관계주의적 문화를 이해하고 활용한다면 가장 효과적인 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교수들은 한국인만의 관계주의적 문화를 소개하고 이를 통한 효과적인 소통을 강조했다. 한국인은 전 세계에서 일인칭 대명사인 ‘우리’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민족이다. 지정학적으로 수많은 외침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서양의 개인주의, 일본의 집단주의와는 전혀 다른 독특한 관계주의를 형성했다. 교수들은 “한국인은 ‘나’보다 ‘우리’가 중요하다. ‘자아’는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형성된다”라고 소개한다. 예를 들어 식당에서 메뉴판을 보기 전에 “뭐 먹을 거야?”고 묻고 마음속으로는 상대의 메뉴에 따라 자신의 선택을 바꿀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주고받는 영향을 당연하게 여기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것은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점에서 관계주의의 장점이 될 수 있다.

 

한국인의 다른 특징은 주체성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주체성은 자신의 존재감과 영향력을 확인하고 확대하려는 성향이다. 서양의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존재감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인은 자신의 존재가 강하게 드러나길 바란다. 한국인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을 때가 식당에서 “내가 살게”하는 경우다. 특별히 축하받을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계속 밥을 산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방법이다. 주체성이 강해서 발생하는 부정적인 면은 생각을 많이 하고 자기 멋대로 한다는 것이다. 공사장에서 설계도가 있는데 자기 판단대로 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공사장에서 설계도에 나사가 10개 들어가야 하는데 7개면 되겠다고 판단하고 일을 해버리는 것이다.

 

관계주의 문화와 주체성이 강한 한국인이 가장 많이 화가 날 때가 ‘내가 영향을 주고 싶은데 상대방이 영향을 안 받을 때’라고 한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말은 한국인이 화가 났을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내용보다 상대방이 내 말을 듣지 않는 태도에 더 분노한다고 하는데 결국에는 사회적 갈등도 이런 면에서 시작된다.

 

한국의 사회적 갈등은 생각이 다른 사람이 같이 생활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면 끊임없이 설득하려 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우리 같이 토론해 보자’라고 이야기하지만, 속으로는 ‘내가 맞기 때문에 내 뜻을 따르는 것이 옳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자신의 말을 많이 하지만 상대방은 바뀌지 않는다. 지금 치과계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소통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한국인은 상대방이 자신의 관계를 무시하고 깎아내릴 때 모욕감을 느끼는 만큼, 상대방의 관계성을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여유를 가질 때야말로 관계주의 문화의 장점과 역량이 발휘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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