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링이 보험이 된 이후부터 진료 전에 개인정보이용동의서를 받는다. 그때마다 필자 병원에서는 스케일링 설명동의서도 같이 받는다. 스케일링 후에 발생하는 치아 시림 등을 미리 설명한다. 특히 잇몸이 힐링되면서 발생하는 블랙트라이앵글이나 기존에 있었던 크랙 또는 치경부 마모 등을 설명하고 동의를 받아 분쟁의 소지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스케일링 후에 자주 겪는 분쟁을 정리한 것이다. 이렇게 정리하여보면 치과진료는 매 순간마다 환자가 오해할 가능성이 모두 존재한다. 일례로 구치부에서 치료받은 치아와 다른 치아를 혼동하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16번을 크라운을 했는데 우연하게 17번 크라운이 탈락한 경우에 환자는 치료받은 치아가 17번이라고 착각을 하거나 우기는 경우이다. 또 당황스러운 경우가 유치를 방사선사진 촬영 없이 발치하였는데 후속영구치가 선천적 결손인 경우이다. 영구치를 발치하였다는 환자의 주장에서 자신을 변론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요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진료 때마다 환자와 분쟁의 소지는 항상 존재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배워본 경험이 없어서 결국 치과의사들은 실제 경험을 통하여 익숙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혹은 선배의 경험을 듣거나 고통을
한 엄마가 초등학교 2학년 딸과 내원하였다. 어떤 일로 왔냐는 질문에 부정교합 때문에 왔다고 대답하였다. 교정을 업으로 삼고 사는 필자가 환자에게 가장 많이 듣는 대답이 ‘부정교합’이다. 그런데 부정교합이란 말을 곱씹어보면 실체가 없다. 아니 심지어 교활한 상술적인 느낌마저 든다. 부정교합이란 정교합이 아닌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과연 정교합자가 몇 퍼센트나 될 것인가. 거기에 골격적인 개념까지 포함시키면 과연 정교합자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하면 대다수의 모든 사람이 부정교합인 상태에서 용어 자체에 의미성이 없다. 그래서 필자는 부정교합이라는 용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을 잠정적 교합이상 환자로 분류해버리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성적표로 환산하면 100점이 정교합이고 99점 이하는 모두 부정교합이다. 일반적으로 90점 이상이면 A로 60점 미만은 F로 분류한다. 그렇다면 교합에서도 난이도에 따라서 구분하여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런데 일반 치과치료와 교정치료를 요구하는 환자의 생각 속에 부정교합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교정환자의 ‘부정교합’이란 대답 속에는 심미가 포함되어 있다. 기능성에 심미성을 포함하여 생각한다. 정교합이
얼마 전 공중파 강연 방송에서 정보통신산업진흥원장이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설명하였다. 1차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인한 기계적 혁명이었다. 2차 산업혁명은 에디슨이 발명한 전기의 힘을 이용한 대량생산의 시작이었다. 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에 의한 ‘자동화’였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은 ‘소프트 파워’를 통한 인공지능화라고 설명하였다. 강의를 듣는 청중들은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경기를 보면서 한 번에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인공지능 알파고와 바둑 명인 이세돌 9단과의 경기는 세기의 대결로 한국은 물론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5:0으로 승리를 낙관하던 이세돌은 상상을 초월하는 알파고의 능력에 참담한 패배를 3번하고서야 4번째에 승리할 수 있었다. 3번의 경기를 지켜보았던 필자도 1국의 패배를 보면서 반신반의 하였고 2번째 패배를 보면서는 소름이 돋았고 3번째 패배에서는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이 희망을 잃었다. 4번째 이세돌의 승리는 묘한 희열을 주었지만 저변에 깔린 씁쓸함은 가시지 않았다. 옥스퍼드대학의 칼 오스본 교수가 컴퓨터의 진행속도, 현재의 각 직업군의 노동 임
사춘기가 되어 이성에게 관심을 가지는 시기가 되면 유독 거울을 많이 들여다 보게 된다. 비단 이성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좀 더 멋진 모습 혹은 예쁜 모습을 연출하기 위하여 빈번하게 거울과 마주한다. 사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얼굴보다 남들의 얼굴을 훨씬 많이 본다. 즉 자신의 표정이나 눈빛과 같은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노출시키고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자신을 꾸미고 가꾸기 위한 필수조건 중에 하나가 바로 거울이다. 거울은 인간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확인하고 싶은 욕구와 자신을 좀 더 멋진 사람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만들어졌을 거라고 짐작된다. 그래서 영어로 ‘mirror’라는 거울의 단어는 그 유래가 ‘mirare’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되었고 그 뜻은 ‘보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아마도 자신을 보려고 하는 마음이 거울이라는 뜻에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만약 거울이 없다면 다른 사람의 모습만 보게 되고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거울이라는 것은 자신의 외모만 가꾸는 것이 아니라 거울 속에 비춰진 모습을 통하여 자신의 현재 상태까지도 확인하게 된다. 자신의 기분이 우울한 상태에서의 모습,
두경부 방사선보지 못하는 속을 통과한 이름 모를 선들이2차원적인 검고 흰 형상으로 그린처음에는 징그러웠지만 자주 보니 무덤덤한거짓말 못하는 요긴한 진단도구.
생텍쥐페리의 유명한 소설 ‘어린 왕자’ 중에는 많은 질문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에 대한 질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흠… 글쎄요. 돈 버는 일? 밥 먹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각각의 얼굴만큼 다양한 각양각색의 마음을… 순간에도 수만 가지의 생각이 떠오르는데, 그 바람 같은 마음을 머물게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거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는 것은 기적이란다”라는 글귀가 나온다. 과연 가장 어려운 일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본다. 어려움에 처한 모든 이들은 그 순간 자신이 겪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할 것이다. 밖에서 보는 어려움과 직접 경험하는 어려움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런 어려움도 그 사람의 과거 경험과 내공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대부분의 일반인은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그가 가장 잘 아는 이유다. 그런데 생텍쥐페리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타인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반면 불교에서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이라 말한다. 이런 차이는 현실적인 어려움과 이상적인 어려움의 차이
어제는 삼일절이었다. 지인들과 장사익 선생이 기획한 흑우 김대환 추모공연을 보았다. 흑우 김대환은 한 시대를 풍미한 예술인이었다. 음악에서는 타악기에서 전위음악까지, 서예와 조각으로는 쌀 한 톨에 반야심경을 새겨 기네스북에 오른 기인이었다. 그리고 그의 음악세계가 일본에까지 영향을 주어 일본의 예술인들과 같이 공연한지 12년이 되었다. 그의 예술에 대한 정열은 지금도 한국 음악의 흐름 속에 같이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는 살아서는 기인이었고 죽어서는 선각자였다. 지금도 남과 다르게 사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지금 우리 교육 현실은 획일화를 요구하고 개성을 말살하고 있다. 심지어는 학교교육이 죽었다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한다. 하지만 이런 교육 현실을 알면서도 벗어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에 모두 공감한다. 그 내면의 이유에는 남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경쟁심과 1등을 해야 한다는 이기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이 모여서 지금의 한국사회를 만들었다. 얼마 전 조사에서 한국이 OECD국가에서 1등하는 것이 50가지가 있다고 발표되었다. 1)자살률 : 8년간 연속 1위 2)산업재해 사망률 : 2012년 기준 2위 국가의 세 배 3
인생을 흔히 마라톤으로 비유한다. 기록이라는 시간의 의미도 있겠지만 42.195㎞를 묵묵히 달린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인생과 마라톤을 비슷하다고 비유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마라톤을 완주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이 페이스메이커의 도움이 크다는 것이다.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페이스메이커를 이해하는 것이 그냥 마라톤을 하는 사람과 함께 달리고 연습하는 것으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있지만 실상은 그것보다 더 큰 의미가 숨어 있다고 한다. 그것은 마라톤을 훈련하는 동안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다리의 근육은 굳어져서 더 이상 한 발짝도 내딛기 힘든 고통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것은 그러한 고통을 바로 페이스메이커가 곁에서 이해하고 격려해 준다는 것이다.인간의 한계를 느끼는 순간 그것도 혼자 고스란히 감수해야 하는 그 고통의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은 그 순간에도 누군가가 자신을 이해하고 격려해 준다는 것 자체만으로 초인적인 힘을 내고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는 것 자체가 감동이다. 그래서 마라톤을 인생과 비유하는 것 같다.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고통을 경험한다.
GOD-Good으로God, 신을 거꾸로 하면 Dog솔직히 그렇게 비하시키고 싶을 때도 있다God는 언제나, 어느 곳에나, 누구에게나존재하는, 내가 다가서야만 만나는똑같은 본질을 갖고 있는삶이 무거워야 더 애타게 찾는허상이기도한 실체.
오늘 아침 뉴스 기사는 국회 필리버스터로 시작한다. 아침드라마는 이복 자매간의 반목으로 같이 죽자며 휘발유에 불을 붙이려는 장면이다. 아침부터 정신 사나운 내용의 정보들이 넘친다. 필리버스터는 얼마 전에 방영한 ‘어셈블리’라는 국회드라마를 통해 보았던 내용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보게 되니 드라마나 현실이나 별반 차이 없는가 싶다. 드라마 같은 현실과 막장드라마를 보다보면 현실이 막장으로 흐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SNS에 떠도는 글 하나가 생각이 난다. 교회 앞 골목길을 지나가는데 불법주차로 길이 막혀서 차를 빼 달라고 전화를 하니 “기도중이라서 못나가니 기다리라”는 답변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화가 난 운전자가 교회 문을 열고 큰 소리로 차 주인을 찾으니 누군가 다가와서 “당신 이러시면 지옥에 갑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운전자가 “내가 그 지옥에서 온 사람이다”라고 더 화를 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인지 콩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요즘 같으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이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다. 남에 대한 배려 없이 주차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자신의 기도를 위하여 차를 빼주지 않는 이기심은 얼마 전 종교 시설에 다녀오느라 출산을 지연